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문1부 - 사조영웅전을 보는 순간, 하아, 멋지더군요. 황제들이 잡혀간 정강의 치욕을
이름으로 가진,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난 곽정. 악비라는 '조상
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단천덕과 같은 매국노를 처단해 '안으로 자주 독립의 기세
를 확립하고', 이후 호라즘의 수도가 점령된 이후 그곳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안
위를 버리니 '인류의 공영에 이바지' 하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무를 '배우고 익히'는데다 먼 이국땅에 산다는 자신의 '처지를 약진의 발
판으로 삼아' 더더욱 자신을 수련하니 어찌 안 멋지겠습니까. 더군다나 송을 피탈한 금나
라의 주구들을 때려잡고 커다란 영화가 앞에 있음에도 오직 자신의 민족의 안위만을 걱정
하니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은 모습이었습니다.
투철한 '애국 애족'만이 '삶의 길'임을 보여주는 곽정의 모습. 민족 중흥의 사명을 타고났
음을 달달 외던 저에게 그런 모습은 감동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이후 민족이니 애국이니 하는 개념에 다큐멘터리 '광주는 말한다' 나 소설 '은하영웅전설'
등을 통해 강룡십팔장 앞의 단천덕 머리통마냥 박살난 이후 다시 재구축되는 과정에서, 처
음 사조영웅전을 보며 읽었던 감흥은 저의 고민대상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
에 없더군요. 스스로를 곽정에게 감정이입시키며 금나라를 일본으로 완안렬을 따르는 무인
들을 매국노로 보고 있었으니까요. 양강은 핏줄도 모르는 말 그대로 호로**고.
어느 정도는 앎이 넓어진 이후 다시 사조영웅전을 보니, 다시 읽으면서도 끓어오르더군요.
약속 하나에 모든 걸 건 강남칠괴. 죽음이 코앞에 온 상황에서도 의연한 용사의 위용을 보
이는 철별 - 제베, 진정한 패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철목진 - 테무진, 토산에서 황하 사귀
에 의연히 홀로 맞서는 곽정의 당당함. 영웅 악비의 병서를 지키기 위해 금나라의 주구가
된 무인들과 역경 속에서도 맞서는 모습. 그렇지만 이전과는 다른 감흥도 들었습니다. 과
연 송이라는 나라가 몽고에 비해 곽정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핏줄상의 모국이고 스승
들의 나라이되, 완안렬의 지시가 있었다 하나 살부지수의 나라이기도 한 게 아닌가. 곽정
이 몽고를 떠나려한 부분은 애국 애족의 본보기가 분명하지만, 과연 애국 애족이란 게 뭔
가. 뭐 여러 감흥이 들면서 역시 김용은 중국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군의 아들
이 일본 깡패 때려잡는 데 열광하듯, 송을 장강 이남으로 쫒아낸 금을 곽정이 때려잡는 데
자신이 열광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깨닫고 나니 김용의 한계가 보이
더군요. 그와 함께, 이민족을 때려잡는다는 부분에 너무나 열광한 저 자신의 어린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입장에서 저들이 이민족이라면 저들 입장에서는 내가 이민족입니다.
저들의 팽창이 나에게의 침략이라면 나의 팽창 역시 저들에게는 침략입니다. 이런 당연한
걸 모르고 살았더군요 저는.
지금도 사조영웅전을 좋아합니다. 언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않는 부분이 있
습니다. 작자는 중국인이고 중국인의 기준으로 이 소설을 썼다는 거. 그러면서도 무인들을
제외하면 1권부터 제일 멋지게 나오는 인물들이 테무진과 휘하 장수들인 걸 보면, 중국인
으로서의 기준으로 작품을 풀어나가되, 배타적이고 팽창제일주의인 이기주의식 민족주의와
는 김용이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조영웅전에서 의천도룡기에 이르는 이른바 영웅문 연작에서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
지 모르지만 이민족을 깎아내리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특히 의천도룡기에서
고려무사 등장 장면은 기묘한 실소가 나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김용이 중화 사상에 물든
인간이냐 하면, 그건 속단할 수 없습니다. 천룡팔부 말미에 등장하는 조후와 철종의 대화
와 뒤에 이어지는 철종과 신하들과의 대화장면을 보십시오. 단순히 중화라는 명제에 충실
하다면, 왕안석의 변법(혹은 신법)을 통한 부국강병과 연운16주 탈환을 원하는 철종의 말
에 작가가 호의적 묘사를 할 겁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철종은 독불장군으로 묘사되며,
전쟁을 반대하며 안정을 원하는 조후와 신하들의 의견에 무게가 실립니다. 이 부분은 소설
내에서의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부족한 부분일수도 있겠군요. 왕안석의 신법과 그 정책에
맞선 당대의 지식인 사마광의 대립. 당대의 문장가이기도 한 왕안석과 시대의 문장가 동파
소식의 갈등. 법가적 사상과 유학의 충돌 등등. 설명하려니 말이 길어지고, 이 부분은 아
는 만큼 보이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소봉의 죽음 이후 "그는 어릴 적부터 우리
한나라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나라 사람의 인자함과 의지를 배운 것이오." 라고 말하는 부
분에서는 작가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납니다만.
제가 앎이 부족해 제대로 말할 수가 없지만, 김용이란 작가의 세계관은 성리학적 소양이
제일 바탕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계관이 소오강호에서 파탄을 보이더
니 녹정기에서 완전 파괴되어 버립니다. 이렇게까지 되면 김용 세계관의 일관성을 말하기
가 힘이 들 정도입니다.
두서없이 말이 길어지는군요. 신필이란 칭호는 과분합니다만, 김용이 뛰어난 무협소설가임
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인식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식의 한계가 작품
전체를 난도질할 만큼 크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한국인으로서 작품을 보되 작품의 한계
역시 파악하는 읽기가 좋지 않을까요. 그런 읽기를 하자면 좀 더 넓은 앎이 필요하겠습니
다만.
기왕 말하는 김에 책 한권만 추천합니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라는 책입니다. 사조영웅
전의 무대인 몽골과 이후 배경이 되는 원, 영락제만 나오면 거의 같이 나오는 북원. 그리
고 또 무협소설에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타타르부와 오이라트부. 무협소설 속에서 변경의
상징중 하나인 아시아 북부의 유목민족, 하지만 변경이 아닌 자신들만의 중심을 가진 이들
의 역사를 나름대로 보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김용의 소설이 뛰어나지만, 중국인으로서 타민족의 인식에 대한 한계 역시 담고 있고, 읽
으면서 그 부분을 놓치지 말며, 그러면서 또한 우리 역시 우리들이 한국인이란 이유로 타
민족에 대해 잊고 있는 사실이 없는가 라는 취지의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글 계속 쓰려면
횡설수설 기부터 줄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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