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길조
작품명 : 숭인문
출판사 : 발해
무협을 오래도록 읽다보니, 무림의 숨은 세력, 피맺힌 원한, 엄청난 기연, 아름다운 미녀와의 사랑, 복수행과 같은 강렬한 이야기가 점점 무감각해져 가곤 한다. 본인도 그런 상태가 된지 오래여서, 때때로 그런 거창한 이야기보다, 조금은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더 호소력있게 다가 오곤 한다.
숭인문은 숭인문이라는 소문파의 '평범한 사형제'들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물론 그들은 여타 무협처럼 무시무시한 무공과 대단한 내력을 숨긴 겉만 평범한 사형제들이다.
무협의 기본 목적이, 주인공에 대입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는 독자의 즐거움이기에, 어쩌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무협의 진행방식이라 하겠다. 무공조차 평범한 주인공을 가진 무협이 재밌을려면 얼마나 작가가 신필이어야할런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수 없다.
어쨌든 숭인문은 겉만 평범한 소문파의 사형제들이 숭인문이라는 문파의 괴이한 전통을 지키면서 강호를 헤쳐나가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무공을 가진, 천상 주인공인 양진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다, 점차 귀염둥이 사매 종염방을 비롯해, 따뜻한 여러 사제들의 이야기로 퍼져나가, 결국은 모든 사문 형제들이 살아움직이는 교묘한 진행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다양한 등장인물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기란 정말 힘든일이라는 것은 여러 소설을 읽다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인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떨어지는 몰입도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는 너무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때때로 그런 장애물을 뛰어넘는 작품들이 있고, 그들은 당당히 기억에 남을 수작의 자리에 올라서곤 한다.
나는 숭인문을 읽으면서, 그와 같은 수작의 향기를 느꼈다.
물론 여러 사형제를 옮겨가며 하는 이야기 진행은 1인칭 주인공시점처럼 강력한 몰입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4권을 마치며 이제 나올 인물은 거의 다 나왔고, 그들은 하나 하나가 통통 튀며, 살아있는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이제는 그들이 어우러지며 점차 큰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고 있으니 어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작가분의 첫작품이라는 것이, 절대 믿기지 않는 수려한 문체는 나에게 숭인문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속삭인다.
종합평점-8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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