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나는 백화점이나 은행의 자동문을 통과할 때마다 '열려라, 참깨!' 하고 속으로 외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난관이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인생에 대한 젊은이다운 신뢰와 낙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차츰 나이를 먹고, 나를 힘들게 하던 난관들이 여전히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채 제 자리에 버티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내 주문은 '산 입에 거미줄 치랴'로 바뀌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암만 힘들어도 그렇게 중얼거리노라면 다시 기운이 생기곤 했다. 어떻게든 견뎌내겠지. 어떻게든 배겨내겠지. 어떻게든 이겨내겠지....
이것 말고도 내가 자주 외는 주문은 또 있다.
주로 대형 할인점 같은 곳에서 휘황찬란한 각종 상품들의 행렬이 자본주의의 매력을 강렬하게 내뿜을 때, 혹은 주머니 사정이 빠듯할 때 감칠맛 나는 스파게티 전문점이나 철판 요리점 앞을 지나갈 때ㅡ
그렇게 물질적 욕망이 나를 엄습할 때 나는 속으로 부르짖는다.
ㅡ사탄아, 물러가라!
(라틴어를 알면 더 좋았을 텐데.ㅡㅡ;;)
그리고 진탕 마시고 난 다음날 끙끙 앓으면서 공장 사출기 앞에서 버텨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외는 주문은 이렇다.
ㅡ프론티어 정신! 프론티어 정신!
(절도 있게 두 번!)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내게 가장 힘이 돼주고 있는 주문은 사춘기 때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수필집에서 발견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ㅡ우리가 모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 건강의 표현이다.
한창 예민하게 만사를 받아들이며 내 속에서 들끓던 모순에 시달리던 나를 끝까지 버틸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한 마디였다.
지금도 나는 정신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 구절을 마음속으로 또박또박 외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곤 한다.
그래, 나는 이 상황을 감당할 힘이 있어. 내 속에 존재하는 동물성과 신성을 동시에 받아들이면서도 정신병자가 되지 않고, 그러면서도 위선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강하기 때문이야.
내가 모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 정신적 건강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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