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설봉
작품명 : 취적취무
출판사 : 청어람
설봉님은 2000년대 한국무협을 대표하는
대작가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망작도 많이 생산하셨지만 그 망작조차
어느 것 하나 버릴만한 글은 아닙니다.
괴작으로 평가되는 패군조차 나름의 논리와 끈기로
20권이 넘는 연결고리를 이어갔죠.
비판도 많지만 현 무협계에서 설봉이란 이름을 제외하면
변변한 중견작가가 얼마나 될런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 설봉님의 최근작 취적취무...
역시나 몰입도가 높습니다.
투골조를 둘러 싼 의혹과 천검가의 이해할 수 없는
권력다툼 양상이 혼조됩니다.
적어도 주인공 당우가 만정에 빠질 때까지는
이런 일관적인 흐름이 대단한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인육을 먹고 사는 만정 마인들 틈에서 살아남는 치열함.
그리고 당우를 쫓아 온 자들...
각박한 삶 속에서 자신의 긍지와 삶의 이유라는 끈을
한시도 놓지 않은 별종들이죠.
하지만 설봉님의 글이 대부분 그렇듯
한 번 막히기 시작하면 이상한 쪽으로 글이 흘러 버립니다.
당우의 경우 투골조의 한계... 100명의 동남동녀의 원정이라는
무지막지한 무공상승의 한계와 더불어 당후의 순후한 성정이
맞물려 더이상 실질적 무공상승이 불가능해집니다.
이걸 피하기 위해 편마의 제자로 들어가 녹엽만주를 수련하고
신산조랑의 백마공을 익히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밀어줄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집니다.
결국 설봉님은 당우의 무위를 올릴 수 있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되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설봉님은 큰 틀과 작은 설정을 씨앗으로 시작하는
기분파 작가님이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설정과 세계관을
다잡고 정해진 플롯 위에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중간에 막히면 글이 엉뚱한 단위로 놀아나지만...
성공하면 가히 천재적인 작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주어진 떡밥의 범위 내에서 작가 스스로 용인 가능한
논리를 따라 결과가 주어져야 합니다.
결국 만정을 나오면서 글은 엄청나게 틀어져 버립니다.
화액을 써서 이미 무너져버린 만정에 재폭발을 감행한
당우의 아버지 도광도부, 여기서 이미 많은 게 틀어졌습니다.
또한 만정을 뚫고 나온 일행의 관계가 미묘하죠.
그들은 같이 다닐 명분이 없습니다. 그것을 묘하게
신산조랑이란 인물을 내세워서 엮지만 마뜩치 않습니다.
또한 뜬금없이 등장한 마사와 류명의 불장난...
그렇게 천재라는 마사가 해놓은 일을 보십시오.
결국 적성비가 말아먹은 거 말고 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권력지향적 스타일의 묵비주가 마사에게 내침을
당하며 당우에게 들러붙은 이후의 행동이란 극히
실망스럽죠. 죽음은 어이가 없기까지 합니다.
또한 천검가에 틀어박혀 이상한 머리싸움을 하는 천검가주...
그의 행위명분도 별로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또한 천유비비검을 놓고 투골조를 4성까지 익힌 누구는 더더욱.
결론적으로 취적취무는 굉장히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이해할 수 없을 지경으로 말아먹은 글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습니다.
주인공이 나이차 30살이 넘는 여인과 해로하게 생겼어도
재밌습니다.
설봉님이 가열찬 집중력을 가지고 천재성을 개방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
마야에서 설봉님이 보여준 섬뜩한 경지는 아직도 가슴에 크게
각이되어 있습니다.
일심집중하여 몰아의 상태에서 써내리는 설봉님의
차기작을 기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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