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마다 잠시 짬을 내어 고무림을 들리는 나에게, 무정십삼월이라는 '흥미있는' 글을 발견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무슨 특별한 추천글이라던가 감상글을 본 것이 아니었고. 처음, 순간의 호기심으로 들어가 보게 된 글이었지만, 글을 읽을 때 다른 글과는 달리 나를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무정십삼월의 작가분이 예전에 글을 쓰셨던 '경력'이 있는 작가라고 알았고, 역시 그 경력이 있음에 걸맞게 글 실력도 갖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나온 무정십삼월을 모두 읽어본 결과 내린 결론은 '필력은 있으나, 생각이 없고' '소설답게 보이려 하나, 소설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첫번째 단점으로는, 무정십삼월의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적으로 '현실적'이지 못하다. 비단 장화월이나 다른 메인의 캐릭터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이해의 한계'를 벗어나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장화월의 캐릭터는 -글 내의 설정으로는- 적들에게는 무례하고, 잔혹하나 같은 편에게는 무정한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다정다감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의 내용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이 '장화월'이라는 캐릭터가 이런 특색을 굳이 가질 필요가 있나?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작가에게 묻고 싶다. 이 장화월은 도대체 뭐하는 놈인가? 홍가문의 입장이 아닌, 다른 쪽의 입장으로 보면, 이 장화월이란 놈은 갑자기 남의 집에 쳐들어가 으름장을 놓고, 괜히 기분에 거슬리면 사람 목이나 쳐버리는 '어이없기' 그지 없는 놈이다. 글이 주로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기에 보는 사람들은 장화월이 제남운가를 몽땅 박살내고, 사람 목을 베며, 괜히 무게잡으며 -예를 들어 화형권의 대장을 만났을 때 처럼- '죽여버린다.' 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 장화월이라는 캐릭터가 이 '지랄'을 떠는 것에 대해선 글에서는 답은 커녕 암시도 주지 못하고 있다. 무정십삼월의 주인공 '장화월'을 보는 것은 나에게 마치 '신무'라는 옛 소설의 '카인'이라는 비정무정의 '어이없는' 주인공을 보는 것 같다. 도대체 장화월의 행동의 이유는 어디 있단 말인가? 작가는 주인공이 '북명대'에서 보낸 세월을 회상시킴으로서 '무정강호'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과 이 장화월이라는 인물이 일치함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장화월이라는 인물이 이해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겠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점으로는 이 장화월의 난동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까지 그의 '비논리성' 과 '비현실성'에 휘말려 버린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가가 그리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장화월이 제남운가나 다른 무도관 -이름이 기억 안 남-에 들어가 사람의 입을 박살내고, 몇몇을 죽이는 것은 글에서 비치는 바로 '정의'다. 그럼, 괜히 집에 무단침입하여 사람들 몇 죽이고 병신 만드는 것은 정의고, 제남운가에서 잠시의 틈을 타 몽고와 결탁하여 홍가문을 망하게 한 것은 '악'이란 말인가? 글 내에서는 장화월의 행동에 타당한 명분을 주려 노력하고 있고 -예를 들어 홍가문 딸 내미를 경무관 제자가 모욕한 것에 대해서라든지- 또한 독자들은 이곳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이것이 납득이 될만한가? 에 대해서는 본인은 큰 의문을 품는다. 작가는 글 속에서 메인 캐릭터인 '장화월'에게 너무나 큰 면죄부를 베풀고 있다. 그것은 글 속의 세계의 형평성 -현실성과 연결되는- 에 해를 끼치고 그것은 결국 글의 비논리. 비현실성으로 나타난다. 글 속의 세계가 글 속의 인물들에게 논리적 형평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옛날 교훈적인 몇몇 동화들이 가지는 세계관과 다를 바가 뭐 있는가?
글의 이해가 힘든 이유는 또 여럿이 있다. 그것 중 하나는 장화월이 분명한 글 속의 '선' 으로 대표되는 자면서도 -착할 '선' 악할 '악'의 의미가 아니다. 글을 양분하는 의미로의 선과 악이다.- 그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글속에서 제남운가와 경무관 -경무관은 아직까지 글의 전개상으로 봤을 때 어느 쪽인지 나누기 애매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쉐익스피어가 고안한 문학적 장치의 하나로 Foil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글의 선. 악을 대표하는 두 캐릭터에게 공통점을 줌으로서, 다른 점을 부각시키는 장치이다. 이것은 현대문학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이것은 그 드라마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헌데, 이 글에서는 이 '널리 통용되는' 문학적 장치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물론 나는 나의 비평에서 무정십삼월이 장화월이라는 캐릭터와 제남운가가 반드시 선과 악으로 대변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과 악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되요?'라고, 맞는 말이다. 글속에 반드시 선한 쪽과 악한 쪽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작가가 글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혹은 세계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없애려 했다면, 그 증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이 글속에서 찾은 것은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무정강호'가 아니라. 선과 악의 경계가 범벅되어 버려 더 이상 선과 악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혼돈강호' 일 뿐이었다. 무정십삼월의 작가에게 감히 묻고 싶다. 만약 글 속의 선과 악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왜 '장화월'에게만 편애를 하는지를 말이다.
두번째 단점으로는, 이 무정십삼월이라는 글이 과연 '소설'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는지 의심하게 할 만큼 '소설'답지 않다는 점이다. 소설은 작가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드래곤 라자의 저자인 누구누구씨가 말한 '글은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그리는 도구'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은 타당성이 있다. 일단 '소설'인 이상. 글에 작가의 일부분이 담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바로는 이 글은 소설이 아니라 단지 '작가가 장화월의 삶을 자신의 입맛에 맞춰'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가 장화월을 저 대단한 제남운가를 부수고 들어가게 만듦으로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인가? 장화월은 짱 쎄다? 무정십삼월은 도대체 뭐 하러 나왔나? 폼 내러? 고력이라는 시시껍절한 놈은 갑자기 왜 스토리에 등장했나? 세외에서 풀 뜯어 먹기 귀찮아서?
내가 위에 나열한 이 모든 것들이 글을 이루는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글이 최소한 '소설'이라면 글의 완성에 '이바지'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여기서 작가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이 쓴 이 모든 것들은 도대체 글의 무엇에 이바지 하기 위한 것인가? '그저 글을 이끌어가려고'라는 대답이라면, 그것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 Storytelling에 지나지 않는다.
이 비평을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무정십삼월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황염이라는 불쌍한 여인을 기억하실 것이다. 이 여인은 불쌍하고, 그 불쌍함 만큼이나 작가가 그녀의 삶을 표현하는 데 투자한 시간도 많다. 그런데 결국은 떡하니 죽어버린다. 그리고 장화월은 엄청나게 분노하며 제남운가를 박살내기 위해 출발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게 글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냔 말이다. 논리적, 비논리적으로 스토리가 성립하든 어쨋든간은 중요하지 않다. 도대체 장화월이 자신의 목 뒷 살을 뜯어가며 분노하게 만들며 제남운가를 박살내려는 작가의 '의도'는 도대체 무언가? 이 참에 제남운가를 악의 소굴로 만들어 정벌하려는 셈인가? 그렇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망가져 버릴 대로 망가져 버린 비현실성과 비논리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제남운가는 악, 장화월은 짱'이라는 간단한 공식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고 쳐도 문제는 또 있다. 이제 제남운가는 나쁜 놈, 장화월은 우리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그 전에 묘사했던 장화월의 난장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이건 그야말로 '혼돈강호 그 자체다.
세번째로는, 글 자체가 가지는 'No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정십삼월의 전개는 빠르지 않다. 50편 이상까지 제법 근 길이 나왔으면서도 그 진도는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그만큼 작가가 묘사에 들이는 공이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본인이 이 글을 비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글 실력에서 '경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이곳에서 얘기하는 바는 작가의 글 쓰는 실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이끌어가는 실력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 무정십삼월이라는 소설의 시작은 '장화월'이라는 주인공의 등장과 함께 한다. 이 장화월이라는 사내가 갑자기 저잣거리에 떡!하고 등장함으로서 글은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시작부분이니까. 하지만 뒤로 가면 갈 수록 글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황염의 갑작스러운 등장, 고력의 갑작스러운 등장, 제남운가 외아들 내미의 갑작스러운 뱀사나이로의 변신. 자! 이것들에서 느껴지는 바가 있으신가? 그렇다. 이것들은 모두 너무 '갑작스럽다' 사람들이 구무협에서 싫증을 느끼는 것은 글의 비논리성, 비현실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또한, 그 글들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전개가 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졌는데 기연이 나타났다. 구무협에서는 이 기연이 일어나려는 어떠한 암시나 조짐도 주지 않는다. 뚝 떨어졌는데 나타나서 먹었다. 이게 전부다.
글에서 Foreshadowing 혹은 암시, 전조라는 것은 단지 글의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글의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황염의 등장을 살펴보자. 그녀가 등장하기 전에, 작가가 그 어떠한 힌트라도 주었던가? 아니다. 고력의 등장은 어떠한가? 이것도 마찬가지다. 가장 황당한 것은 세번째, 제남운가 외아들내미의 뱀사나이 변신인데. 이것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황염의 회상에서 그의 존재가 나온 적은 있지만 그 뱀사나이가 제남운가 맞아들이라는 힌트는 언급된 바 없다. 게다가 제남운가 외아들내미가 뱀사나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그의 모습에서 뱀사나이가 연상이 되는가? 스토리 상으로의 유추는 가능하지만, 글에서 나타나는 바로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뱀사나이의 등장이란건 갑작스러운 반전도 뭣도 아니고 깜짝 나타나서 '내가 뱀사나이다!' 하는 생일파티 축하용 깜짝쇼에나 어울릴 법한 등장이었다.
이처럼 글은 독자들에게 '저 놈이 뭐지?' '저 놈은 뭐하는 거야?' '저 놈이 왜 나타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냥 마구잡이로 글을 이끌어 나갈 뿐이다. 마치 RPG 게임에서 적들을 만나 쓰러뜨리는 것 마냥 말이다. 이 긴 비평을 다 읽은 '무정십삼월'의 독자 중 몇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제남운가 외아들이 뱀사나인걸 알았는데?' 혹은 '고력이 등장할 것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라고.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스토리를 읽고 '눈치'로 유추하는 것과 글에서 '읽히는' 것은 아주 다르다고 말이다.
본인이 읽어본 바로 무정십삼월이라는 글은 분명 읽어볼 만한 글이다. 전에도 말했다 시피 이 글은 잘 쓰여진 '이야기' 이고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몰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실력이 뛰어나다는 말도 될겄이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며 아쉬운 것은 이 글이 너무 '이야기'에 메달리다 보니 '소설' 본연의 가치를 무시하고, 마치 폭주기관차마냥 달려나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부디 작가분께서 이 비평으로 인해 자신의 글에 더욱 깊은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로 인해 더욱 높은 퀄리티의 무협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서 나의 비평의 가치는 다 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크로 배상-
*보충설명*
1. 본인이 처음에 설명한 선과 악의 의미는 '주인공 편' '상대편'을 나누는 것으로서 착한 편 나쁜 편의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일반연재의 '건곤무정'에서, 글에서 나타나기로는 선한 편과 악한 편이 나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주인공 철무정을 위시한 그의 동료는 글 속에서 '선'이며 그의 반대편은 그들을 적대하는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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