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조인
작품명 : 레인(Rain)
출판사 : 영상노트
제가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인터넷에서 일곱번째기사의 표절논란이 일어난 소설이 출판되었다는 친구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로즌님의 팬인데다 일곱번째기사를 높게 쳐 없는 돈을 털어 소장까지 한 저이기에 눈에서 불이 일어 요즘은 잘 가지 않던 대여점으로 달려갔지요. 그리고 당장 세 권의 책을 빌려 펴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세 권의 책을 모두 읽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1권부터 3권까지 쭉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표절은 아닌데.’였습니다.
사실 프롤로그 이후의 진행이 일곱번째기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분노하면서 읽었던 듯하군요. 어딘가에서 헤맨다. 그리고 주인공의 심리가 드러난다. 그러다가 오크를 만나서 구해졌다가 그 세계의 인간들에게 잡혀 귀족을 사칭한다.
솔직히 말해 이 부분에서 긴가민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줄거리는 소소한 것들이 다를 뿐이지 대체로 비슷해서 비슷하다, 정도로 생각되더군요. 판타지의 단골손님이 오크니 말입니다. 오히려 이후에 드러나는 오크들과의 관계는 레인이 일곱번째기사와 완연히 다른 소설임을 확신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레인이라는 글은 사실 굉장히 서툴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또한 굉장히 매혹적입니다.
평범한 한 청년이 이세계에 떨어져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살아간다. 너무나 흔하고 식상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글은 분명 양산(무례한 표현이나 이 이상 적합한 비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썼으니 이해해주시기를)작품이 범람하는 현 장르문학계의 몇 안 되는, 기대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중에 서문을 읽어보니 그럴듯하다고 느낄 만한 글을 쓰고 싶다고 작가분이 적어두셨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 캐릭터를 풀어두었더니 소설이 되었다고요.
이 레인이라는 소설은 작가분의 말대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작품 내에서 캐릭터들이 서로 ‘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말입니다(사실 그리 밝은 소설이 아니라 그 소통의 대부분은 적대적이라고 봐야하겠습니다마는).
이것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캐릭터를 사람들의 눈에 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 소설 속의 사건에 현실감을 준다는 것. 웬만한 작가들은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레인도 여타의 심하게 미숙한 작품들에 비해서는 낫지만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많이 모자라다고 해야겠습니다만.
제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한 것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분의 유려한 문장 덕분이었습니다. 이 작가분의 문체는 조금 독특한데 묘사가 자세하고 고풍스러워 마치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본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음, 쓰다 보니 왠지 칭찬일색이 되었군요. 하지만 비평이니만큼 제가 느낀 안타까운 점들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용 자체는 미리니름이기에 되도록 안 밝히도록 하지요.
레인을 보며 분명 작가분이 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젊은이들의 특징은 어떠한 사건이나 생각이 매우 극단적이라는 것이지요. 레인은 그러한 젊은이의 향기가 났습니다.
초반에 주인공이 영지민들에게 연설을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서 영지민들은 주인공의 연설에 감명을 받고,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에 놀라지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실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이 민주적인 사고를 이야기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차라리 넣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수정은 했어야 합니다.
소설 내에서 여러 인물들이 매우 강렬한 감정의 굴곡과 변화를 겪었으나 글을 읽는 독자는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전후과정은 생략된 채, 돌연히 나타난 사건은 독자를 황당하게 하고 어색하게 하며, 심하면 책을 덮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초반에 주인공의 경악스러운 신체능력이 나옵니다. 열 시간에 수백킬로미터를 주파합니다. 뒷권에 주인공의 신체능력이 밝혀지지만 초반에는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설령 직접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신체능력의 원인을 짐작할 단서조차 없습니다.
만약 작가분이 주인공이 점프를 했는데 몇 미터를 뛰어 놀라는 장면이라도 넣었다면 독자들은 주인공이 경악스러운 신체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인물의 극단적이고, 빠른 감정변화가 있습니다. 이는 삶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작가들이 거의 필연적으로 가지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분이 인생의 경험을 쌓고 글을 쓰시며 고쳐질 거라 생각합니다.
2권에 나오는 약혼녀의 이야기가 위의 단점의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약혼녀와 주인공은 만난지 한 달 만에 사랑하게 됩니다.
물론 양산작품처럼 어처구니없는, 심하게 말해 여성이 주인공의 ‘섹돌’이 되는 수준이 아닙니다. 약혼녀는 현명하고, 자상하며, 후에 주인공을 크게 깨닫게 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사실 나이 많은 남자답지 않게 로맨스소설도 가끔 보는 저는 순식간에 작가분이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깨달아서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작가분은 분명 중세의, 기사와 영애의 불꽃같이 순식간에 타오르는 로맨스를 모티브로 삼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약혼녀에게 마음의 상처라는 양념도 가미하신 듯합니다.
분명 이 로맨스는 그럴 듯합니다. 허나 장르문학에서는 그럴 듯하나 로맨스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많이 부족합니다.
작가분이 억지로 내용을 압축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야하는 장르문학작가, 그것도 신인의 숙명인지, 아니면 작가분의 스타일인지는 한 작품밖에 보지 못한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짧은 지면에 표현된 이 로맨스는, 독자들에게 흐름을 따르기 어렵게 만들고 심하면 유치함 혹은 낯간지러움을 느끼게 하겠지요.
총체적으로 보아 이 레인이라는 작품은 신인의 글입니다. 신인작가들이 흔히 첫 작품을 쓸 때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연대기’ 수준의 장편을 구상한다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말입니다.
레인은 분명 그렇게 구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환상을 구사하지만 레인은 장편이 어울리며 독자 역시 십대의 감성이 아니라 이, 삼십대의 감성에 어울립니다. 굳이 따지자면 남자의 야망에, 일까요.(웃음)
하지만 현 시장에서 레인은 성공하기 어려울 겁니다. 언제고 작가분이 실력이 늘고, 원하는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을 여건 하에서 쓰신다면 대작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된 것은 레인을 쓴 ‘조인’이라는 작가에게서 잠재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상당한 잠재력을.
1권은 신인답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중간에 한 번, 후작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마치 그 장면을 직접 보는 듯, 전율을 느낀 것을 제외하면 그럭저럭이라고 해야겠지요(미리니름은 죄송합니다).
2권에서는 독특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조금 안정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주로 로맨스와 정치이야기라서 내용은 말할 수가 없군요.
3권에서는 놀랐습니다. 넘쳐나는 클래스의 마법도, 수미터의 검기를 내뿜고 무협마냥 심법까지 써 쏟아져 나오던 소드마스터도 없었습니다. 아니, 소드마스터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드마스터는 그 세계에서 진정한 ‘검의 달인’이었으며 그것을 그려내는 모습이 저에게 흥분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작가에게 기대를 하게 된 것은 3권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공은 한 번의 정신적 각성을 겪습니다. 솔직히 말해 1, 2권에서 이성적인 주인공이라는 묘사답지 않게 좌충우돌하고 갈피가 없는 모습을 보아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죽음과 소중한 이들의 도움으로 주인공은 변하기를 다짐합니다.
그리고 어제(사실 며칠 전에 이 비평을 쓰기 시작했는데 4권이 나왔더군요.) 본 4권에서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작가는 분명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던 청년이 삶을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어떻게인가 글의 문제점을 깨닫고 극적인 변화를 꾀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애초부터 그러한 것을 계획한 것인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토록 빠르게 발전하는 작가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발전했다고 해서 수많은 명작가들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감히 말하기를 언젠가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단점이 많고, 시장에 맞추려다가 자기색을 가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 조인이라는 작가와 그 잠재력은 늙은이 하나를 반하게 만들었고 그 늙은이는 혹시 이 어린(사실 확실하지는 않군요.) 작가가 표절의혹으로 인해 펜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생각 같아서는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글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 좋은 기분입니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주저리주저리, 두서없이 길고 긴 비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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