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임진왜란...
왜군이 폭풍러쉬로 북상하고 선조가 커맨드센터를 북쪽으로 옳길 쯤, 전라도 근왕병 7만명이 용인으로 진군합니다.
당시 중위장인 권율은 적군이 강하니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전라도 순찰사 이광은 강행군을 감행합니다 그러다가 그만...
히데요시의 칠본창이자, 훗날 치트공에게 미역웰빙을 당하는
와키자카가 이끈 2천명의 왜군에게 기습을 당해 버렸습니다.
7만의 근왕병은 패주하여 와해되었고, 권율이 이걸 수습하고 있던 차에, 일련의 의병들이 왜군 앞에 나타납니다.
이 의병들은 평택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습니다.
이 평택 의병들을 본 와키자카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앞서 조선군 7만을 2천으로 발랐는데, 이런 오합지졸이야...
그래서 당장 추격해서 섬멸하기로 하고 쫓아갔지요.
근데 왁키 앞에 나타난 건 양반 출신 의병들을 주축으로 한 기병들이었고, 평택 의병의 주력군은 현재 처인구의 김량장동과 유방동 사이의 화약골에 매복해 있었습니다.
금량장동은 한국전쟁 때도 격전지로,
중공군이 알라후 아르바크를 외치는 터키군에 개작살 난 곳입니다.
기병들은 하루 종일 가다 서다 반복했고, 왜군은 추격하다가 꽤 지쳤죠.
그러다가 마지막에 골짜기로 유인 당하고 말았죠.
그리고 지친 왜군 앞으로 매복해 있던 의병들의 일제 공격이 들어옵니다.
여기에 유인하던 기병들이 반전하고...
그렇게 추격했던 왁키네 부대는 개박살 났고, 화약골은 나중에 햇골로 불리게 됩니다.
여기서 죽은 왜군이 너무 많아 해골바가지가 굴러다녔다고 햇골이라고 불렀던 것.
이 전투를 지휘한 의병장은 나중에 연기현감을 거쳤다가 적성현감이 되어 전란으로 피폐해진 고을을 부흥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정유재란이 나자 다시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 전사했지요.
이분의 성함은 원연(元埏 1543-1597)입니다.
충공깽스럽게도 그는 치트공의 대척점에 있던 병원균의 동생이었습니다.
이따위 개소리는 하는데,
정작 진짜 용감히 싸웠던 원연은 듣보잡이 되었습니다.
평택의 터줏대감인 원주 원씨 가문에서도 원균 재평가에 매진하지, 정작 용감히 싸운 원연에 대한 관심은 전무합니다.
못난 형님 만나서 억울한 판인데 후세 대접도 이러니...
대체역사 쓰시는 분들이 원연 장군을 좀 띄워 줬으면 싶네요.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