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선에 대한 감상에 앞서 임준욱님의 글쓰기, 결말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임준욱님은 헐리우드식 결말을 선호하신다. 주인공의 대활약이 끝나고 어떻게 먹고사는지, 그 구질구질한 일상을 한 자락 걸쳐 노신다. 내 표현 그대로 구질구질하다.
무협은 권선징악이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라 하겠다. 그 안에 사랑과 복수, 성장 이야기를 집어넣어도 결국 권선징악이 가장 큰 주제라 하겠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대활약상을 끝으로 마무리 된다. 혹은, 열린 결말이라는 명칭하에 대적을 앞에 두고 글이 멈춘다. - 야설록님의 북경야의 경우를 생각하시면 되겠다.
우린 훌륭한 글을 읽고서, 최대한 감정이입의 결과로 후련한 결말 혹은 안타까운 결말을 마지막으로 책을 덮는다. 하지만 마지막 구질구질함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
작가님은 그것이 깨끗한 마무리,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심정이라고 하신다. 나는 그 부분이 나의 상상의 즐거움, 주인공의 더 힘찬 전진과 미래에 대한 상상을 일시에 구겨버리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 개운치 않은 심정이다.
최근,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소재인 검선(劒仙)형 판타지 성향의 소재를 가져왔다. 하지만, 중국의 1930년대 환주루주(이수민)에 의해 창작된 [촉산검협전]의 계보를 잇는다고도 할 수 없다.
나는 이 글에서 저자의 한계를 보았다. 작가로서 지니고 있는 한계를 본 기분이 들어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새로운 소재, 전개 방식을 기대하며 책이 완간되기를 기다려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후우....... 단숨에 읽지 못했다.
먼저, 가장 꼽고 싶은 글의 난맥은 무와 선술(仙)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를 공부하는 과정과 선학을 익히는 과정에 많은 노력과 자료를 덧붙여 중국의 선도 일맥까지 도입한 것은 흥미로우나 그것은 흥미에 그치고 만다. 선술에 대한 묘사에 있어, 눈에 보이는 무와는 달리 매우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환술의 경우에는 좀 더 추상적으로 표현하거나 생략하는 방법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운청산의 몸에 깃든 8 영혼 때문이다.
운청산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부친의 홀대도 육체의 고난도 아니다. 바로 정신을 놓아주지 않는 이 혼령들이다. 바로 이 때문에 무에도 입문하고 선에도 들어선다. 그런 그에게 무와 선을 익히는 과정이 그 과정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설명함에 애쓰고 있다. 이는 글의 후반에 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수련하는 과정을 개연성 있게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보다는 운청산의 고뇌와 시련을 당함에 대한 당위성 설정에 기반을 둔다고 생각된다. - 이렇게 단순화하기에 몇 가지 장애가 있으나, 큰 맥락에서 보자면 운청산은 그 혼령들 때문에 무와 선을 공부하지만 결국 그들로 인해 충분히 도달할 영역에 이르지 못하고 그 전에는 가족, 친지들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이는 작가의 재량이며 어디에 경중을 두느냐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로인해 무와 선은 조화롭지 못하고 서로 겉돌게 된다. 글 자체가 검선(劒仙)적 선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무를 시작으로, 바탕으로 하기에 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선이라는 주제, 논리가 부합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마치 중국 무협을 읽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선도와 무의 부조화와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운청산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마치 중국 무협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감정을 가질 수가 있단 말인가? - 이를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대륙적 기질이라고도 하고 남녀 관계에 있어 그럴 수도 있다며 말을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고 그들의 감정과 행동 - 상황의 예를 들면, 자신의 친인과 자신을 위해한 이가 동시에 어려운데 친인보다 대인대도라는 이유로 위해를 가한 이에게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검을 늦춘다던가 하는 상황들 -을 읽으며 가만히 책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올리기를 반복했다.
이상에서 보듯, 임준욱님은 인간의 감정에 너무 천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소설이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상에야 인간의 감정에 천착하는 바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에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 글의 중심, 무협이라는 글이 가지는 호쾌함과는 거리가 멀어진 글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전작 [건곤불이기]에서부터 드러나는 점,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한다는 점이다.
감정에 천착한 결과의 하나라고도 생각되는데, 쌓아놓은 감정이 절절해지는 만큼 쏟아낼 글이 늘어나고 이는 다시 글이 늘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냉혹하게 표현하자면, [감정의 과잉]이다. - 취향에 따라 이런 글을 선호하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소위 기정(奇情)무협이라 칭해지는 부류다. 대표는 김용이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좀 더 다듬어진 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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