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임에도 이르게 하늘이 어둑어둑해집니다.
팔, 그리고 목 위로 가볍게 점을 그리는 물방울. 그 낯설은 차가움.
의아함이 시선을 하늘로 올렸을 때야 비로소, 삼킬 듯 지쳐드는 굵은 빗줄기를 봅니다.
그 수많은 생명이 서린 장렬한 낙화에 저는.
허툴 게 뜬 눈에 그제야 세상 풍경이 담기던 우리는.
습기를 검게 먹은 구름이 저 드넓은 하늘을 삼킨 장관에 흠칫 떨곤 했습니다.
항시 들리는 풀벌레소리마저 빗소리에 삼켜지지 않은지요?
내리는 비는 사람을 흩어놓고, 그 외로운 공간에 슬픔을 부릅니다.
소설 점창사일(點蒼射日)의 시작은 바로 그러한 곳입니다.
하늘에 내리는 비. 행복하게 귀향하는 남자 하나.
반쯤 남아 더 소중해진 소홍주가 술병 속에 찰랑거립니다. 맑은 눈동자, 밝게 빛나는 웃음.
적게 남은 술은 감질 나는 행복이었고, 재촉하는 걸음은 폐를 저미는 설레임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머리를 훌훌 털어가며 사문에서 자신을 기다릴 영매를 떠올리며 웃던 그는,
그가 속한 공간의 날씨와는 너무나 달라서 마치 그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늘에서 한없이 흘러내리는 pH 7.4 약알카리성 빗물은 마치 눈물과도 같아 짭짤했으니까요.
심연의 어둠 속에 작은 등불이 애처로워, 손으로 감싸는 양 숨죽이는 것도 잠시.
사문에 도착한 주인공 단리명을 기다리는 것은, 그를 발견한 어둠이 한 조각 자비조차 앗아간 현실이었습니다.
그래, 그와 사랑을 하던 영매 정영의 시신이 싸늘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를 삼킨 어둠. 압력을 이기지 못한 혈관. 피가 녹아든 선홍빛 눈물은 단리명의 볼에 붙어 떨어지질 않는군요.
하지만 그 비극을 바라보는 저는 아직 감정이 삼켜지지 않음에 안도합니다.
이입되기엔 미묘한 시기, 그리고 모르는 여자의 죽음.
어느 하나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지 않지만 주인공의 오열만큼은 너무도 진실 되어 따라 의문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누가 영매를 죽였는가? 어디로 가면 복수를 할 수 있나?”
그리고 제발 단리명의 능력이 하늘에 닿아 그들을 단죄할 수 있기를 빕니다.
쾅!
좁은 공간을 크게 울리며 으스러지는 집청전의 문.
박차고 섬전처럼 뛰쳐나간 단리명의 모습은 뿌연 물안개와 눅눅한 어둠에 가려 이미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진흙 속으로 젖어드는 부서진 문의 파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복수를 위해 떠나는 단리명, 그 빠른 결단과 움직임은 승산이 있음을 말하는가요?
그 복수 이후의 이야기에까지 벌써부터 호기심을 갖으며 그렇게, 깨진 술병에서 흐른 소홍주의 주향에 취해 있었습니다.
'깨진 조각은 누가 줍고, 젖은 방바닥은 누가 닦고, 부서진 문은 누가 고쳐야 하는가?'
그런 걱정들 없이 그저 폭우가 주는 비극적 풍취에 빠져 있었습니다.
점창사일 1화가 딱 그랬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이제 여정은 시작되었을 뿐이니 단리명에게도 우리에게도, 앞길은 창창하여 많은 기쁨을 줄 것이라 예상합니다.
현재 17화를 넘어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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