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선은 무협계에 보기드문 걸작입니다. 여러 각도로 감상 포인트를 잡을 수 있겠지만, 결말과 마무리를 주제로 잡는다면, 저는 괴선이 여러 군데의 결말들로 이어진, 결말 없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주인공 이야기는 2권에서 시작해서 6권에서 결말납니다. 그러나 주요 등장인물들의 결말부분은 제 각기 때와 장소가 다릅니다. 한 군단의 인물들이 얽혀 만들어간 이야기에서 각자의 시작과 결말이 다르며 이들의 이야기는 역사 안에서, 역사 밖에서 계속 됩니다.
가장 인상깊은 이청수 사화는 그녀가 꿈에서 깨어 하늘거리며 강가로 나간 때부터 청산을 낳고 죽을 때까지의 완벽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도 아주 훌륭한 걸작 단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괴선 전체에서 가장 훌륭한 텍스트이며 전체 이야기에 영감을 주는 심령적 에너지가 깃든 핵심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영성을 형상화해낸 명작으로 평가합니다.
곤륜산의 수학부분은 무협의 수련과 열선전의 수도라는 동양소설의 이중적 전통이 훌륭하게 결합한 참신한 시도로 봅니다. 이것도 따로 단편으로 떼어내도 헷세의 한콕이나 마법사의 제자처럼 고요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 됩니다.
한편 무협에 전형적인 여주인공은 나라연이지만, 괴선의 여주인공은 우리의 당우리입니다. 당우리는 그냥 청산이라는 짚신의 짝이며 그녀의 이야기는 5권에서 끝납니다. 아마도 괴선의 역사적인 부분에서 결말은 5권으로 끝난 것일 겁니다. 6권은 초역사적인 결말, 즉 결말이 없는 심령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계속된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서 청산이 하늘과 땅을 자기 것으로 하고 모든 분쟁을 종식시킨 것은 아직도 역사적인 이야기에 미련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보여주는 서비스일 수도 있습니다. 청산의 가족들은 끝없는 이야기 안에서 화해하고 재회합니다. '사랑의 찬가'에서 '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재회시킨다'는 인간의 한, 초월적 갈망이 형상화된 이야기로 읽힙니다.
괴선은 무협이라는 형식에 담긴 영적인 애정사화로 읽힙니다. 무협적 마무리에 관해서는 분통을 터뜨릴 수도 있고, 찬탄을 자아낼 수도 있고, 어떤 쪽이든 기억에 남아 독자의 간접체험에 깊은 각인을 남기는 작품을 '성공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괴선에서 얻은 영감은 영성적인 부분입니다. 선도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에 고유한 무속적 영성으로 해석됩니다. 저는 괴선에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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