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욱의 <괴선>-성장, 그리고 자유와 평화
1. 들어 가면서
임준욱의 <괴선>이 끝났다. <진가소전>부터 <괴선>까지 빼어난 작품을 선보이면서 한국 무협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아마도 <괴선>은 스케일이나 사건의 종결 방식에서 볼 때 작가의 이력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촌검무인>에서 새로운 무협 세계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기풍의 신인인 한상운과 극한적 대비점에 서 있는 임준욱의 문학적 특징을 <괴선>을 중심으로 몇 가지 주절거리고자 한다.
2. 문학적 특징
1) 주류 세력의 이야기
임준욱이 펼치는 세계는 주류세력의 공간이다. <괴선>의 주인공도 아버지는 사천의 명문 세가이면서 어머니는 <신탁>의 여인이다. 즉, 부모가 다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는 주류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주인공도 몰락은 했지만 여전히 하나의 문파로 인정받는 <곤륜>의 제자다. <촌검무인>에서는 화산파의 제자, <농풍답정록>에서는 무당의 제자, 이들도 다 무협 세계의 주류에 속해 있다.
그래서 임준욱의 문학에서는 피를 말리는 처절함이나 세상에 대한 분노가 모자란다. 영웅소설의 원형대로 고난의 성장 과정을 격기는 하지만 신분상 주류 계열에 속하기 때문에 신분 상승의 인간적 고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촌검무인>에서조차 어떤 위기가 와도 주인공의 안위는 변하지 않을거라는 안도감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주류 세계의 특징인 포용력과 원만함 그리고 우아함이 비장미와 숭고미 속에 녹아 있다.
대부분의 무협 문학이 그렇듯이 임준욱의 작품이 행복한 결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류 세계의 문학에도 선악(善惡)의 구분은 있다. 임준욱의 주인공들은 늘 선(善)에서 자라고 선을 위해 활동한다. 그리고 그 선은 주류세계의 법칙인 권선징악(勸善懲惡)에 따라 늘 승리한다.
이것은 아마도 임준욱의 인생관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2) 성장문학 - 모성(母性) 문학
임준욱 문학적 특징은 한 마디로 <인간의 성장>에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부성 부재(不在)다. 즉, 부성 부재(不在)의 성격 형성-모성적 세계 속의 인물이 가지는 전형적 특징을 성장하는 주인공을 통하여 과정별로 잘게 쪼개 보여준다. 이런 특징도 역시 영웅 소설의 원형을 잘 따르고 있다.
<괴선>에서 이청산의 행동 배경에는 아버지의 부재를 회복하려는 <소외된 혹은 버려진 아들>의 욕망이 갈려 있다. 이런 욕망은 자신을 주체적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미완성의 인격체 혹은 의지형의 인격체로 자신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청산의 마지막 깨달음도 아버지의 실체를 보고 이와 화해하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모질지 못하면서 세상을 단숨에 포용하려는 태도나 적에게도 자비와 관용과 포용을 베푸는 태도에서 흔히 말하는 모성적 특징이 나타난다.
이런 태도는 아마도 작가의 주제 의식에 나오는 것 같다. 즉, 작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나 세계가 바로 <괴선>에서 바라는 세계가 아닌가 싶다. 갈등이나 대립이 무화(無化)된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인공의 세계와 작가의 문체가 일치하는 듯싶다.
3) 추구하는 세계 - 자유와 평화
작가는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주제일 수도 있고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다. <괴선>에서는 작가는 위에서 언급한 모성적 세계관에 서 있다. 무화의 세계는 곧 자유와 평화를 의미한다. 이청산의 마지막 외침 속에 들어 있는 핵심이 바로 자유와 평화다.
이청산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절대 힘을 가진다. 그것으로 인간 세계뿐만 아니라 신선의 세계까지 선악을 좌지우지한다. 그게 바로 자유다. 절대 힘을 바탕으로 선악 구분을 하고 선을 행하겠다는 자유의지를 <괴선>에서 드러내고 있다.
임준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갈등은 아무리 심각해도 늘 여유가 있다. 그 갈등이 최고조에 도달할수록 여유와 비장미가 넘친다. 적(敵)도 적처럼 느껴지지 않고 <사연이 많은> 인간처럼 느껴진다. 적이 적이 아닌 것이다. 적이 없는 세계-그게 바로 갈등과 대립이 없는 세계고 바로 <태평성대-평화>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농풍답정록>부터 <괴선>까지 등장하는 반동(反動)인물들은 순서대로 세워보면 악인의 전형성이 점차 탈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3. 마치면서
이런 의미에서 임준욱의 작품은 자칫 지겨워질 수 있다. 원래 대립과 갈등이 없는 서사(敍事)는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단점을 극복하는 힘이 이 작가에게는 있다. 바로 입담과 휴머니즘이다.
임준욱에게는 입담이 있다.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등장하고 비슷한 사건이 터지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특유의 힘이 있다. 표현이 아기자기한 것도 아니고,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적재적소에 딱 맞는 표현이 나타나 사람을 끌어당긴다.
또 하나는 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원형적인 성격 - 인본주의적 혹은 휴머니스트 -이 원인일 것이다. 독자들에게 순간 순간 감동을 준다. <농풍답정록>에서는 부자간의 끈끈함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인간애(人間愛), <촌검무인>에서는 한없이 어진 시골 중년인의 모습이, <괴선>에서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대자대비, 혹은 무위자연의 인간을 보여준다.
아마도 임준욱은 도교의 무위자연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리라. 그리고 그 꿈이 어디까지 갈 지 정말 궁금하다. 그 꿈을 따라 가면서 한국 무협 문학은 풍성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읽는 나도 행복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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