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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Personacon 별가別歌
작성
12.10.05 03:26
조회
744

아, 정말 무한반사님의 글을 읽으며 공감 또 공감했습니다. 게다가 이어진 無轍迹의 글과 그에 따른 댓글들까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이 이리 많을 줄은... 너무 기쁩니다. 해서 얼마 전에 했던 단상을 정담에 조금 격식을 갖춰 풀어보려 합니다. 단, 원문이 워낙 프리했었던 터라 반말을 사용하고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쾌검에 대한 단상>

0. 검의의 종류와 간략한 개념

무협에는 많은 종류의 검이 있다. 이는 지닌바 요체(=검의)에 따라 강剛, 패覇, 중重, 만萬, 환幻, 변變, 연連, 운運, 경輕, 쾌快, 만慢, 둔鈍, 완緩, 괴怪, 기寄 등으로 분류되는데, 사실 말만 다를 뿐 크게는 강(강하고), 중(무겁고), 환(어지럽고), 경(가볍고), 쾌(빠르고), 둔(느리고), 기(낯선, 또는 드문)의 일곱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이 여섯은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두 부류로 갈리는데, 주류와 비주류가 그것이다. 주류는 강, 중, 쾌이며 비주류로는 경, 환, 둔, 기가 있다.

1. 속도와 욕망은 공범

그러나 내가 굳이 이 여섯 가운데, 또 주류의 두 가지 가운데 '쾌'에 골몰하게 된 까닭은 온전히 <속도와 욕망은 공범>이라는 문장 하나 때문이었다. 이는 일본의 승려 코이케 류노스케가 한 말인데, 곱씹을수록 참 오묘했다.

최근 무협의 경향을 일축하자면, '더 강하게, 더 빠르게'가 적합할 것이다. 오늘날의 영웅은 오로지 강하고, 빠른 것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바로 강함의 척도이며, 무협의 세계에서는 강함이 곧 권력과 맞닿아 있는 탓이다. 이로써 빠름=강함=권력(욕망)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성립되는바, 생각하면 할수록 <속도와 욕망은 공범>란 말이 크게 와닿았다.

2. 붉은매와 안법 수련

요즘에야 거의 절전되다시피 했지만, 옛 무협에서는 종종 '안법'이란 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마 만화 <붉은매>를 본 세대라면 더욱 익숙할 것이다. 안법이란 쉽게 말해 눈을 단련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동체시력을 길러 상대의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하지만 안법은 그 수련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지루할 뿐더러, 일정 성취를 이룬다 할지라도 문장적으로 그 효과를 세분하여 서술하기가 쉽지 않아 최근엔 대게 내공을 안구에 때려 박거나 혹은 우겨 넣는 방식으로 안력의 부족함을 해결하고 있는 형편이다.

3.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의 검

흔히 어떤 인물의 강함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상투적 표현으로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의 검>이란 개념이 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다. 고수인 갑과 (그보다는) 하수인 을이 만났다. 그런데 을이 개념을 잃고 갑의 기분을 거스른다. 이때 갑은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상대방에게 명확한 실력의 우위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의 검>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엄청난 속도로 발검하여 상대의 옷깃이나 머리칼을 살짝 자르거나, 피부에 생채기를 내곤 다시 착검하는 식이다. 물론 이때 을은 갑이 검을 뽑는 것을 보긴커녕 바람 한 점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먼저 2번 항목을 다시 봐주길 바란다. 무림인이란 존재는 보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시각을 전제로 공방의 간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인데, 과거엔 안법 수련으로 이를 뒷받침했고 최근엔 내공심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이 어떻든 안력이 강화된다는 결론엔 변함이 없는바. 곧 무림인의 (동체)시력은 일반인의 그것을 상회하는 것이 분명하다.

4. 300프레임의 초시각

자, 그렇다면 이번엔 무한반사님의 글을 살펴보자. 다음의 대목이 아주 중요하다.

- 문 : 소리는 백십삼장을 일초에 진행하니 인간의 시각한계인 21프레임에 일장정도를 움직이는 이형환위는 소닉붐을 발생시키지 않을텐데요?

- 답 : 그렇지 일반적인 인간들이라면 그렇겠지만... 무림인이라는 작자들은 일초에 300프레임의 초시각을 가지고 있다네 그런 무림인에게 이형환위로 보이려면 마하 2.64의 속도가 필요하고

300프레임의 초시각을 가진 무림인에게 이형환위로 보이기 위해서는 음속 2.64의 속도가 필요하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보이는가? 그렇다면, 300프레임의 초시각을 가진 무림인의 동체시력이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의 속도는 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5. 쾌검과 음속파동

역시 문제는 소닉붐, 음, 그러니까 음속파동이다.(정확히 사전에는 음속폭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단순히 소리라기엔 파괴력이 상당한 거 같다.) 우리는 앞서 초시각을 속이는 데 굉장한 속도가 필요할 뿐더러 그로부터 발생되는 음속파동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도 알 게 되었다. 그렇다면 초시각을 아예 무시하는 데는 얼마나 엄청난 속도가 필요하며, 또 무지막지한 음속파동이 발생할까?

본인이야 인문학도이니 정확한 수치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갑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빠르기만 하다면 반드시 음속의 벽에 부딪힐 테고, 그렇다면 그로부터 발생할 음속파동은 피할 수 없는 반작용인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겐 내공이란 신비막측한 힘이 있긴 하다. 사실 그게 없었더라면 갑의 팔과 검은 이미 한참 전에 으스러져 한 줌 가루가 되었으리라. 음? 갑이 음속파동마저 상쇄시킬 만큼 내공이 넘쳐나는 사람일수도 있지 않느냐고?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그런 낭비를, 왜 하나?

6. 둔공과 연비

둔공은 사실 굉장히 천시 받는 개념 중 하나다. 느린 검이라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후발선제니 뭐니 하는 개념을 추가한다 해도 딱히 인상이 강렬하지 않은 탓이다. 특히 독자가 갈수록 자극적인 것을 찾는 이 마당에는 더욱 채택하기 힘든 개념임에 분명하다.

덕분에 둔공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허다할 뿐만 아니라, 어쩌다 등장한다 치더라도 쾌검의 궁극에 이르기 위한 한 단계로서 잠시 반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질량보존의 법칙과 작용-반작용, 그리고 음속파동의 개념만 있다면 한 가지 재미난 가설을 추론해 볼 수 있다.(사실 정말 맞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아는 거 다 읊어봤다. 헙.)

자, 그럼 갑과 을을 다시 불러와 보자. 단, 이번엔 모든 조건이 같다는 전제 아래서다. 외부 조건, 골격, 근밀도, 체격, 혈류 속도, 신체 각부의 크기와 길이, 나이, 건강 상태, 영양 상태, 그리고 심지어 내공의 양과 수발의 원활한 정도 등등.

먼저 갑이 검을 휘두른다. 여기에 실린 힘과 속도, 내공은 100을 기준으로 각 100이라고 하자. 그야말로 전력이다. 게다가 거리는 최단, 즉 직선을 택했다. 따라서 그의 검은 손쉽게 음속을 뛰어 넘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막대한 양의 누수가 발생한다. 어마어마한 반작용에 의해 갑은 힘, 속도, 내공 모든 면에서 상당량의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신체와 무기를 보호하는데 드는 내공면에서 손실이 클 것이다.

을도 검을 휘두른다. 여기에 실린 힘과 속도, 그리고 내공은 각 50씩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또 하나의 변수로 곡선을 택했다.(평면 상에서는 직선만이 두 점을 잇는 최단이지만, 3차원의 입체 상에서는 곡선이 최단일 수도 있다. 공기의 저항 등 때문이다. 아마도. 기억이 맞다면.) 정직한 방향이 아니라, 절묘하게 사각을 파고든다. 덕분에 그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음속에 도달하지 못하고 뻗어 나간다.

이것은 기계로 따지면 연비의 차이와 같다. 갑은 힘과 속도 모두 좋지만 내공을 엄청나게 잡아먹으므로 5급과 비견된다면, 반면 을은 힘과 속도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내공을 적게 먹어 3급 내지 2급 정도로 볼 수 있는 셈이다.(물론 내공은 연료인 동시에 힘과 속도를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충격량을 배가시키는 역할도 하는 게 일반적인 무협에서의 상식이지만 연비 얘기에서만큼은 그 부분을 잠시 제외했다.)

7. 효율의 문제

즉 둔공의 존재 의의는 효율에 있는 지도 모른다. 후발선제가 <3차원 입체 상에서의 두 점을 잇는 최단 거리가 반드시 직선인 것만은 아니다>라는 명제를 기반으로 하듯 둔공 역시 <강하고 빠를수록 (여러 요소에 의해) 내공을 많이 잡아 먹는다>는 명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Comment ' 1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10.05 09:00
    No. 1

    사람의 시각이 16프레임에서 24프레임인데...
    그 프레임 수에 따라 1초라고 느끼는 시간이 다르다고 어떤 책에서 읽은 것 같네요
    그러니까 물수리의 프래임이 35였나. 해서 걔는 인간보다 1초가 길다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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