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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름: 베딜리아 성무 일지
작가: Girdap
글 있는 곳: 문피아 완결란
ㅡ 베딜리아 성무일지
몇 가지 우연이 겹쳐 사람들 기억에서 지워진 마을, 베딜리아.
서류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베딜리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 마을 출신 소년이 왕국 최고 대학에 수석 합격하면서부터입니다.
발 빠르게 세금을 매기는 국세청에 뒤이어 종교계에서도 이 산골 오지에 신부를 보냅니다. 그런데 마을 주민은 소 닭 보듯 시큰둥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국가 보호나 종교 가호 없이 지금껏 잘 살아온 베딜리아 주민입니다. 오히려 간섭도 안 받고 세금과 신성세 부담 없었던 옛날이 더 좋았지요. 한마디로, 신부는 그리 달갑지 않은 외지인일 뿐입니다.
몸은 약해도 의욕과 결의만은 짱짱했던 젊은 신부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겪으며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합니다.
게다가, 평범해 보이던 주민 중 몇몇이 알면 알수록 그 정체가 수상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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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님이 창조해낸 소설 속 마을 베딜리아에서, 숨 탄 존재들은 현실의 우리네 인생처럼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공부 잘하는 옆집 아들내미 때문에 수험공부에 시달리는 소년이 있는가 하면, 마을 잔치에서 서로 어울려 노래를 부르던 이웃끼리 드잡이질을 하기도 합니다. 차원을 넘어온 소녀, 종족과 나이를 초월한 연인 한 쌍. 술을 즐기는 수호 신령. 하루하루 단 한 번도 지루함이 없었다고 말하는 수백 년 묵은 뱀파이어. 치열하고 엄격하게 인생을 헤쳐온 여인. 순둥이인 줄 알았는데 한 성깔 하는 신부님….
몇몇 기이한 존재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평범한(?) 산골 마을이지만, 볼거리는 풍성합니다. 생활 밀착형 묘사는 소박하면서도 사람 냄새나는 삶의 현장 그 자체이지요. 서로에게 사랑이 되고 상처가 되는 그들 삶의 기록은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가슴 저릿한 순간순간으로 가득합니다.
가장 상처주는 존재도 사람이지만 그 상처를 치유 하는 존재 또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인간 세상의 원리를, 작가는 시종일관 온기 어린 시선으로 풀어갑니다. 그리고 곳곳에 포진한 웃음 코드와 재기 발랄한 입담이 소설 속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으로선 껄끄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글 후반부 중간 중간에 과거 이야기가 많은 분량으로 끼어든 탓에 몇 번이나 멈칫거렸습니다. 주변 풍경을 즐기면서 앞을 향해 걸어가고 싶은데 자꾸 걸음을 되돌려놓으니 말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 진짜 알고 싶고 흥미가 있는 것은 지금 현재와 앞으로 펼쳐질 내용입니다.
과거는 그 과거의 영향이 미친 현재 사건이나 인물의 묘사에 얹어 은유와 암시로 드러내었을 때 가장 부담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페이지를 할애한다 해도 될수록 짧게 끝내는 편이 글 몰입감과 집중력에 유익했지요. 서너 페이지가 넘게 되면, 나머지 분량은 외전으로 빼버리는 게 글의 속도감과 전체의 균형 면에서 나을 때도 있습니다. 작가가 진짜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라 해도, 과거 이야기가 '액자'가 아닌 방 전부가 되었을 때는 갇힌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저의 주관적인 단평입니다. 외전이 아닌 본문에서 과거 이야기를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그 의견을 모두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ㅡㅡ 아쉬움
'베딜리아 성무일지'를 읽으면서 왠지 동화책 읽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했습니다. 아끼던 등장인물들 모두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무사해서 안심하며 마지막 외전을 읽었지요.
좋은 글을 읽은 기쁨으로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책 마지막 페이지를 믿었던 어린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습니다. 어린애는 자랐고 백설공주의 계모가 사실은 친엄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우리가 읽는 동화책 중에는 굉장히 잔인한 원전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동화책으로 세상에 나오면서 많은 부분이 깎이고 편집되었지만요.
마찬가지로, '베딜리아 성무일지' 곳곳에서 잔혹한 사실과 비극을 덜어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비참한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꺼져버린 불발탄만 피시식거립니다. 세금 수납인, 애리, 여동생, 과거의 촌장 등의 에피소드에서 한 번쯤 대폭발이 일어났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잔잔한 눈물도 물론 기분을 정화해주지만, 가슴 속 앙금과 감정의 찌꺼기를 몽땅 씻어내릴 수 있는 통곡의 카타르시스에는 못 미칩니다.
만약 작가님이 타협점에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풀어내셨다면, 과연 '베딜리아 성무일지'는 어떤 글이 되었을까….
지금 현재의 따뜻한 분위기가 어둠에 덮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모르지 않습니다만, 모험에 가까운 과감한 시도야 말로, 출판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작가만의 특권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처럼 보기 드문, 그야말로 정진정명의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걸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암살자도 아닌 기사에게 연달아 암살을 지시하는 성왕이 나오는 과거 부분은 이 소설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듯합니다.
소설 속에서 특별히 다른 언급이 없는 한,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사물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기사와 암살자를 구분합니다. 각자 역할과 이미지가 다르지요. 그런 의미에서 암살자도 아닌 기사에게 왕이 거듭 암살을 명령하는 내용은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자비로운 성왕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이미지메이킹과 언론 조작에 신경 쓰는 왕입니다. 그런 왕이 비밀공작의 일환일 불순분자 처리에, 일 처리 거친 데다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기사를 계속 암살자로 써먹으니 말입니다.
배신당하고 좌절하는 정의의 기사, 진실을 감추려는 권력자, 권력과 결탁한 신당 세력, 이들 셋을 하나로 엮으려다 무리하신 걸로 보입니다.
인물 중심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단점이 모두 있는 글이라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만, 사실 '베딜리아 성무일지'는 장점 부분에서 여러모로 탁월한 글입니다.
작가의 철학이나 인물에 초점을 맞춘 소설은 자칫하면 자위에 가까운 일방통행의 주장이나 한도 끝도 없는 잡념의 파노라마가 되기 쉽습니다.
그에 반해, Girdap 님 글에서는 군더더기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누구 하나 겹치지 않는 개성적인 캐릭터와 물고기 낚시하듯 필요한 만큼만 건져 올리는 심리 표현, 깔끔한 대사는 그저 감탄만 나옵니다.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그 사유를 오롯이 이야기에 녹여내는 글솜씨는 타고났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오타와 비문과 처녀작의 어설픔이 보이는 문장도 없지 않지만, 상황과 인물의 묘사에 딱 떨어지는 간결한 문장은 절묘하기까지 합니다. 시도 아닌데 깊은 뜻이 함축되어 운율감까지 느껴지는 구절을 만날 때는, '시는 소설을 걸러서 노래로 부른 것이요, 소설은 시를 풀어 쓴 이야기'라고 말한 누군가가 생각나곤 했습니다.
훗날에라도 Girdap 님이 사건 중심 소설에 흥미를 느껴 그 분야를 강화한다면, 그야말로 양수겸장의 대작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랑이 등에 날개 단 듯 말입니다.
ㅡㅡㅡ 감사 인사
순수 문학이든 장르 문학이든,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글을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쁘게 반짝이는 금 알갱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베딜리아 성무일지'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우리 모두 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깊이 생각에 잠기는 인류 공통의 숙제라 할 것입니다.
신의 존재하심을 믿는가
사람과 뭇 생명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의 삶이란 비극일 수밖에 없는가
선과 악이 뒤엉킨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어디까지일까.
그들이 연꽃씨처럼 품고 다니던 화두는 은밀하면서도 꾸밈이 없습니다. 우리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슬그머니 일깨웁니다.
글 읽는 재미가 있는 이야기 덕분에 등장인물의 처지에서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 되어버립니다. '베딜리아 성무일지'를 읽으면서, 너무 무거워 내려놓았던 묵은 생각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써주신 Girdap 님, 읽어보라고 권해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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