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한 사내가 옻칠된 팔선탁을 후려치며 서신을 내팽개친다. 무슨 내용이길래 저리 화를 내는 것인지...
살짝 열려진 창턱에는 까마귀 한마리가 부리로 가슴털을 고르고 있었다. 이가 있나보다. 다리엔 죽통이 매어져 있는 걸로 보아 전서오(傳書烏)인 것 같다. 전서구(傳書鳩)는 봤어도 전서오라니 특이하다.
그때, 어디선가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때는 10월말 때이른 동장군에 신들린 바람이 좁은 틈새의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절묘하다. 우리에게 서신의 내용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바람이 서신을 휘날리게 한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휘청휘청, 우물주물, 꼼지락꼼지락 ....
한동한 활개치던 서신이 창문에 턱 달라붙는다.입맞춤하듯. 둘이 사귀나?
서신의 내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 명분파(名分派)의 창건을 축하드리오! 명분파라... 어찌 그리 이름을 성격에 맞게 잘 지었는지 감탄할 따름이오! 불원천리(不遠千里)를 마다하고 직접 찾아뵈어야 하나 거기와 여기가 천리를 넘어선 만리나 떨어져 있으니 어찌 멀다하지 않을 수 있겠소! 다시한번 창건을 축하드리고 다음에 찾아갈 일이 있으면 찾아가리다! 내가 오지 못하는 명분이 마음에 안드시오? 허, 거참! 뭘 그리 명분에 집착하는지... 요리조리 좋은 말만 갖다붙인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명분인 것을... 정 그리 마음에 안 든다면 그 까마귀를 구워 삶아먹으시오! 그놈이 오지않는다면 내 새로운 명분을 다시 적어 보내드리리다! 그럼..
아우우! 아우우!'
끝부분이 찢겨져 누가 보내는지 안 보인다. 왜 항상 보내는 사람의 신분을 끝에 밝히는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부분만이 찢겨졌는지 궁금하다. 가래침을 싸서 버릴려고 그랬는가? 하긴 자기 방바닥에 침뱉는 것을 못봤으니 이해할만도 하다.
사신 10권의 내용을 나타내고자 지어봤습니다. 이번권은 천외천의 활약이 두드러졌더군요. 살수라는 단어자체를 아예 쌍그리 없애버릴 요량으로 거세게 몰아붙입니다. 그러나 너무 힘을 키웠더군요. 구파일방을 발톱에 띤 때만큼도 여기지 않을 정도로...
열받았습니다. 개방의 방주를 얍삽하게 죽일때는.......
그리곤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왠만한 살수문파는 저리가라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순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타당하다해도....
정파에서 주장하는 사파나 마의 무리 혹은 하류무사들이나 암습을 쓰기에 자기들은 정파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신 10권에서의 '천외천'이라는 말은 허울좋은 문패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받고 살인을 하기에 살수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천외천이 내건 명분이지요. 명분이라는 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죽여놓고 이것저것 꿰맞춰 그럴싸하게 이유를 대면 정당화되는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명분이라는 것도 세상 주류들에 의해 생겨나고 인정되는 것이라 한다면 비주류들의 생각과 기치(旗幟)는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을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더군요. 그래서 다들 주류에 편승하려고 발버둥치려고 하는지도 모르지요
까마귀는 반포지효(反哺之孝- 어렸을때 60일간 먹여준 어미를 커서는 반대로 한다는군요)가 있고 늑대는 부자지친(父子之親) 같은 과(科)라 할 수 있는 승냥이는 조상지숭(祖上之崇)이 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짐승만도 못한'이라는 말은 쓰지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대문파, 혹은 정파라는 배경이 없었더라면 '구진법'의 '구'자도 밟아보지 못했을 놈둘이 한다는 일이 은인 뒷통수때리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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