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우는 여자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3.09.17 21:19
조회
2,337
도서관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일자로 쭉 뻗은 길 맨끝에 젊은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언뜻 봐도 꽤 이목구비가 반듯해 보였다.
나는 남자건 여자건 간에 미남미녀를 좋아한다.
별다른 흑심도 없이 그저 도자기나 꽃을 감상하듯 그렇게 좋아한다.
예쁘게 생긴 것들을 보면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 여자 쪽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일부러 시선을 그쪽에 주지 않고 짐짓 무심한 얼굴을 지었다.
모르는 사람 얼굴을 너무 빤히 바라보면 본인이 불쾌해 할 테니 내 시원찮은 시력으로도 그녀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는 곳까지 접근한 다음에 살짝 '감상'을 해볼 작정이었던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본 여자는 과연 드물게 예쁜 얼굴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시선을 땅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나 하고 의아해 하는데, 그때까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늙은 여자 한 명이 그녀 뒤에 서서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인자(이제) 니 데리고 못 살겠다. 너거(너희) 집에 가거라."

이제 보니 젊은 여자는 얼굴을 찌푸린 것이 아니라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가 내가 막 그곳에 다다랐을 때 더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얼른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길거리에서 수모를 당하는 자신을 힐끔거리는 내가 여자로서는 얼마나 밉살스러웠을까.
늙은 여자는 계속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너거 집에 가거라. 와 요서(여기서) 이라노."
그렇게 박정한 소리를 별로 감정을 싣지도 않은 목소리로 툭툭 던지고 있었다.
태평한 얼굴로 희롱하듯이, 젊은 여자가 더 견디지 못하고 자기 발 아래 무너져서 싹싹 빌어 올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저 둘은 어떤 관계일까? 고용인과 고용주 관계일까? 상점 금고에 손을 대다가 걸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발각된 며느리와 시어머니?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는 내 등 뒤쪽에서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럽고 망신스럽고, 그리고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어 두려운 모양이었다.
어릴 때 나도 저렇게 벼랑 끝에 몰린 듯한 기분으로 울음을 터뜨리곤 하였었다.
어린아이를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 것이 어떤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중에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돌아서 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한 인간이 고통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동안에 나는 그녀의 일을 잊어 버렸고,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까 그 길을 다시 택하였다.
그 동안 이럭저럭 30분 가까이 시간이 지났으므로 일이 어떤 형태로건 결말이 지어졌을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아까 그곳에서 그 여자가 울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막상 가 보았더니 상황은 조금도 달라져 있지 않았다.
젊은 여자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고, 늙은 여자 또한 여전히 그 곁에서 종알종알거리고 있었다.
  "갈라모(가려면) 돈 내놓고 가거라."
아까와는 레퍼토리가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가학적인 조롱을 담은 소리였다.
그들의 사연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만 그 늙은 여자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어졌다.
새디즘은 곧 정신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를 재미삼아 일부러 괴롭히는 짓은 용서받을 여지가 없는 비열한 짓이다.

나는 우울한 마음이 되어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에 관한 일은 내 머릿속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아직 식당들이 손님을 받을 시각은 아니지만 집에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없을까 알아 보는 동안에 또다시 그녀 문제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녀에 대해 내가 느끼던 연민, 정의감은 고작 그 정도였던 것이다.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고 마는 내 한계를 확인한 셈이다.

 


Comment ' 7

  • 작성자
    Lv.77 새벽고양이
    작성일
    13.09.17 21:40
    No. 1

    남자는 여자가 약한 순간을 노려야 진정으로 잘 낚.....

    다음에 또 보게 되면 시도해보시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메앓
    작성일
    13.09.17 21:42
    No. 2

    으잉? 댓글 하나로 글의 분위기가 180도 드리프트를 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3.09.17 21:48
    No. 3

    끼이이이이이~~~~~~~~~~~~~~~~~~~~~~~~~~~익!(드리프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9.17 22:27
    No. 4

    어떻게 해야 여자들의 대시를 능란하게 피하면서도 원한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무슨 사악한 조언인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9.18 01:34
    No. 5

    저는 여자에 울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변명대신에 우는 여자를 많이 봤거든요. 잘못했는데 발뺌하다가 막다른길에 몰리면 울더군요.(굉장히 주관적인 제 생각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0 우유용용
    작성일
    13.09.18 02:42
    No. 6

    여자가 언어에 관해서는 종특인데 언어가 막히니 자기 언어 능력이 안쓰러워 울수 밖에요. 농담입니다.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9.18 12:30
    No. 7

    남자들은 변명 대신에 화를 내고 여자들은 변명 대신에 운다....고 하면 일반화의 오류일까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호정담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8322 문피아 게임 하시는 분.. +7 Lv.16 박재우 13.09.13 1,552
208321 글이란걸 처음 써보는데 연재라는게 쉬운일은 아니네요. +7 Lv.8 포대기 13.09.13 1,837
208320 이제 끝났다. 휴~ +2 Personacon 藍淚人 13.09.13 1,277
208319 로봇이 주인공인 판타지소설이 있나요? +6 Lv.1 스카카카 13.09.12 1,882
208318 치아 스케일링에 대해.... +21 Lv.97 윤필담 13.09.12 2,198
208317 피안도 보다가 막장이라고 생각한 장면 +17 Lv.6 트레인하트 13.09.12 5,958
208316 주군의태양, 헐...헐.... +12 Personacon 카페로열 13.09.12 2,135
208315 공지에올라온뷰어가...스캔본 모양같다는... Lv.78 IlIIIIIl.. 13.09.12 1,847
208314 헌법을 읽을 수 있는 사이트가 어디 없을까요 +3 Lv.15 淚觸木 13.09.12 1,475
208313 쟝르소설 8000으로 서점에 팔면 98프로이상 작살나지요. ... +10 Lv.45 앵속각 13.09.12 2,110
208312 한국 콘텐츠 진흥원 아카데미 소개. +1 Personacon 엔띠 13.09.12 1,804
208311 서울협객전에서 파천군...(스포) +7 Lv.6 트레인하트 13.09.12 2,535
208310 댓글과 네이버 중계의 콜라보레이션...(시스템간섭) +2 Lv.61 정주(丁柱) 13.09.12 1,280
208309 동호회 모임 나가보신 적 있으신분?? +14 Lv.25 시우(始友) 13.09.12 1,467
208308 서울대공원에 대한 정보를 구합니다. +9 Personacon 엔띠 13.09.12 1,523
208307 오랜만에 포카칩을 사먹었는데.. +7 Lv.53 아즈가로 13.09.12 1,363
208306 30만 유저 카페 테러 뒷이야기.. +10 Lv.98 whoareyo.. 13.09.12 2,268
208305 무협에 나오는 흡정대법 계열의 기술인데 말이죠 +5 Lv.14 가리온[] 13.09.12 1,620
208304 파이어볼이 만약 존재한다면 +6 Lv.96 강림주의 13.09.12 1,444
208303 (펌) 꽤 많은 여자들이 앓고 있는 "최강희 병" +18 Personacon 히나(NEW) 13.09.12 3,795
208302 님들요... +7 Lv.47 그래이거다 13.09.12 1,189
208301 [일상] 운전 잘하는 법을 전수부탁드립니다. +9 Lv.24 풍이풍 13.09.12 1,796
208300 으아아아ㅏㄱ 갑자기 이명이ㅣ이 +7 Personacon 메앓 13.09.12 1,333
208299 아래 페도필리아로 추정되는 분의 글을 보고.. +17 Lv.1 [탈퇴계정] 13.09.12 1,734
208298 인류학 흥미로운 사례 +5 Lv.96 강림주의 13.09.12 1,874
208297 한달에 -10kg 다이어트. +8 Personacon 카페로열 13.09.12 1,778
208296 구똑퉐~ good doctor +9 Lv.61 정주(丁柱) 13.09.12 1,397
208295 한 문장의 글귀에서 발견한... +3 Personacon 엔띠 13.09.12 1,599
208294 대여점 위치 문의합니다. Lv.4 바람의할배 13.09.12 1,447
208293 진지한 소설보다 먼치킨 소설이 더 인기 좋나요? +13 Lv.9 글쟁이전 13.09.12 2,686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