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봤던 중국 영화들이 그리워져 검색해 보았다가 썩 괜찮은 카페를 찾아내었다.
요즘은 거의 하루에 한 편씩 어린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던 중국 영화를 보며 산다.
그런데ㅡ
어릴 때는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던 중국 미녀들이 지금은 그저 그런 얼굴들로밖에 안 보인다. 리칭도 정패패도 초교도....
그저 촌스러워 보인다는 말이 아니다.
이목구비 자체가 완전히 ‘일반인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지금 하려는 얘기는 그 얘기가 아니고....
사람의 기억이란 게 참 요물인 것 같다.
분명히 내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돼 있던 명장면들이 몇십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그 필름에서는 아예 나오질 않는 것이다.
‘손오공과 철선공주’에서 요괴들이 천신들로 위장하여 구름을 타고삼장법사 일행 앞에 나타나 뭔가 거짓말을 한 다음 사라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내 기억 속에서는 구름 위에 앉은 천신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며 마치 공기 속으로 분해되는 것처럼 보이는 특수 효과로 처리되었었다.
그런데 막상 필름 속에서는 아무 효과도 없이 뻥 사라진다.
왕우 주연의 ‘외팔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문의 위기를 해결한 왕우가 이제부터 초야에 묻혀 무명인으로 살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에게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ㅡ
내 기억 속에서는 두 연인이 풀밭을 가르며 마주하고 달려와 서로를 안았었는데 실제로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인에게 왕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홧김에 왕우의 팔을 자른 성질 나쁜 사부의 딸이 간계에 넘어가 적의 소굴에 갇히게 되는 장면이 있다.
동아줄로 기둥에 묶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엑조틱한 소재였고, 그 장면에서 여배우가 입고 있던 금박 찍힌 보라색 의상 역시 내 심미 감각에 깊은 인상을 남겼었는데, 막상 필름을 보니 그 옷은 보라색이 아니었다.
도대체 내가 뭘 봤었던 거지?
제목도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아 찾을 수 없는 중국영화가 또 한 가지 있다.
그 영화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마지막 시퀀스 하나뿐이다.
여주인공이 혼자서 적의 본거지에 처들어가 수십 명의 적들을 모두 죽이는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 위아래로 온통 새하얀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귓불에는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의 초록색 구슬 귀걸이를 달고 있던 여배우의 패션 감각이 내게는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왔었다.
설마.... 그 초록색 귀걸이마저 내 상상의 소산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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