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윤태루
작품명 : 궁에는 개꽃이 산다
출판사 : 신영미디어
제가 몇년 안에 읽은 로맨스 중 최상급으로 꼽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감정이입을 위해서 역시 꺾인말은 양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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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놈이 주인공인 로맨스도 찾아보기 힘들거늘
이 소설은 무려 나쁜 여성이 주인공이다. 진짜 악녀다.
여러 드라마나 사극에서 등장하는 인상 팍팍 쓰는
아리땁지만 독하고 집요한 악녀 캐릭터를 연상하면 딱이다.
궁에는 꽃이 산다.
개꽃이라 하였다.
모양은 꽃이고 속은 개라,
궁에 사는 꽃은 개꽃이라 하였다.
주인공인 개리를 비꼬아 부르는 노래다.
현비의 지위를 가진, 황제 언의 아내 중 하나다.
지극히 아름답지만 너무나 투기가 심하고 악독하여,
궁에서는 은밀히 이런 노래가 돌고 있을 정도다.
보면서 '이거 좀 심한거 아닌가?' 싶었다.
진짜 나쁜X 소리가 절로 나오는 행태에,
성격도 극악 극강, 내강외강하며 까칠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악녀는 사랑을 할 수 없나?
선량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수줍음많은
얌전한 소녀만 사랑을 하나?
그렇지 않다. 사랑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개리의 사랑법은 짜증나고, 답답하고,
너무 직선적이어서 오히려 알아챌 수 없고,
그래서 더 애절하고 안타깝다.
언과 개리의 사랑을 한 두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끝없이 서로를 상처주며,
그런데도 아끼고 아껴서 어쩔 줄 모르는.
처음에는 개리에게 감정을 이입하는게 쉽지 않았다.
오히려 개리가 주인공인 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안원공주를 주인공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다른 소설에 등장했다면 99% 주인공이라 생각할 만한 안원공주는
아름답고, 조신하고, 왕을 남몰래 사모하고, 무진장 엄청 착하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이 얼굴만 선녀 뺨치는 소름돋는 악녀 개리에게 빨려들어갔다.
개리는 자기 휘하의 나인들에게도
모질게 매질하고, 심심하면 갈군다.
하지만 그 이면에 그녀들이
자기 사람이라는 인식도, 아끼는 마음도 있다.
영비가 그녀의 나인에게 매질했을 때
몇배로 갚아주는 장면에서는
나도 왠지 개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어린 개리가 황제를 연못에 빠뜨리고
나무에서 떨어뜨려 죽일 뻔 할 때는
얘가 정말 미쳤나 싶었지만,
나중에 그 심정을 아니까 나도 그러고싶었다.
개리의 만행을 보다못한 언이 현비전을 폐쇄할 때,
결국은 아예 그녀를 내쫓아 보낼 때,
너무나 심하게 가슴앓이를 하는 개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지독하게 굴어도 결국은 언이
자기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녀도 같이 무너지는 모습이 처절했다.
쫓아낸 개리의 모습을 몰래 찾아가 지켜보는 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뿌듯한 느낌이 들었고,
외간 남자에게 손목을 잡혀 서러움에 계곡가에서 펑펑 울던
개리는 너무 연약하고 불쌍해 보여서 어쩔 줄 몰랐었다.
한 챕터가 지날 때마다 나는 개리에게 동화되고 있었고,
그녀의 사랑법에 가슴치며 답답해 했다.
그리고 궁에 떠돌던, 그녀를 비웃는 내용이라 생각했던
그 노래는 사실 개리가 지은 것이며,
뒤에 두줄이 더 있는 것을 알았을 땐 아찔했다.
궁에는 꽃이 산다.
개꽃이라 하였다.
모양은 꽃이고 속은 개라,
궁에 사는 꽃은 개꽃이라 하였다.
하늘이 불러들여 개꽃이 되더니,
하늘을 뒤덮는 배꽃이 되었다.
이 노래는 궁에는 개꽃이 산다를 읽은 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난 남자지만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솔직히, 울었다 -_-;;)
결말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많다.
해피엔딩을 내려고 마지막 부분에서 좀 억지가 많기는 했다.
원래는 새드앤딩이었다고 한다. 그쪽이 나았다고도.
새드쪽 엔딩은 안읽어서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해피엔드가 좋다.
새드엔딩이 더 가슴 아프고 더 오래 기억하고
더 강한 인상이 남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책은 다시 펼치지 않을 것이고 기억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나는 이리야의 하늘을 다시 읽지 않는다.
난 마조가 아니니까.
언과 개리가 행복해졌기에,
그래서 개리의 힘든 사랑이 보답받았기에,
나는 웃으며 다시 책을 집어들 수 있다.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부서지고
갈가리 찢어지는 개리의 모습을 읽으면서도
그 앞에 기다릴 축복을 알고 있기에
마음 속으로 응원하며 볼 수 있게 되었다.
궁에는 개꽃이 산다.
모양은 꽃이고 속은 개다.
하지만 그 향기는 모르는 새 마음을 가져간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1885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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