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文>
대랑이라는 제목..어떻게보면 상당히 흔하다. 대랑. 큰 늑대. 에잇 또 늑대야? 하고 지나치기 일수다. 필자도 그렇게 몇번 지나쳤다. 하지만 여기서의 랑은 늑대가 아니다. 낭자의 낭이다. 대랑이라는 제목과, 본 내용의 흐름과의 관계는 필자의 미흡한 안목으로는 느낄 수가 없지만, 가장 이상적인 제목은 소설의 복선노릇을 하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대랑 또한 그렇게되기를 바란다.
<대랑-무협의 추세인가 아니면 작가의 안배인가.>
요 근래에 들어서 인연을 다루는 소설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한두권정도는 작가의 안배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인연이라곤, 기연과 몇몇 주인공과 관련된 인연만이 존재하던 기존의 무협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기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점점 많아지는 깊은 인연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설들을 보고는, 어떻게보면 걱정되기도 한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요리를 소재로한 소설도 조금 인기를 얻는듯 하자 양산되기 시작하였고, 그런 현상이 극에 달한것이 퓨전소설이었다. 필자는 우려한다. 인연이 인연을 물고, 구 인연의 당사자들은 만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소설이, 양산될까 두렵다. 물론, 이런 인연을 안배해놓는 소설을 초보작가들은 쓰기 힘들겠지만, 어느정도 경험있는 작가들에게는 썩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의미에서 필자는 대랑이 다만 무협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소설이 아닌, 작가 자신만의 의지로 창조된 소설이었으면 한다.
<대랑-권마징정에서 또다른 재미를 느낀다>
대랑의 소재는 사람의 흥미를 끌게한다. 명교의 협행과, 정파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물론 여기서 사파는 여전히 악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일단 열외로 치자. 정파의 위선은, 독자들로 하여금 입에 조소를 머금게 하며, 마교라 불리는 명교의 정당함은 독자들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소설이라는 것에는 한계가있고, 천의무봉이라 불리는 소설들도, 읽다보면 몇가지 옥의 티가 있다. 대랑 또한 한계가 존재한다. 대랑의 한계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마의 강호행과, 너무나도 위선적인 정의 모습이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남으로서 기존의 정은 선이요 마는 악이다 라는 체제가, 이름만 뒤바뀌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대랑-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대랑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인가. 의미없이 단순한 타임킬링의 소설인가. 아니면, 기존의 정파의 모습과 사파의 모습에 불만을 갖고, 그 불만을 토로하고자 한 소설인가. 필자로서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하나는 필자의 미숙함 때문이요, 둘은 작가의 어리숙함 때문이요, 셋은, 작가와 필자의 의견이 서로 상반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대랑을 읽으며 작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으니, 이는 필자의 어수룩함과, 작가와의 의견 불일치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번쯤 생각해 보길 바란다. 대랑이 무엇을 말하는가. 과연 자신이 보는 것 단지 그것 뿐이가를 말이다.
<맺음>
지금까지 필자는 대랑이라는 글에 대한 졸렬하나마 평가를 하였다. 물론 필자 또한 인간이니 큰 실수를 할 수 도 있고 하니 너그럽게 봐주길 바란다. 다만, 아쉬운점은 필자의 뇌용량이 부족하여, 생각해두었던 내용들이 전부 소각되고, 또한 임시저장이 불러오기가 되지 않아 다 날리고, 이런저런 사건들이 있었으며 시끄러운 도서실 내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였으므로, 퇴고또한 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필자는 심히 부끄러이 여기며 독자들에게 사과하는 바이다. 다음엔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 그대에게 쥬르여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2003년 11월 7일..
落花流劍이 강호의 여러 선배들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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