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전, 피시방에서 카운터로 일하던 시절의 글입니다.)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기에는 학력이 딸리고, 뚜렷한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노가다를 뛰기에는 체력이 시원치 못한 나는 젊었을 때부터 여러 차례 서비스 업에 종사해 왔었다.
무슨 다방, 무슨 카페, 그리고 마흔 살을 넘기고부터는 피시방 야간 카운터 일....
요컨대 평생 남들 시중을 들며 살아온 셈이다.
그렇게 손님들이 더럽힌 재떨이나 비우고 씻으며 사는 것이 내 팔자인 모양이다.
낮 타임에 피시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일부러 재떨이를 물로 씻지는 않고 물에 적신 휴지로 닦아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나는 손님들의 가래침으로 뒤범벅된 재떨이를 일일이 물로 씻고 수세미로 박박 닦아내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안 그러면 끈적끈적한 땀이 밴 속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는 것처럼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다.
물론 나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가래침 묻은 물건들을 만지는 일이 즐거울 리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 재떨이들은 내가 앞으로 줄창 만지고 살아야 할 물건들인 것이다.
어딘가 더러움이 남아 있는 듯한 물건을 만지면서 꺼림칙해 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그것들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마음놓고 만지는 편이 낫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가래침으로 더럽혀진 재떨이가 그렇지 않은 재떨이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아니, 담배를 피우다 보면 목에 가래가 끓게 마련이니 별로 이상해 할 일도 아닌 것일까?
우리의 공중도덕 수준이 생각보다 형편없이 낮은 것일까?
아니면 피시방 요금을 내고 누릴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재떨이를 더럽힐 수 있는 권한 역시 포함되는 것이니 이 일을 놓고 공중도덕을 운운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인 걸까?
값을 치르느냐 안 치르느냐가 문제이지 처신이 우아하고 우아하지 않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가치관이 여기에도 작용한 것일까?
그런데 허구한 날 이렇게 더러운 재떨이들을 씻으면서 살다 보면 엉뚱하게도 인간에 대한 어떤 이해 같은 것이 생긴다.
밤낮없이 남들의 정액 묻은 콘돔을 치우는 러브호텔의 청소부나 똥 묻은 시트를 가는 간병인이 느낄 법한 류의 이해다. 인간의 추한 물질적 바탕에 대한 이해....
이렇듯 가래와 침과 정액과 고름 같은 오물들을 속에 지닌 채 끊임없이 세계를 더럽히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이니 박애니 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간이 이타적인 모습을 나타내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사뭇 감동스럽고 대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인간이란 참 사랑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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