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하지은
작품명 : 얼음나무 숲
출판사 : 로크미디어 ─ 노블레스 클럽
드디어 완결! 이 책을 사려고 사흘 동안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들락날락했던 나는 어제 이 책을 손에 넣었을 때 그 자리에서 뛸 듯한 기분을 억누르느라 꽤 고생했었다. 이제나저제나 책이 들어오지 않을까 서점 안에서 무작정 죽치던 시간이 그 순간 전혀 아깝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얼음나무 숲은 이미 문피아에서도 추천에 많이 오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제재는 음악. 실제로 작가는 연재 당시 글과 함께 음악을 첨부해서 글의 몰입을 더욱 쉽고, 깊게 만들었다. 그 매력적인 몰입도에 푹 빠진 독자들이 "이번 책의 부록으로 CD는 없나요?"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책은 음악에 푹 절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사서 표지를 넘기고 인쇄된 활자를 읽는 순간, 나는 부록에 없는 '음악'이 책 속에 그대로 스며들어 고개를 불쑥 내미는 듯한 착각을 느낄 수 있었다.
활자 자체가 내 마음속으로 불어넣는 속삭임을 책이 '묘사하는 음악'으로 제 멋대로 창작해버리는 나 자신을 느껴버린 것이다.
책에 몰입하게하는 또 하나는 '에단'이라는 공간적 요소이다. 에단은 말 그대로의 성역.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자치도시이다. 도시라는 그 미묘한 폐쇄성. 그것은 바옐이 다른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면 이리저리 권력자들의 손에 휘둘려서 궁중 음악사나 그런 복잡한 직위로 가지 못하도록, 그냥 이 도시 하나에 갇혀 있도록 만드는 그런 상황을 만든다. 말하자면 독자에게 숨이 탁 막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고요가 한 번도 에단 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것처럼 소설 속의 우리의 시야는 에단에 갇혀 버린다. 오스트리아의 빈과 같은 낭만적인 음악의 도시에서 바옐의 음악에 광기 어린 함성을 보내는 미치광이들의 도시까지 에단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나도 같은 호흡을 하고 같은 마음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숨을 탁 막히게하여 놓고서는 그대로 결말까지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작가는 어찌 보면 굉장히 잔인한 이야기꾼이 아닐 수 없다. '이래도 안 좇아 올 거야?' 라고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나는 고요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내렸다.
눈물을 흘린 장면은 어째선지 클라이맥스의 그 부분인 아닌 이것! "단 하나뿐인 청중이 되고 싶었어." , "진심으로 되고 싶었어."라고 바옐에게 말하면서 고요는 이 말이 뜻하는 의미보다 더, 자신의 소망을 한순간도 내팽개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의미 없이 눈물 주르륵. 최악의 순간에 소망을 이뤄버리는 바옐에게도 동정이 가지만 그 소망조차 이루지 못한 채, 마음속에 버리지도 못한 채 남아버린 고요는 진짜..!! 고요가 키세의 죽음에서 달아남으로써 스스로 순수를 잃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고요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느껴버렸다. 그러니까, 어째선지 나는 고요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에 바이올린 선생이 되어버리는 바옐에게 '고요 속 썩이지 말고 냉큼 에단으로 돌아오란 말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외칠 정도로.
트리스탄에 대해서는 안타까움 뿐이다. 키세를 사랑한 그의 이야기도 정말 흥미진진하고 애잔할텐데, 그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밖에 없어서 슬플 따름이다.
또 하나 내 뒤통수를 친 인물은 키욜 백작. 순수를 갈망하며 끝내 그의 운명의 약혼녀를 제물로 바친 그의 기괴한 마음은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다. 그가 트리스탄과 사랑에 빠진 키세를 보며 어떤 마음을 느꼈을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그리고 그녀를 나무에 매달면서 순수를 갈망하는 밧줄을 움켜쥐었을 그의 표정을 나름대로 상상하며 또 상상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느껴버린다.
바옐에 대해서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느낀 건데 이 자는 정말 괴팍하기 이를데가 없다! 고요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정말 밉살스럽다. 내가 고요 입장이라면 당장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그 만의 고뇌에 대해서는 동정할 수밖에 없지만 정말 어린아이 같은 그 치기란. 끝내 고요의 저 앞을 달려나가 버렸으면서 욕심이 많달까. 그는 어쩌면 음악가로서 그 곁에 서려는 고요가 낯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 하여튼 정말 어린아이! 라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게다가 그가 토해내는 격정적인, 필사적인, 정말 무저갱의 끝의 끝까지 떨어져서 끝없는 어둠을 긁어모으는 듯한 그 영혼을 뒤흔드는 진혼곡은 내 귀에 들릴 리가 없는데 어째선지 내 가슴을 괴롭게 짓 뜯는 것이다. 뭐야 너!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활자 속의 인물이 감히! 이런 기분이 들게끔하는 인물이다.
뭐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작가의 필력이 가져오는 환상 때문이라서 오히려 날 즐겁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마지막의 결말은 오히려 '바옐답다.'라기 보다 '고요답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바옐은 어렸을 때부터 달려온 '천재가 되겠다.'는 목표의 끝을 본 후 허탈감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목가적인 마을 생활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여튼 내내 천재의 면모를 보여온 바옐로써는 좀 의외의 결말이었다. 그에 비해 아나토제 바옐의 친우로서 매사 겸손한 모습을 보였던 고요는 끝내.. 그 어울리지 않는 필사가의 길을 걷긴 했지만,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바옐에 대한 원망이 불끈불끈 생기지만─ 여튼 그것이 꽤 고요다운 결말이었다.
끝까지 그들을 괴롭힌 작가가 툭 하고 던져놓은 미래의 새싹과도 같은 엘리제라는 소녀가 없었다면 정말 작가를 원망했을 것이다. 이대로 끝내버린 것에 대해서 말이다. 고요는 회상하듯 '이 후 얼음나무 숲이 연주될 기회는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뭐 그건 회상하는 그 당시의 일로 여겨두고, 꼭 그 환상곡이 연주될 것이라고. 그때의 환상곡에는 분명히 모든 것을 시원스레 털어버리지만 어둠에 묻어버리지는 않는 그들의 강함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 물론.. 직접 내 귀로 듣는다면 ─ 이런 소망이 있지만 역시 그건 불가능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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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결론은, 작가님 고마워요~♡X100 플러스 작가님 덕분에 저 집 청소도 안 하고 이거 쓰고 있어요.. (아.. 혼났다 ;ㅁ;) 정도다. 으아 ㅠㅠ 읽고 또 읽고 또 읽겠어! 그나저나 책에서 인쇄가 흐릿한 부분이랑 또 한 페이지 찢어진 부분이 있어서 (책 읽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ㅠㅠ) 너무 슬펐다. 엉엉 ㅠㅠ 이거 교환은 안되나요.. 근데 교환하러 가기 귀찮네 ㅠㅠㅠㅠ 여튼 이것 덕분에 저 수능 전날도 밤새웠어요~ 근데 이것 덕분에 수능 언어영역 잘 본 거 같아요?! 영삼이도 기대할게요. 화이팅!
마지막으로.. 진짜 끗발 날리는 화려한 글솜씨로 감상을 쓴 나에게 건배! (반어법인거 다들 아시리라 믿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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