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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전반에 퍼져있는 무신경하고 거슬리는 별호. 개념있고 알찬 별호를 위해 예전부터 품어왔던 생각 중 하나에 대해 몇 자 적겠습니다.
무협소설 A에는 절대오존이 있습니다. 검황, 도황, 장황, 창황, 마황. 그 밑으로 구주십걸에는 낭왕, 신개, 신불, 검선 등등 예쁘고 가지런하게 모여있네요. 옆집 판타지소설 B로 가보니 여기도 비슷하네요. 대륙십강이라고 검왕, 도왕, XX의 검제 뭐 그렇습니다. 옆집 건너 옆집 무협소설 C로 가면 여기는 염제, 도후, 패왕, 검신 뭐 비슷하네요.
그 동네들은 전부 무정부 상태인가요? 우와 정말 겁도 없지 별호에 皇, 帝, 王자를 붙이고도 잘도 살아 있네요. 황제들이 정말 대인배인가 봅니다.
예로부터 위에 있는 자들은 자신을 높이고 신비화시키고 다른 존재로 비춰지게 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 저 분은 나랑은 뭐가 다르구나'하는 경외감이 들게 말이지요. 그래서 지배자들은 거추장스럽지만 화려한 옷과 관을 썼고 등장할 때는 구름과 같은 연기를 까는 특수효과를 연출했으며, 궁궐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크게 지었습니다. 어떤 색깔을 지정해서 자신만 쓸 수 있게해서 차별화를 두기도 했고, 집의 규모(방의 개수)에 제제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권위를 높이는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켰고 신경질적이었습니다. 자기와 비슷해지려고하면 찍어누르고 싹이 자란다 싶으면 밟는게 민생안전보다 중요한 일과였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세요. 어느 무뢰배들이 감히 검의 황제(劍皇)고 도의 황제(刀帝)랍니다. 아니 이 놈들이?! 개작두를 대령하라!
어느 놈은 또 창왕槍王이라네요. 어 내가 모르게 제후로 봉해진 사람이 있었어? 얼굴 좀 보게 목만 썩둑 잘라서 가져와보도록하여라~
어느 아녀자는 또 무후武后랍니다. 아니 내 아내였어? 여봐라 불러들여서 부부의 마땅한 도리인 음양합일의 이치, 뼈가 불타고 살이 녹는 밤을 보내자꾸나~
어느 잡배는 또 황제 수준도 아까워서 그걸 뛰어넘었다며 神이래! 와 나도 그 분을 영접해서 은혜나 입어볼까? ....ㅡㅡ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너도 나도 황제다 왕이다 아니 신이다 이러면서 뽈뽈뽈 나라 안에 돌아다니면 황제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닌거고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황제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보통 소설 속의 황제들은 글에 한 줄도 안 나오며 저의 무정부이론을 뒷받침합니다. 주인공이 끝판에 대기권 뚫고 다른 차원 넘어가서 깽판 벌일 정도로 파워 인플레가 벌어져서 손대지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아니고, 이런 참람된 호칭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대체 이런 호칭들은 언제부터 시작된걸까요. 손가락이 아홉개라고 구지개九指丐, 어떤 대결에서 검이 달을 가르는 환상을 보여줬다고하여 단월검斷月劍, 서시처럼 아름다워서 독서시毒西施 뭐 이런거 많잖아요? 좀 별호라는게 그 사람의 특징을 담을 수는 없는겁니까? 뭐만 하면 검왕이고 뭐만하면 신창입니까? 젊으면 용이고 여자면 봉이에요. 봉황할때 봉은 수컷이고 황이 암컷인데ㅡㅡ
신경 쓰면 지는거다, 따져서 뭐하냐, 좋은게 좋은거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듯... 제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이 글 보는 사람만 보는 거고 안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텐데. 이런 적당주의로 지내왔습니다. 오늘 문피아 골든베스트 작품들 쭉 보다가 울컥해서 화는 풀어야겠는데 그것들 일일히 비평할 시간도 없고 할 생각도 없어서 내친 김에 적었습니다. 자신의 새끼 같은 글이라면, 자신의 아끼는 글이라면 그만큼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명품은 작은 차이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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