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연재란의 공작의 구애입니다.
오늘 다룰 작품은 제네럴킴 님의 [윌트 : 어느 마법사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톰과제리를 읽은 이후로 저는 젤리 몸속에 기생하는 톰처럼 제네럴킴님의 서재에서 서식하고 있었습니다만, 현재 윌트와 톰과 젤리는 선호작 갯수가 5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윌트가 본편이고 톰과 젤리가 외전격인데도 말이죠.
윌트가 톰젤에 비해서 못 쓴 소설이냐 한다면 또 그건 아닙니다. 아니면 톰젤의 소재가 훨씬 눈에 띄고 자극적이기 때문인가? 물론 그 탓도 있습니다만 저는 윌트가 톰젤에게 질 수 밖에 없는 필패적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톰젤이 슬라임에 융합된 두 남자의 만담이라는 코믹물이라면 윌트는 마쵸이즘의 종족인 빌록들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마법이 발달한 인간들과 지내는 성장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톰젤은 중심인물들에게 강한 포커스가 맞춰져 그들의 이야기에 충실한 반면에 윌트는 보조인물들에게까지 포커스가 너무 고르게 돌아갑니다.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전개가 루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네럴킴님은 과거 이야길 자꾸 언급하는 이유는 반전과 복선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작가가 반전과 복선을 일일해 설명하고, 부연 설명에 치중하다보면 중심라인에서 포커스가 벗어나니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전개가 루즈해 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톨킨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호빗에서 스마우그 원정대는 총 11명이지만 소린과 빌보, 간달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포커스가 맞춰져있지 않습니다. 개연성을 중시하는 톨킨이 긴 원정을 가는데 필요한 현실적인 인원을 맞춘 것이지 나머지 8인은 중히 다루고 있진 않습니다. 안그래도 초반부부터 11명이 파티를 이루는데 만약 11명을 전부 조명해버리면 이야기 자체가 진행이 되지 않을테니 말이죠.
또한 작품에는 간달프가 스마우그를 처치하려는 소린을 돕는 이유라던지 아르켄스톤이 무엇인지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간달프가 소린을 돕는 이유는 중간에 등장하는 라다가스트와 리븐델에서 사루만과 대화를 할 때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고, 아르켄스톤의 경우도 요정들이 경의를 표함으로써 단순히 희귀한 보석이기만 한 것은 아닐거라는 상상력을 보태는 것이죠.
만약 호빗에서 간달프가 왜 소린과 난쟁이들을 도우려 했는지, 아르켄스톤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왜 난쟁이들이 에레보르에서 살고 있었는지까지 자세히 파고들며 포커스를 조명했더라면 호빗은 지금과 같은 전개를 지닌 작품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라르손의 이야기는 둘째 치고 아버지의 이야기가 너무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아내와의 젊었을 적 연애담이 오글거릴 필요가 있었을 지 싶네요.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면,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면 항상 아내의 사진을 보고 씁슬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매일 드리는 기도처럼 한번도 빼먹지 않고 같은 문장을 넣어 묘사하거나 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 봅니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암시도 과거편을 만드는 것보단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복선을 까는게 나앗을 것이라 생각하고요(사실 라르손과 울리우스의 관계도 굳이 이야기를 푸는 것이 아닌 암시로 표현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암시를 이야기를 해서 밖에 풀 수가 없다면 그 아버지의 과거 연애담을 긴 에피소드로 만드는 것 보다 소린이 참나무방패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의 이야기같은 비중으로 줄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목부터 윌트입니다. 윌트의 이야기이지 윌트의 주변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포커스가 가급적이면 윌트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보고, 벗어난다고 쳐도 현재의 진행들은 너무 크게 자주 벗어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약하자면
톰과 젤리는 중심스토리에 포커스가 맞춰져 그 이야기에만 충실한 반면
윌트는 포커스가 자주 옮겨져 산만하고 루즈하기 때문입니다.
윌트가 본편이라 더 신경을 쓰고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욕심이 지나치면 아니한 것만 못한 것입니다. 본편일 수록 자를 수 있는 것은 자르고 훌훌 털어내며 써야 하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이상 공작의 구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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