어디에다 올려야 될지 몰라 [?]로 표시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사견이 될 수가 있으므로 칭찬만 받고 비판은 받지 않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아주 이기적인 성격이므로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분명 만화방에서 3권짜리 세로줄 무협을 읽은 세대입니다. 또한 우연히 대여점을 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어 신무협 또한 읽어본 세대입니다. 한마디로 어중간한 세대로 정의 될 수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총 맞는 모습도 지켜봤고 광주항쟁도 지켜봤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선서를 하는 모습도 보았으며 호헌과 호헌 철폐의 시위도 보았습니다.
KBS시청료 거부운동부터 시작하여 노동의 현장에서 붉은 깃발도 흔들어 보았으며 군대에 가서 목봉체조와 빰바라, PT체조, 구타와 각종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았고, 아버지 어머니가 깨인 분들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열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과나 참고서, 사프펜도 사보질 못했습니다. 빨리 돈 벌어 오라고 난리였었지요. 컴퓨터는 아예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 한마디로 암울한 청춘을 보냈다고 볼 수있습니다.
그러한 때, 아마 고1 때로 기억됩니다. 우연히 들른 만화방에서 무협지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당시 만화방에는 영화대본도 있었고 이소룡을 비롯한 외국의 여러 배우들의 흑백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카더라'성 기사가 실린 얇은 잡지도 있었지요. 어쨌든 저는 그곳에서 무협지를 보았고 빠져 들었습니다. 제가 속독법은 아니더라도 제법 빨리 글을 읽는 편이라 3권 모두를 다보는데 걸린 시간은 3시간을 넘지 못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청소년 때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과 성과 폭력에 대한 욕구불만, 그리고 문화에 대한 목마름을 이 무협지가 채워줬던 거지요. 야한 장면이 나오는 부분에는 거의 빠짐없이 누가 자위를 해놓은 흔적과 냄새가 배어 있었고 맨 뒷장의 백지부분을 보면 -펜팔원함-이란 문구와 함께 누군가의 주소와 이름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하긴 요즘도 시외버스의 좌석을 보면 가끔 그러한 문구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몇년을 보내고 한동안 무협을 보지 못했습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란 명분아래 기름쟁이가 되어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 노동삼권의 보장을 위한 시위가 전국을 휩쓸었고 저도 끼어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광주에 대한 비디오를 보았고 '살아있는 것에 대한 죄악'을 느꼈습니다. 밤새워 전태일열사의 평전을 읽었으며 박노해시인의 노동의 새벽, 김지하님의 오적과 가까워 졌습니다.
그 여파로 조금만 기다리면 군대를 면제 받을 수있는 방위산업체에서 모가지를 당하고 영장이 나올 때까지 누가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브럭을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무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갔지요. 그때 군대는 책이 귀했습니다. 샘터니 리더스다이제스트, 전우신문을 보며 문화에 대한 욕구를 달래야 했지요. 그 다음은 저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그 대여점을 하는 친구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무협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많이 변했더군요. 지난 시절, 제가 본 무협은 단문과 의성어 일색, 말줄임표와 느낌표 과다사용, 절벽에서의 기연난무, 영약의 과용, 초절정 천재와 미남일색, 마누라가 무려 열명이던 무협이었는데...그러한 무협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무협을 구무협이라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한 무협은 더 이상 눈에 들어 오지 않있습니다. 잘못 쓰여졌고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제가 나이가 먹은 것이고 세상이 변한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도 그러한 구무협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해했던 시간들이 어리석다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때의 감정에 그러한 무협이 맞았던 거니까요. 그때 당시의 무협이 현재의 신무협이라 부르는 문장과 형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루하다고 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지금에 와서 그때 당시의 무협과 신무협을 비교해 보면 과거의 무협은 골격만을 그려 독자에게 나머지 부분을 상상케 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스피드를 극한 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므로서 그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단문과 스피드로 독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했고 지금의 무협은 스피드를 조금 늦추는 대신 자세한 무공의 설명과 성장, 눈에 보이는 듯한 박투신으로 독자에게 배려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쩌면 현재의 눈으로 과거의 무협을 평가하는 일은 가능치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컴퓨터를 쓰는 사람이 라디오의 불편한 점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청바지를 입는 사람이 한복 바지저고리의 불편한 점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월이 오래 흐른 지금에 와서 불편하다고 말해지는 것이지 그때 당시에는 라디오도 최고의 문명이었으며 한복바지저고리도 최고의 옷이었을 테니까요.
저는 고교생인 조카가 재미있다고 보는 무협을 1권도 보지 못합니다. 재미가 없고 문장도 이상하며 온갖 알수없는 개그와 이해 할 수없는 신변잡기를 늘어 놓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카는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무협은 또 지루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으로 본다면 세대에 따라 시대에 따라 맞는 무협이 있으며 보는 눈 높이에 따라서도, 현재의 상황에 있어서도 무협을 보는 시각과 코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래서 구무협이라 불려지는 무협을 비평하지 않으며 신무협이라 불려지는 무협을 비평하지 않습니다. 70살 드신 할아버지가 쓴 무협이라도 그것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며 14살난 소년이 쓴 무협이라도 그 세대에서는 아주 재미있다 느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무협이든 각자 필요한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면 굳이 비평이란, 자신의 눈높이를 확인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제가 단지 우려하는 것은 매사를 저의 눈높이로, 저의 수준으로만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습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한 습관이 생기면 매사를 그저 단순한 흑백논리로만 인식을 해버리게 되고 그 흑백논리 속에 가려진 진실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니까요.
썬그라스는 여름 날, 해수욕장이나 운전 중에만 필요하지 않는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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