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임준욱
작품명 : 쟁천구패
출판사 : 청어람
임준욱. 그는 사랑의 마술사이다. 어떻게 하면 멋지게 사랑할 수 있을지를 가르쳐 주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인도하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모두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는 맡지 못하지만 주변인들은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체취와도 같은. 비릿하지만 뜨거운 핏물이 흐르는 붉은색. 드넓은 창공과 끝없는 바다와 같은 푸른색. 보고만 있어도 따스해지는 노란색. 기타등등 수많은 빛깔들이 작가들의 글에 묻어난다.
작가 임준욱의 글은 따스하다.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정(情)이라는 화두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안는다. 저 하늘을 비추는 둥근 보름달이 심장으로 파고드는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절대적인 선(善)과 절대적인 악(惡)이 없는, 인간냄새가 나는 세계를 그린다. 나는 그래서 임준욱이라는 작가를 사랑한다.
노자가 주장했던 처세철학 중에 "세상과 다투지 않고 조용히 편안함을 추구하라"는 대목이 있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천리(天理)를 거스르지 않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자 할 뿐이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되 바람이 가만히 두질 않지만 허허 웃을 뿐이다. 그들의 눈엔 고통받는 민초들이 보인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구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이 흐르는 대로 놓아두는 것이 무리가 없음을 알기 때문일까? 따스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여기서 이단아가 하나 탄생한다.
쟁천구패(爭天求覇). 하늘과 싸워서 패도를 구한다니, 웅심(雄心)에 가득 찬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게 된다. 임준욱 작가와는 배치되는 빛깔을 가진 이 제목이 뜻하는 바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쟁천구패의 주인공 우쟁천은 어려서부터 거친 삶을 살아왔다. 떠돌이 무인인 아버지 아래서 낭인들과 살을 부대끼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세상이 더없이 비정함을 깨닫게 된다. 쟁천이의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은 더이상 푸르른 빛이 아니다. 잔혹하고도 비정한 검붉은빛 세상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쟁천이는 결심한다. 이 불합리한 세상을 깨부시고 홍락의 세상을 열기로. 우쟁천은 난세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힘으로 패도(覇道)를 구하려 한다. 여기에서 쟁천이 다른 주인공들과는 확연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쟁천은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한다. 맹자는 패도란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므로 왕도와는 다른 것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작가는 우쟁천의 언행을 통해 그것에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의 검심에 등장하는 시대의 사무라이 '사이토 하지메'가 항상 부르짖는 말이 있다. "악즉참(惡卽斬)" 악인 하나를 베어 백명의 의인을 구한다는 지극히 이성(?)적인 생각이다. 사이토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리학이 도입된 이후에 왕도와 패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논란이 계속되었다. 그런 도중에 기존의 문제는 달나라로 붕 떠버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이론만 수북해졌다. 하지만 정착 민초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먹을 수 있는 쌀 한 톨과 힘있는 자로부터의 보호였을 따름이다.
손자들은 굶어 죽어가고, 아들은 징병이라는 명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다. 혹여 도적떼라도 들이닥치게 되면 여인들은 무차별하게 강간을 당하고, 남자들은 학살을 당한다. 이 잿빛의 하늘 아래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랑과 증오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다. 세상의 분진에 덜 찌든 백성들은 그만큼 감정에 충실하다. 우쟁천은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안기로 한다. 대신에 이들을 괴롭히는 썩어빠진 강자들을 가차없이 베어간다. 사자패도왕 우쟁천. 약자들을 위해 신명나게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복건을 통일하고 천하로 눈을 돌린 홍락방의 앞에는 거대한 적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진 자만이 베풀 권리가 있지. 홍락방은 계속 싸워야만 했다. 쟁천이는 친한 친구마저 자기 손으로 베어버리며, 하늘을 향해 앙천광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묻혀가며 이룬 홍락천하. 그 길의 마지막까지 따라가본 끝에 본인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뫼비우스의 띠를 아는가? 2차원의 띠가 한 번 꼬여 3차원이 되었듯이, 피(血)와 정(情)은 괴이하게도 한 곳에서 만나 있었다. 민초들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 백가현에 대한 애틋한 애정, 고승도에 대한 존경, 그 외에 모든 지인들에 대한 감정. 우쟁천의 칼질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혼원당의 여곤과 나누었던 대화도, 왕자 주우탱과 나누었던 대화도 결국엔 인간의 행복을 위함이 아니던가. 시선을 달리 하고 다시보니, 임준욱 고유의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서러운 일을 당해야만 했던 약자의 입장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아..쟁천이는 이단아가 아니었다. 여전히 노란빛을 띠고 있는 작가 임준욱의 아들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에게 쟁천구패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국민들을 이끄는 입장에서 응당 생각해봐야 할 화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은가? 그리고 반문해 보리라. 당신들이 쟁천이보다 나은 지도자이냐고. 홍락 대한민국을 위해 당신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느냐고.
무협 하나를 읽고 이렇듯 파생되는 생각들을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작가 임준욱. 개인적으로 세 손가락에 꼽는 무협 작가이다. 그가 쟁천이와는 또 다른 아들을 소개시켜주길 기대하며 간단한 감상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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