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수담 옥
작품명 : 사라전 종횡기
출판사 : 드래곤 북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읽으실 분들은 거의 읽으셨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10권을 완독한 지금 소열의 생각을 이해는 할 망정 도무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피 끊은 청춘이건만 그 열기는 다 어디로 날려버리고 이미 갈 때까지 간 명조를 방치하는 어리석음을 내세우고 '막연한' 희망따위에서 분쇄도를 완성시킬 대의를 깨닫는 것인지 도무지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충의라면 이해가 되겠는데 그도 아니고... 그의 대의는 강호민초의 삶이 아니었던가요...
자금성이 아닌 낙산을 향한 그 어리석은 회군으로 숭산에서 십수만의 헛된 들꽃 무인의 죽음을 만들고도 좀 더 멀리 보는 혜안을 깨닫지 못하고 그는 또 다시 이상론을 앞세우고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방치하며 작품이 마감됩니다. 가히 자명과 취산의 과오만을 합쳐놓은 듯 싶습니다. 대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생풍파를 겪으며 완성되는 것. 청무련주직을 수락한 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조금 성장하는 듯 하였으나 왠걸... 낙산 회군을 기점으로 그는 오직 정에 휘둘려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용화성 시절 우유부단한 외강내유의 촌부로 퇴보합니다. 취산의 제자이고 자명을 존중한다면 그는 련주로서 청무련 들꽃무인들의 가슴 끓는, 하나된 청조의 대의를 그렇게 그 자신만의 정에 이끌려 전체를 희생시켜서는 안되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그는 개인이지만 개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창하게 백학과 청록처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를 논할 정도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계몽되지 않은 제국사회에서 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가 살 수 없고 한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절대군림하려는 그는 - 소열 자신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작품 말미에 내세 운 율령은 그 자신이 모든 이의 위에 절대 군림하지 않고는 이루어 지지 않을 내용입니다 - 두 가지 길 외엔 민초의 피를 멈출 길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호랑이의 포효를 들으며 혀를 물던지 자신이 호랑이가 되던지. 그렇지 않으면 제국사회에서 피가 마를 날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마치 일본인을 야생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았던 그 오랜 전국시대처럼 말이죠.
하지만 소열은 만병제가 그 의로운 죽음으로 명분을 주었고, 소두압이 유지로서 바랬던 청조의 꿈을 먼 훗날로 미루어 버리고 춘추시대를 연장시키고야 맙니다. 힘 없고 인물없는 자금성에게 무엇을 바란 것인지. 한 두해 피흘려 극복될 역사의 필연적인 혈업을 스무해 이상이나 연장시켜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버립니다. 가히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반역자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함흥차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기엔 이미 흘린 피가 너무도 큽니다. 철부지의 변덕이라기엔 앞으로 흐를 피의 홍수가 너무도 거세고 길어 가슴이 먹먹할 따름입니다.
인물에 너무 깊히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삼국지의 그것처럼 작중에 나오는 인물들의 피눈물이, 그 땀방울이 올올이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을 준 작품이었습니다. 만병제의 죽음에 13조와 함께 울었고 50조와 함께 취산의 협을 느끼며 얼큰한 주향에 빠져들었고 검제와 함께 조빈의 카리스마에 전율했으며 무불련 들꽃무사들과 함께 자명의 이상에 심취해 검을 들었습니다.
극히 개인적으로 소열의 행보에... 그 답답하고 아이같은 변덕스러운 행보에 너무나도 분통이 터졌습니다. 웃기는 일입니다. 한 작품을 읽었는데... 10권의 분량이고 실상 제대로 이야기를 풀자면 100권도 모자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지금 주인공인 소열보다 작품을 관통한 주제였던 자명과 취산, 그 파란만장했던 행보에 목마릅니다. 만병제가 되어 자명의 이상을 향한 치열한 투쟁에 함께 검을 들고 싶고, 취산의 허허롭지만 뜨거운 협의에 술 한잔 마주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알고 싶고 그들과 함께 숨쉬고 싶습니다.
수담님 무제국 투쟁사 1부 집필을 서둘러 주심을 간곡한 마음으로 청해 봅니다.
p.s 작품이 어려워서 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평을 많이 봤는데 제 생각에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물이 살아있고 구성은 선명하며 문체가 유려합니다.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장르문학에서 가장 기대하는 그것, 바로 '대리 만족'이라는 측면에서의 시장성은 약간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생생히 살아있는 작중인물들의 행보에 울고 웃게 되고 박진감 넘치는 스케일 큰 전투에 손에 땀을 쥐지만 정작 일반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주인공에 의한 대리만족이 약합니다. 소열이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것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딱 터뜨려주면 좋겠는데... 할 부분에서 딱 막아버립니다. 앞으로 터질 것이라는 암시도 없이 그냥 딱 잘려버립니다. 어찌어찌 강해져 가는데 계기가 뚜렷하지 않고 설정이 약간은 모호합니다. 오히려 야달과 유정의 성취와 그들의 성정이 저에겐 더욱 매력적입니다. 분량상 길게 다뤄지진 않지만 말이죠 ㅠ.ㅠ 마지막 장면에서 대륙무인의 정점으로 오르지만 대리만족의 달콤한 카타르시스는 부족합니다. 이왕 줄 거 좀 시원시원하게 주면 안되나... 대성할 것이라는 복선이라도 좀 강하게 심어주면 어떨까.. 만약 시장성의 패인이 있다면 이 카타르시스의 부재와 더불어 군대 경험이 없다면 전혀 공감가지 않을 유머가 에피소드 수준을 넘어서 너무 과하게 삽입되어 있었던 점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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