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방수윤
작품명 : 허부대공
출판사 : 드림북스
방수윤 작가님의 필력이 드러난 8권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죠. 허부대공의 본격적인 강호 행로는 시공검을 얻고서부터, 자기 자신마저 철저한 계획의 일부가 되어, 복수의 길을 확고히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황보세가 내의 음모를 파해치고, 이름뿐인 무림맹의 수사에서 맹주 대리가 되어, 명분을 바탕으로 힘을 키우는 글의 흐름은 방수윤 작가님 께서 꼼꼼하게 생각하시고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 묻어 나옵니다.
황보련의 자존심, 연정, 갈등 과 총사의 세가에 대한 본능적인 충성심에서 묻어 나오는 적의, 맹주의 인의로우면서도 철저하게 실리적인 일면, 황금상단주의 공과사의 냉정함, 기천오의 비뚤어져 가는 심리... 캐릭터들의 성격도 청정해역 물고기처럼 파닥파닥하게 살아있습니다.
물론 글의 전개와 캐릭터 묘사의 밀도가 높아진 대신, 한 권의 내용 치고는 전개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으나, 그건 개인의 취향 문제이며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글을 쓰다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분명 있고, 그 부분의 선택을 독자는 싫어하든 좋아하든 간에, 적어도 작가분의 내면의 치열한 고민에서 나온 선택이라면 존중해야한다고 봅니다.
이런 존중을 바탕으로, 애독자 입장에서, 조금 신경쓰시면 더 좋은 글이 나올것 같기에, 그래서 나오는 진심어린 충언은 작가나 독자 모두에게 좋은, 처음 마실때만 쓴 보약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방수윤 작가님께 한 마디 읍소하고자 합니다. 분명 사건 전개나 캐릭터의 묘사가, 자세하고 꼼꼼하여 글의 밀도가 높은 점이 매력이라면, 반면 그 대신 가볍지 못해 글의 호흡이 느린 것은 비판받을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개성 이니까요.
하지만, 초심보다 글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호흡이 느려도, 충분히 긴장감이 고양되어 어느새 한 권이 금방읽혔던 초심이 점차 힘을 잃어가는 듯 합니다.
제 쓴소리에, 앞서 허부대공 8권, 필력좋게 잘 쓰여진 글이라고 그렇게 칭찬하더니, 지금 이게 무슨 말장난이냐고 생각하시는 분들, 분명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방수윤 작가님께서는 진짜 잘쓰셨습니다. 이 말에 한 점 거짓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재능과 실력으로 사진을 찍어도, 원판이 매력적이지 않는 사진은, 작가의 실력과 기술에 감탄하고 배울 점은 많은 '작품'일 수는 있어도, 절대 '예술'은 될 수 없습니다.
허부대공은 '허부대공'이란 사람이 주인공이자, 원판이며, 가장 중요한 매력의 척도입니다. 그런데 이 허부대공이, 8권에서는 도저히 봐줄 수 가 없더군요.
'찌질함'을 아무리 천재적이게 묘사해봤자, '찌질함'이 가시지는 않죠. 오히려, 강조하는 효과가 있으면 있었지. 그런 작품은, 독자 입장에서 '작가'를 칭찬하고, 괜찮은 작품이라고 '평가'받을지언정, 독자에게 진정 가깝게 두고 즐기는 '만족'을 주지 못하는 반쪽짜리일 뿐입니다.
따라서, 작가님의 뛰어난 필력이, 오히려 허부대공의 비매력을 감추기는 커녕 더욱 강조하여, 결국 작품의 매력을 떨어뜨리는데 한 몫한 셈이 되었죠.
아이러니 하다고나 할까요. 필력이 뛰어나 글의 매력을 떨어 뜨렸듯이, 허부대공이 8권에서 매력없게 된 것도 뛰어난 성격설정 때문이거든요.
본디 허부대공은 정이 많은 성격이라, 문후의 복수에 처절하게 불타오르지만, 착하고 이해심도 많기에 결국 시간이 흐르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본성과 복수심이 내부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시간 문제였습니다. 이런 갈등은 8권에 이르러 심마가 되어, 그의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주위를 결핍으로 채우는 원흉이 됩니다.
이런 사실적인 성격 묘사덕에, 8권의 허부대공은 천룡맹의 대공으로써 천룡맹의 무인을 문후의 수하인 동시에, 배신자이자 반역의 암묵적 동의자이며, 수뇌의 잘못에 충성한 죄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자, 복수의 여정에 필히 자신을 죽일 것이 뻔하기에 죽일 수 밖에 없는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최선을 다해 최소한의 피해로 복수를 이룩하고자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죽음들에 괴로워 하죠. 괴로움이 커질수록 여유를 잃어가고, 자신의 계획을 좀더 완전히 하는데 매달립니다. 그것이 최선인양.
그런 이유로, 8권에서의 허부대공은 치밀하고 정명대심하여 언행에 치우침이 없을지는 몰라도, 맨처음부터 눈부시게 빛나던, 따뜻한 배려와 냉철한 사고가 결합된 그의 언행에서 풍기던 아름다운 인간적인 내음을, 그 매력을, 그는 상실했습니다.
더군다나, 심무의 영향인지 더욱 인간미에 멀어져 가고 있죠. '심연을 볼때, 심연도 우리를 보고 있다.'는 말처럼 인간의 정신을 다루면 다룰수록 허부대공은 낮설어져 갑니다.
예전에 시장에 악역 전문배우셨던 분이, 그 때 한창 뜨는 드라마에서 신들린 듯한 연기로 주인공을 괴롭히다 보니, 시장 할머니들한테 고무신으로 맞았다는 이야기 처럼, 허부대공은 글의 개연성과 뛰어난 글 솜씨가 어울어진 참 좋은 글인데, 그러한 장점이 투철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매력을 반감시켰다고나 할까요.
이런 치밀함이 반영된 허부대공은 8권에서 문제가 많은 인간이 됩니다. 말은 옳죠. 명확하고, 사려심 깊고, 구구절절 완벽합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행동이 인간에서 멀어지고 있는데. 그는 점차 성인에 가깝게 오욕칠정에서 벗어나 해탈하여 부처에 이르거나, 우화등선한 신선에 가까운 아우라를 풍기고 있습니다만, 탈속하여 인간과는 거리가 멉니다.
8권을 읽다보니, 그의 언행 모두가 휼륭하여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지만, 허부대공을 기꺼워 하며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더군요.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글 읽으면서 '허부대공'이 이렇게 거리감 느껴지는 건 처음이랄까요.
기천오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미우면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언행이 곧아서 욕으로 풀 수도 없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왠지 이런 생각하는 내가 나쁜 것 같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 보지만 결국 멀어지는 마음은 어떻게 잡을 수 있겠습니까?
복수에 마음이 멀었지만, 정명대심과 옳바름을 잃지 않으려고 절치부심하는 허부대공의 심정은 이해 됩니다만, 그렇게 여유가 없다보니 초심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무림맹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수하를 일벌백계하는 장면은, 어쩔수 없이 내 몸같이 아끼는 가족들을 단호한 낮빛으로 벌하지만, 사실은 피를 토하는 심경이라, 그 심정이 너무도 절실한 나머지, 심무의 공능이 움직여 그들 모두의 고통을 똑같이 받는 감동적인 스토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귀함도 느껴지지 않았고, 감동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타까웠죠. 가족같은 사람에게,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속으로 혼자 삭히면 누가 알아 줍니까? 허부대공의 진실된 마음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계획을 실토한다고 따르지 않거나, 연기에 진정이 없을 사람들 입니까? 왜 그들의 마음을 자신이 미루어 짐작하며, 자신이 혼자 독박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들이 자신을 무조건 적으로 믿어 줄 테니까? 예, 허부대공이 죽으라면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죽을 겁니다. 이유? 굳이 몰라도 됩니다. 다 뜻이 있겠거니 하겠죠.
단지 그들이 참을 수 없는건, 거리감입니다. 자신들을 믿고, 신뢰하는 허부대공의 마음은 짐작하여도, 그의 신뢰와 믿음은 홀로된 것임을 그들은 느끼고 있거든요. 믿음과 신뢰는 같이 하는 것임을, 자신의 신뢰와 믿음이 너무 튼튼한 허부대공은 모르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천오가 암시되었듯(?) 배신이라도 하면, 그 때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할지, 불쌍합니다. 허부대공.
그렇다고, 허부대공이 매력적이기 위해,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일부러 실수나 약점을 보이는 것도 우습죠. 그건 해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 같다는 일체감을 주는 인간 관계의 윤활류이기도 합니다만, 허부대공의 경우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그런 시도는 좋으나, 결국 자신의 본성을 속이는 처세술일 뿐입니다.
허부대공의 본성은 다정다감에 진솔하고 신의가 있으며, 생각이 깊고 진실하여 무겁죠. 분위기 메이커랑은 전~혀 거리가 멉니다. 사람이 안하던 짓 하면 죽을 날이 가깝다고, 문후랑 만나지도 못했는데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깨닳음 입니다. 그는 자신의 언행이 설령 옳을지라도, 마음에 소탈함과 애정이 없다면 결국 인간에게 멀어지고, 경원의 대상이 되어, 섞이지 못하니 언행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미소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그 이치를 깨닳아 자애로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허부대공의 그런 아름다운 미소를 언젠가 보기를 기원합니다.
소탈하고, 여유로우며, 사랑이 묻어나는 사람 내음이 그의 언행에 더하여 진다면 그가 못 이룰 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함께 즐거워 하며, 농담도 기꺼워 하며, 미소가 그치지 않는 인의무적 허부대공.
그렇게 다음부터 허부대공이 그려진다면, 그의 매력은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 독자분들에게 즐거운 바요, 작가분에게도 노력과 수고에 걸맞는 찬사를 듣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글이 오히려 너무 충실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매력이 떨어졌지만, 작가님께서 허부대공의 매력을 빨리 완벽한 개연성으로 부활시켜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만 감상을 마칠까 합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저의 허부대공에 대한 넋두리를 읽어 주신 모든 분께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며 허부대공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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