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쥬논
작품명 : 앙신의 강림, 천마선, 규토 대제, 흡혈왕 바하문트, 샤피로
[ 미리니름 없을 겁니다 ]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글이였지만, 최근 신작 '샤피로'가 등장했으니 한 번 올려보겠습니다. 감상이라기보다는 제 생각이라고 해도 좋지만... 넓게는 감상에 포함된다고 할 수도 있으니 몇 줄 끄적여보죠.
쥬논님의 글을 읽으신 문피아의 많은 분들이─전부는 아닙니다, 취향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앙신의 강림에서 흡혈왕 바하문트에까지 이어지는 쥬논님의 작품을 보며 쥬논님의 글 솜씨가 점점 퇴보한다, 점점 재미 없어진다, 진부해진다 등등.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뭐, 솔직히 말해서 저도 100%는 아니더라도 50%정도는 공감합니다. 앙신의 강림과 천마선을 거의 비등하게 재밌게 읽었고, 규토는 조금, 바하문트는 거기서 조금 더 재미가 떨어졌다, 라는 생각을 저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엄연히 말해서 쥬논님의 글 솜씨가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늘었다고 할 수 있죠.
쓸데 없이 장황한 수사법을 줄이고 최대한 간결하고, 정보 전달력이 높은 문체.
앙강보다는 천마선이, 천마선보다는 규토가, 규토보다는 바하문트에서 그런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진보이며 발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하문트의 평가는 앙강에 비해 상당히 낮습니다.
쥬논님의 작품은 피가 튀깁니다. 뇌수가 철철 넘치고, 심장을 씹어 먹고, 전신이 독으로 녹아내리고, 마물과 괴수, 흑마법과 주술이 판을 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것은 극히 '매니악한' 내용입니다. 20대 이상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현 장르 문학의 주 독자층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 중후반 학생들에게는 결코 쉽게 먹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앙강은 그 '매니가한' 내용이 특히 강한데, 이야기의 시작이 중세 유럽이 아닌 중동 분위기를 갖고 있는 노아부 제국이라는 점이라던가, 처음부터 티아와의 정사가 일어난다던가, 초반에 주인공의 머리가 대머리가 된다던가, 하는 것들은 모두 일반적인 장르 소설과는 궤를 달리하는, 왕도를 벗어난 사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쿠만'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죠. 독창적인─표현을 빌리자면 점프답지 않은─ 작품은 만화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만, 반면 편집부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는다.
이와 같습니다. 앙신의 강림은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터부시되는 소재─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장르 문학을 어느 정도 접하고, 단순히 이고깽, 양판소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심미안을 갖게 되어 문피아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장르 문학을 많이 접했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평가인 것입니다.
샤피로를 제외한 가장 최근작인 바하문트와 비교해볼까요?
바하문트는 양판소 주인공들이 가장 선호하는 머리색 중 하나(웃음)인 은발의 소유자입니다─다른 하나는 흑발─. 흉왕의 권능을 사용하지만 베이스는 역시 기사이며, 남부우림을 제외하면 주 활동 배경도 유럽풍의 도시입니다. 문체는 간결해졌고, 쥬논님은 특유의 독기를 빼고 최대한 잔인한 장면을 줄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은 발전일까요, 퇴보일까요?
저야 출판 쪽과 관계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아마 판매량은 앙강보다 바하문트쪽이 더 높으리라 생각합니다. 바하문트는 보다 대중적입니다. 이것은 발전이니 퇴보니 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향의 문제일 뿐입니다. 한식이 좋냐, 양식이 좋냐에 호불호를 따질 수는 있지만 우열은 가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솔직히, 앙강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씁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금강님이 말씀하셨듯, 쥬논님은 독특한 색상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너무 튀는 색상이기에, 오히려 섞여 들어가기 어려운, 그러한 색깔. 작품이 거듭될수록 그 색상은 점점 흐려지고, 다른 것들과 같아지고 있습니다. 퇴보가 아니라, 타협입니다.
샤피로를 먼저 채간 분이 계셔서 아직 못읽었습니다. 읽게 되면 감상문을 하나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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