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일자로 쭉 뻗은 길 맨끝에 젊은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언뜻 봐도 꽤 이목구비가 반듯해 보였다. 나는 남자건 여자건 간에 미남미녀를 좋아한다. 별다른 흑심도 없이 그저 도자기나 꽃을 감상하듯 그렇게 좋아한다. 예쁘게 생긴 것들을 보면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 여자 쪽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일부러 시선을 그쪽에 주지 않고 짐짓 무심한 얼굴을 지었다. 모르는 사람 얼굴을 너무 빤히 바라보면 본인이 불쾌해 할 테니 내 시원찮은 시력으로도 그녀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는 곳까지 접근한 다음에 살짝 '감상'을 해볼 작정이었던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본 여자는 과연 드물게 예쁜 얼굴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시선을 땅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나 하고 의아해 하는데, 그때까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늙은 여자 한 명이 그녀 뒤에 서서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인자(이제) 니 데리고 못 살겠다. 너거(너희) 집에 가거라." 이제 보니 젊은 여자는 얼굴을 찌푸린 것이 아니라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가 내가 막 그곳에 다다랐을 때 더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얼른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길거리에서 수모를 당하는 자신을 힐끔거리는 내가 여자로서는 얼마나 밉살스러웠을까. 늙은 여자는 계속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너거 집에 가거라. 와 요서(여기서) 이라노." 그렇게 박정한 소리를 별로 감정을 싣지도 않은 목소리로 툭툭 던지고 있었다. 태평한 얼굴로 희롱하듯이, 젊은 여자가 더 견디지 못하고 자기 발 아래 무너져서 싹싹 빌어 올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저 둘은 어떤 관계일까? 고용인과 고용주 관계일까? 상점 금고에 손을 대다가 걸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발각된 며느리와 시어머니?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는 내 등 뒤쪽에서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럽고 망신스럽고, 그리고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어 두려운 모양이었다. 어릴 때 나도 저렇게 벼랑 끝에 몰린 듯한 기분으로 울음을 터뜨리곤 하였었다. 어린아이를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 것이 어떤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중에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돌아서 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한 인간이 고통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동안에 나는 그녀의 일을 잊어 버렸고,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까 그 길을 다시 택하였다. 그 동안 이럭저럭 30분 가까이 시간이 지났으므로 일이 어떤 형태로건 결말이 지어졌을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아까 그곳에서 그 여자가 울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막상 가 보았더니 상황은 조금도 달라져 있지 않았다. 젊은 여자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고, 늙은 여자 또한 여전히 그 곁에서 종알종알거리고 있었다. "갈라모(가려면) 돈 내놓고 가거라." 아까와는 레퍼토리가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가학적인 조롱을 담은 소리였다. 그들의 사연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만 그 늙은 여자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어졌다. 새디즘은 곧 정신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를 재미삼아 일부러 괴롭히는 짓은 용서받을 여지가 없는 비열한 짓이다. 나는 우울한 마음이 되어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에 관한 일은 내 머릿속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아직 식당들이 손님을 받을 시각은 아니지만 집에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없을까 알아 보는 동안에 또다시 그녀 문제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녀에 대해 내가 느끼던 연민, 정의감은 고작 그 정도였던 것이다.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고 마는 내 한계를 확인한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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