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 개인적으로 전부터 가지고 있던 달빛 조각사라는 소설에 대한 생각을 두서없이 늘어놓은 글이기에, 쓸데없이 긴 글이 될 수도 있으니 시간이 아까운 분들은 굳이 읽어서 시간 낭비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양판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적으로 조롱조의 의미가 달려 있다. 그 소설 자체가 B급 퀄리티를 지닌다는 소리다. 어떤 소설에 대하여 ‘양판’ 이라고 표현한다면, 대체로 그 소설을 비하하는 목적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이러한 무수한 양판의 범람으로 인하여 판타지 소설이 질적으로 하락했고 이 때문에 시장이 망했다, 망쳤다, 는 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형적이건 어쨌건 간에 이러한 양판이 사람들에게 먹히긴 했고, 먹히다 보니 일종의 ‘양판 시장’ 과 비슷하게 양판 또한 장르화 되었다. 퀄리티 이야기는 둘째치더라도, 양판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보는 독자층과 그 외 다른 판타지 소설을 보는 독자층은 이미 상당히 분리되어진 상태다. ‘일본 러브 코미디’ 독차층과 ‘마블 히어로물’ 독자층이 같은 만화 독자라는 점을 빼면 별다른 공통점이 없듯이 말이다.
즉 양판 또한 별개의 시장으로 되었다. 양판은 ‘양산형 판타지’ 즉 비슷비슷한 소설들이라는 이야기지만, 그 ‘비슷비슷한 소설’ 들 중에서 어떤 양판은 인기를 끌며 몇만부의 판매량을 벌어들이는가 하면, 어떤 양판은 5권만에 출판사로서 씁쓸한 연중 지시를 받기도 한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소설들 사이에서도 대중들에게 먹히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달빛 조각사’ 는 어떨까? 달빛 조각사에 대해 호평하는 독자도 있고 극도의 악평을 하는 독자도 있다. 나름대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시장을 망쳐버린 소설이라는 평도 있다.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다른 양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로간의 평이 어찌되었던, 이 소설이 거두어들인 성적은 대단하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다.
2014.03.07 기사에서 언급된 현 달빛조각사의 판매량은 100만부에 육박한다. 현 달빛조각사의 권수를 보자면 이는 권당 2만를 넘는 판매량이다. ‘시대의 대표작의 판매량이 권당 2만 5천 정도?’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한때 만개를 넘기던 전국의 대여점들이 수천단위 아래로 떨어져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대여점 소설은 사서 보는게 아니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것을 보자면 놀라운 수준의 판매량임에는 분명하다.
앞서 말했듯 ‘대여점 소설은 사서 보는게 아니’ 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주로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YES 24 등에서 달빛 조각사의 신간 판매량은 거의 1만에 가까운 판매 지수를 보이고 있다. 이는 명백히 ‘파는 소설’ 의 목적을 가지고 나오는 시드노벨, 노블엔진 등의 주요 간판 라이트노벨에 판매 지수를 웃도는 성적이다.
또한 종이책 판매량 뿐만 아니라 이북 관련한 요소에서도 달조는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2013-09-27 무렵 카카오 페이지 의장은 달빛조각사의 매출에 대해 “하루에 수백만원” 이라는 언급을 했고, 여러정황을 보면 사실상 카카오페이지라는 서비스는 달빛조각사의 힘으로 유지되는 듯 하다.
이러한 달빛 조각사의 성공은 분명 다른 양판들과는 차별화되는 엄청난 수준이다. ‘비슷비슷한 양판들’ 이라고 평가되지만, 그 비슷비슷한 다른 양판들은 달조의 이러한 성공에 댈 수조차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달조가 100만부의 판매량을 거두며 다른 소설들과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 만큼 대단한 퀄리티일까? 소설의 수준이라는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부분이지만,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달조의 퀄리티가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수준이지도 않을 것이다.
달조라는 소설의 성공은 확실히 대단한 수준이다. 달조가 뛰어난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평범한 양판과 다를 것 없는 수준 이하의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본인은 이 글에서 달조라는 소설의 수준을 평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달조가 왜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달조는 게임판타지가 대세 중의 대세였을때도 인기였으며, 게임판타지가 한 물 간 상황에서도 인기였다. 달조는 대여점 시장이 아직 건재했을때도 인기였으며, 대여점 시장이 몰락하고 난 뒤에도 인기였다. 달조는 좋은 평을 받았을때도 인기였으며, 혹평을 받았을때도 인기였다.
대체 왜 일까? 달조의 어떤 부분이 이런 인기를 끌어 올 수 있었을까? 달조가 여타 양판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면, 유독 달조는 성공했는데 다른 소설은 그 정도까지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선두자 프리미엄을 말해 볼 수도 있겠지만, 달조 이전에 나름대로 흥한 게임판타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혹시 힐름이라는 소설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그렇다고 달조의 퀄리티가 유독 뛰어났다고 한다면, 일반적인 평에서 달조보다 낫다는 소설들조차 달조의 성공에 대지도 못할 정도라는 이유도 설명하기 힘들다.
달조는 대체 무엇이 다르길래 다른 소설들은 범접도 못할 성공을 거두었을까? 이후부터 언급하는 부분은 본인의 ‘분석’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그냥 개인적인 생각으로만 봐주시기를 바란다.
음식이건, 영상 매체건, 소설이건, 보통 ‘잘 팔리기 위해 수준을 포기하는’ 식의 작품들을 보자면, 그것이 100%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은 ‘자극적’ 이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십, 수백개의 경쟁작이 범람하는 와중에서 눈에 보이고 주목 받기 위해서 자극적인 소재를 쓰고, 원초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대여점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판타지 소설의 독자층은 보통 자극적인 것에 잘 끌리는 젊은층이 주수요이고, 공급자인 작가들도 대부분 자극적인 요소에 좀 더 몰두하는 편인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철저한 응징, 원초적인 힘으로 깨부수는 자극적인 시퀀스, 노골적인 성적 관련 묘사,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극단적인 설정과 연출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품성 대신 판매량을 위한’ 소설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이는 달조를 보다보면 굉장히 독특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자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굉장히 담백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달조를 1권부터 40여권에 이르기까지 보면서, 소설 내에서 직접적인 욕설이 묘사된 적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욕설이 순화되어 표현되는 경우는 간간히 나오지만, 자극적이라고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40권의 방대한 텍스트 동안 제대로 된 욕이 나온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또다른 부분을 보자. 달빛조각사 역시 많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편이다. 게중에 일부는 주인공과의 썸씽이 있기도 하며, 뛰어난 미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 등장인물의 묘사 등에서는 설사 여성부 정직원이 달조를 본다고 하더라도 자극적이라고 표현할만한 묘사는 거의 없다. 작중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에 대한 주요 묘사는 “대단히 예쁘다.” 정도일 뿐이며, 혹시 여타 매력을 강조한다고 해도 최대의 수위가 “섹시하다” 는 정도일 뿐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런 표현은 수위라고 볼 수도 없다. 섹드립이라던지 ‘주인공이 옆에 섹돌 끼고 다닌다’ 고 원색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여타 양판들 수준의 수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
이러한 부분은 달조의 특징적인 부분인지, 대단하다고 표현할 것은 아니다. 소설이 도덕책도 아니고 욕 더 안나온다고 좋은 소설이라는 이야기도 못 된다. 다만, 달조라는 소설의 ‘분위기’는 일관 되게 이와 비슷하다는 점은 주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달조와 자주 비교된 소설 중에 지금은 연재가 끝난 ’아크‘ 라는 소설이 있다. 본인도 아크를 재밌게 봤으며, 특히 대규모 전투 씬의 묘사력이나 고래의 뱃속등을 무대로 삼는 작가의 상상력에는 상당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아크를 보는 중에 조금씩 불편했던 요소가 있다면, 주인공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였다.
아크의 주인공 아크는 쉴새 없이 남들에게 사기와 공갈을 치고 협박을 하면서도, 본인이 그 대상이 되면 참지를 못한다. 그 정도면 괜찮지만, 소설의 중반 이후부터 하나의 패턴이 되어버린 ‘자신의 이득을 위해 돼지 삼총사를 쉼없이 두들겨 패는 장면' 등은 어느순간부터 굉장히 거북스러웠다. 그렇게 남을 등쳐먹는 아크가 ’난 본래 악랄한 사람이다' 라고 한다면 몰라도, 이에 대해 자기 쉴드를 치며 몸이 안 좋은 어머니 앞에서는 효자노릇을 한다는 설정은 뭔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양판을 보는 ‘양판 시장’ 대다수 독자층은 소설에 여타 다른 요소를 기대한다기보다는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전개를 원한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것이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불편해지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달조는, 이러한 ‘지나치다' 싶은 장면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앞서 달조에서 욕과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묘사를 거의 찾기가 힘들다고 언급했는데, 이와 비슷하게 달조 내에서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시퀀스가 나오거나, 주인공의 적대자였다고 해서 그야말로 처참하게 무너지며 바닥까지 추해지는 식의 묘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설 내에서 가장 극단적인 장면은 이현을 협박하려던 사채업자들이 ai 베르사에 의하여 갇히게 되는 정도인데, 여타 소설들에서 나오는 극단적이고 처참한 장면들에 비하면 댈 것도 못되는 수준이다.
달조라는 소설의 분위기 자체가 그렇다. 이 소설은 물에 물 탄듯 술에 술탄듯 그저 유유하게 흘러갈 뿐이다. 여기에 양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설의 분위기 자체가 자체가 그렇다면, 장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어떨까? 여기서 먼저 주인공인 이현 - 위드라는 인물의 스펙을 살펴보자. 위드는 작중 세계 최고의 검술가가 후계자로 낙점한 인물이자, 온갖 재력을 동원한 상위 랭커들마저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게임 실력자고, 수십만 대군을 문제없이 움직이는 통솔력에 전륜한 무력과 카리스마, 사람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고 여러 여자들에게도 플래그를 세우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게임을 해서 가족들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며, 나쁜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실제로의 행적은 착한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주인공 버프가 너무 심하다 못해 유치하다고 할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위드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점은 책을 덮고 생각을 해보았을때 나타나는 점이지, 소설 내에서는 거의 부각이 되지 않는다. 달빛조각사라는 소설은 일관되게 주인공에 대하여 부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위드가 놀라운 계략을 발휘하여 강력한 보스몬스터를 격파하면 이는 ‘치사하고 더러운 수단' 으로 묘사되고, 위드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이득을 날려먹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 에 대해 언급하며, 장사를 하며 정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악질 수전노 근성' 으로 묘사된다. 위드가 모두가 이익을 보는 대규모 일을 추진하기라도 할라치면 소설에서는 ’남들을 죽어라 착취하는 악랄한 놈' 으로 묘사되는 판이다.
이는 여타 양판 주인공이 온갖 꺵판과 만행을 쳐놓고 각종 중2병적 대사와 개똥철학을 동원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는것과는 정반대다. 위드의 대한 남희성 작가의 이러한 묘사가 날카로운 반전 서술로 집어넣은 것인지,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후자 쪽이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런 묘사 탓에 위드는 분명 유치할 정도의 먼치킨임이 분명한데도 소설을 보는 와중에는 그러한 먼치킨적인 요소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달빛조각사를 보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위드라는 캐릭터에 자신들의 감정을 대리시켜 보고 있는데, 그런 주인공이 짜증나는 존재였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40여권에 걸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오라전대 피스메이커의 유가인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면에서 본다면 위드는 양판 주인공 중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다. 이러한 위드의 부담없는 면모, 여기에 더해 달빛조각사 특유의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한 분위기가 더해지며 달조는 굉장히 담백한 소설이 되었다.
아무리 자극적인 맛이 좋다고 해도,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면 40여권이 넘는 동안 독자들은 소화하기가 굉장히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달조라는 소설 분위기가 이런 자극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있기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와중에서도 비교적 일관됭 호응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싶다.
전체적인 주제도 그렇다. 달조는 일반적인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필사적이야 할 당위성 같은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빚으로 인한 주인공의 최대 위기는 이미 1권 시작 부분에 해결되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분도 10권 안팎에서는 이미 끝난 셈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달조는 억지로 끌고가야할 주제 자체가 없는 수준이다. 거기에 소년만화처럼 끊임없이 강한 적을 상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위드의 기행이 늘어지며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비판의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이러한 주제의 부재에 더해 소설 특유의 담백한 맛이 결합하여 끊임없이 늘어날 수 있지 않았는가 싶다.
정리하자면, 달조는 다른 양판들이 사이다와 콜라를 권할때, 독특하게 그냥 ‘물 맛' 을 권해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싶다. 사이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콜라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사이다를 좋아하다가도 싫어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달조라는 소설에 좋은 평을 내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쓰레기 같다' 며 악평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악평을 하는 경우도 ’글의 퀄리티'에 대한 부분이지, 적어도 ‘나는 이 음식은 소화를 하기 힘들다' 는 악평은 아니다. 달조의 성공 요인은 그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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