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공동구매로 산 빙하탄을 읽었습니다.
사실 두 번째 보는 겁니다. 저는 아무리 좋은 작품도 한 번 읽으면 잘 안 읽죠.
그렇지 않았던 건 김용의 작품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빙하탄을 읽으면서
새로운 감동과 함께 과연 장경님이라는 감탄을 다시금 내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간의 속사정을 안 채로 다시 읽으니 무심코 넘겼던 한 마디 한 마디들이 가슴에
절실히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장경님의 작품들의 장점 중 제가 최고로 치는 것들 중 하나가 감정의 과잉이
없다는 것입니다. 격렬한 감정도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닌 등장인물이 토해내는
한마디나 행동으로 보여주기때문에 캐릭터들에게 느끼는 독자의 감응은 전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최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상상력의 자극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툭툭 내뱉는 심연호의 한 마디에 또는 그가 쓸쓸히 부르는 시를 보고 가슴이
찡해오는 건 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순간 순간의 모습들에서 쏟아져 나올듯이 좌충우돌하나 결국은 폭발하지
못하는 감정의 편린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다른 하나는 살아있는 캐릭터입니다.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어 세상을 원망하나 또 오로지 원망할 수만은 없기에
괴로워하는 심연호는 물론이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무의 길에 들어섰으나 유여원의
아름다움을 질시하기도 하는 교검, 충성심에 매몰되어 버린 심제충, 사도상,
아버지의 그늘에게 벗어나고자 하나 쉽지 않은 조수인 등 다양한 인물군상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3권의 책으로 충분히 보여줍니다.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캐나가며 느끼는, 긴장감을 점점 고조시켜가는 플롯을
얘기한다는 건 또 하나의 사족이겠죠.
그러나, 여기다 꼭 하나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문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장경님 작품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 로 끝나는 등장인물의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말들을 좋아합니다.
눈물을 울컥 쏟을뻔 했던 심연호의 말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제 나는 깊은 잠에 빠지려 한다. 어쩌면 깨어나지 못할 잠이 될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교검, 도영, 고맙다. 나를 위해 울어주어. 나는 그것으로 내 쉴 자리를
얻은게야. 만족한다. 때문에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베풀 것이다. 몽마가 되어서라도 너희들을 지킬 것이다."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한 사람을 원했던 심연호, 교검과 도영이 그의 곁에 있으니 그는 외롭지 않겠죠?
즐거운 주말 오후를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 빙하탄은 최고라 쳐왔던 암왕에
버금가는 작품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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