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지환
작품명 : 이혼의 조건
출판사 : 현대문화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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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의 사랑과 진심을 더러운 죄악으로 만들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는 곱게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속삭였다.
"너는 내게 허수아비야. 너는 절대로 사랑받을 수 없어.
잘난 네 집안의 배경으로 날 얽어맨 너를 혐오해.
내 여자가 차지할 자리는 네가 아냐.
평생 동안 너를 증오하겠어, 아니 경멸해."
사랑을 받는 자는 오만하다.
상대방이 준 그 사랑을 무기로 단지 짝사랑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상처 주고 아프게 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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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기헌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현수.
첫사랑 영혜를 잊지 못하는 기헌.
오랫동안 현수를 마음에 품어온 동욱.
언제까지나 아이같은 영혜.
요약해보면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현수는 크나큰 사랑을, 소중하게 품어온 마음 모두를 남편 기헌에게 바쳤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그 마음은 보답받지 못하고 버림받게 됩니다.
기헌은 오랫동안 찾아헤맨 첫사랑 영혜와 재결합하기 위해 냉정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현수는 산산조각나버립니다. 그렇게 부서진 그녀가 다시 한번 일어서서,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그것이 이 작품의 모든 내용입니다.
작가는 '현수&동욱', '기헌&영혜'라는 두 커플을 통해서 서로 다른 사랑의 형태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그 효과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현수가 내건 '이혼의 조건'이죠. 이 글의 제목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한 이 구도가 그저 그런 이야기로 끝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내면을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명의 주인공이 각자 품고 있는 마음, 그러한 감정이 얽히는 혼돈을 어찌나 강렬하게 묘사하는지...
특히 주인공 현수의 내면묘사는 압권입니다. 그녀는 마치 불사조 같습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그 재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전설상의 신수처럼, 현수는 지독한 아픔에 몸과 마음이 으스러지지만 끝내 그것을 딛고 일어나 눈부신 사랑을 싹틔웁니다. 독자는 그녀와 하나가 되어 정신적인 죽음을, 그리고 부활의 환희를 함께 하게 되지요.
현수의 앞길에는 수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끔찍한 실연의 아픔, 이혼녀라는 딱지, 주변의 시선, 가족들의 배려 아닌 배려... 게다가 다시 얻게된 연인 동욱과의 사랑은 가시밭길입니다. 세상 모두가 적으로 돌아선 것 같은 상황이죠. 그러나 현수와 동욱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큰 아픔 속에서 어렵게 피워낸 사랑이기에 서로를 믿으며 함께 고난을 헤쳐나갑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아가죠.
너무나 불안하면서도, 풍랑 속에서 더욱 빛나는 둘의 사랑이 흐뭇합니다. 현수의 지고지순한 애정이, 동욱의 올곧고 강한 마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죠. 특히 동욱의 맷집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왼쪽 뺨 맞으면 오른쪽 뺨 내밀고, 오른쪽 뺨 맞으면 다시 왼쪽 뺨을 내미는 그의 능글맞고 은근한 공세에 하나 둘 장벽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 정말 남자는 이래야 한다 싶습니다. 이런 남성이라면 존경할 만 합니다.
간만에 읽은 진한 글이었습니다. 안동소주 한바가지를 원샷한 것처럼 강렬한 감정의 폭풍에 취하게 하는 그런 소설입니다. 좀 오래된 글이긴 합니다만 정말 추천할 만 하네요.
http://blog.naver.com/serpent/110025516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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