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설랑(雪郞)
작품명 : 부여섭 싸울아비
출판사 : 문피아에 연재중.
최악의 자위행위.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대체역사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입니다.
일반의 소설과는 달리 완전 허구가 아니라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군중에게 최대의 정신적 쾌락을 제공하는 이 장르의 특성은 나에게 시대적 자괴감(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을 불러일으키게 하여서 매우 꺼려하는 글무리로 취급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최근의 몇몇 소설에서 바뀌고 있습니다.
우선, 부여섭 싸울아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군데군데 덜컹거립니다.
개연성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장면들과 소설 전개를 위해 작위적, 관습적 묘사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들은 매우 적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습니다.
대체역사라는 거리낌을 제어하고 나면, 군략(戰略과는 한강의 폭만큼 차이가 있습니다.)이라는 장르의 글이 됩니다. 실제로 이 소설은 그에 더 가깝기도 합니다.
영지물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상의 세상으로 넘어가 자신이 차지한 땅을 발전시키고 넓혀간다는 이야기인데, 그것과 군략소설은 매우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
판타지 장르 안에서 영지물의 특징은 그 허구성과 그 축을 이루는 절대적 존재 혹은 절대적 힘에 의지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허구성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이야기의 전개에 가장 큰 틀이 됩니다.
군략소설은 실제 전장에 있었던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over technology)이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별개로 하고, 이 소설에서는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신 작가의 감정이 많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아! 한국인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작가의 개인적 감정이라는 뜻입니다.
전혀 생각하지조차 못하는 장소와 시간에 머물게 되는 현재 인간의 생각과 행동과 한국인으로서의 모든 생각과 행동도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작품에 충분히 몰입하면서도 탄성을 지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왜?
이런 탄성은 작가에 대한 찬사이며 동시에 몰입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작가의 의도가 성공했다는 다른 찬사로도 받아들여집니다.
실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전개가 치밀하게 기술하고 전개시키지만 독자가 잠시라도 전개의 축을 놓친다면 위의 의문을 들게 할 수 있습니다.
어렵다거나 혼동을 주지는 않지만 그 전개에 주의할 필요가 있고 충분히 주의하도록 재미있게 몰입시킵니다.
글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도 재미있고 그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도 매우 흥미로워서 절로 자료를 찾게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지적 흥미를 유발하면서 글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 이 작품에 찬탄과 찬사를 더하며 다음 전개를 고대하고자 합니다.
덧 글.
1. 개인지 출간을 간절히 요청합니다.
2. Faction 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사실과 허구를 섞어서 소설을 꾸미는데, 대체역사물이라는 것이 이 faction의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소비되고 있는 장르입니다. 역사도 오래되었고요. 당연히 외국에도 대체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문화물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 글들과 비교하여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는 글들을 생각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3. Over technology가 군략소설에서 등장하는 경우에도 아주 넘어서는 기술, 현재(21C)에 실현 불가능한 기술들이 등장하는 글은 군략이라기보다는 SF 라고 불러야겠지요. 이 두 가지는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결국, 실현 불가능한 기술에 의존하는, 판타지 장르에서의 절대적 존재와 힘과 구분할 수 없지요. 똑같아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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