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싸리 한수오님의 초기작 "월하강호"를 구해 읽고 있습니다.
1997년 10월 도서출판 뫼에서 나왔네요. 당시 가격이 4,500원입니다.
이책 추천서문 제목이 " 우리가 무협을 쓰는 것은......" 이더군요.
글을 읽다보니 어딘지 좌백님의 냄새가 나더라구요....
내용이 2페이지가 넘어가기에 힐끗 한장을 넘기니 역시나
글 끝에 "좌백 올림." 이라고 써있네요. 이정도면 저도 어느정도
무협매니아에 속하지 않을지...
첫 1페이지 정도를 한수오님 이야기가 아닌 무협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할애하셨더군요. '우리'라고 표현하지만 좌백님의 자전적 이야기인듯 합니다...
잠시 옮겨 씁니다. 혹시, 옮겨쓰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면(출판법 혹은 저자 허락 등...) 관리자님이 삭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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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백지를 앞에 놓고 저녁을 맞아서 다시 아침이 되기까지 백지
가 그저 백지로 남도록 바라보고만 있으면서도, 그렇게 며칠을 보내
머리는 취한 듯 몽롱하고 가슴은 구멍난 냄비 바닥처럼 지글지글 끓는
데도 그저 그냥 웃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협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밤새워 깨작거린 글을 아침이 되어 빗자루로 쓸어 담아 미련없이 휴
지통에 처넣어 버리고도 괴로움보다는 즐거움으로 넘겨 버릴 수 있는
것도 우리가 무협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즉,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스스로가 원해서, 어쩔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이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트작을 내겠다는 대단한 욕심도 없고, 문학을 한다는 과분한 착각
도 하지 않고, 더욱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황당한 꿈은
꾸지도 않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한 꼭지 해보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철학은 어려워서 모르고, 진리는 고매해서 감히 쫓아가지 못하고,
이상은 천한 백성에게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넘보지도 못하지만 재
미 하나만을 필생의 가치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폭력성은 때로 용서할 수 있고, 선정성도 간혹 넘어갈 수 있지만 재
미없다는 것만은 결단코 용서 못 할 죄로 생각하며 긴긴 밤을 죄책감
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무협작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선배
작가들이 무협을 썼을 것이고, 동료들이 무협을 쓰고 있으며, 나 또한
그렇게 무협을 써왔다.
이제 한수오가 그 대열에 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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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감상/비평란의 참고카테고리가 맞는 것 같아 논검란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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