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용
작품명 :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출판사 :
몇 달 전에 사조영웅전 3부작을 구입해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습니다.
번역이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옛날 생각도 나고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조영웅전을 문피아에 연재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자주 "우연히" 마주치는지, 주먹 한 번 내지르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하는지, 암기 하나 날아가는 동안 상대는 무슨 동작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등 개연성에 대한 비판이 비평란을 도배하고,
곽정이 멍청해서, 양과가 팔이 잘려서, 장무기가 우유부단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용녀가 순결을 잃어서 "이만 하차합니다"라는 댓글이 줄을 이을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 성격이야 취향과 참을성의 문제이고, 세상 모든 독자를 다 끌고 갈 수 있는 작품은 존재할 수 없을 테니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지나친 우연과 개연성에 관한 문제는 분명한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초월한 뛰어난 문학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말이지요.
물론 이 3부작에는 그런 약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곽정의 출생과 장무기의 출생 사이에 세기가 바뀌는 방대한 스케일, 카리스마 넘치는 천하오절과 이제는 무협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구파일방으로 대변되는 매혹적인 설정,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의 연쇄, 징기스칸 구처기 주원장 등 감초처럼 등장해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실존인물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모든 사건이 우연, 우연, 우연을 통해 전개되는 구성은 아무래도 불편했습니다.
북경대학에는 김용의 작품만 연구하는 과도 있다는데, 과연 이 소설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북경대학 '김학과'에서 연구하는 것은 이 소설이 어떻게 독자들을 매료시켰는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 고전에 관한 고수들이 모여있는 한림대 지곡서당에 지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께 물어봤습니다.
북경대학으로하여금 학과까지 개설하게 만든 김용 소설의 가치는 문장에 있다고 하더군요.
소동파를 비롯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문들이 소설에 절묘하게 녹아있다고 합니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발견할 수도 없다고 하더군요.
이야기가 진행될 때, 또는 (악비가 남긴 암호문 등) 이야기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시에 말입니다.
사조영웅전에 황용이 중독되어 남제에게 치료받으러 가서 남제의 제자와 시로 대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가 문제를 내고 황용이 풀어내는 것이죠.
제자는 재능이 뛰어난 문인이기도 합니다.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에, 자기가 끝내 풀어내지 못한 마지막 한 구절을 완성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황용이 그걸 풀어내지요.
우리가 읽으면 별로 재미없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이 재미있으려면 문제가 정말 어렵다는 걸 우리가 느낄 수 있어야 하고, 황용의 해답이 얼마나 절묘한지도 알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
물론 그것도 김용이 창조해낸 문장이 아니라 중국 고전 명문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그게 뭔지 저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번역을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럼에도,
이렇게 김용 소설의 진가를 음미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조영웅전 3부작을 제 인생 최고의 장르소설 중 하나로 꼽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소설이 제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실 것 같은데, 사실 이 이야기에서는 주인공들보다 천하오절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다섯 고수가 천하제일이 되기 위해 화산에서 검을 논하기로 하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이 사람들 굳이 무공을 더 연마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오른 경지에서 잘먹고 잘 살 수 있지요.
그런데 더 강해지기 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합니다.
단순한 호승심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천하오절은 개성이 뚜렷합니다.
누구는 외공, 누구는 내공, 누구는 독공, 누구는 검법....
각자 특기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릅니다.
어렸을 때 태권도랑 쿵후랑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많이 했죠.
어른이 되어서는 누구나 "센놈이 이긴다"가 정답임을 알게 됩니다.
서독의 독공은 처음 배우기는 쉽지만 일단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더 나아가기 어렵고, 전진교 무공은 처음 배우기는 어렵지만 차근히 내공을 쌓아나가면 결국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지요.
그래서 서독이 사파고 전진교가 정파이며 정파가 최고다,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김용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무엇이든 경지에 오르면 다 똑같다는, 다소 도가적인 사상이지요.
바로 이 부분이 어떤 길을 가야할지 헤메던 고등학생 시절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떤 길을 갈까, 어디가 편한 길이고 지름길일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어떤 길을 선택하건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3부작이 제 인생에 끼친 영향은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신조협려에서 서독과 북개의 설산 결투장면이 가장 결정적이었죠.
논어에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부란 거꾸로 흐르는 강에서 노를 젓는 것과 같아서, 노를 쉬면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내려가버린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국영수과 시험 공부가 아닙니다.
모든 학문, 무공, 인격수양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천하오절을 우리나라 학계로, 무공을 학문으로 생각해봅시다.
교수들 공부 안 하죠.
원래는 마음껏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교수가 되는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교수가 된 다음에는 대학원생들 사병처럼 부리면서 골프나 치러 다니는 교수가 더 많습니다.
다시 신조협려로 돌아가겠습니다.
중신통은 죽었고, 남제는 출가했으니 다른 종류의 공부를 시작한 셈이고, 북개는 좀 만만디인 경향이 있으나 동사와 서독은 평생에 걸쳐 정진을 멈추지 않습니다.
특히 서독의 집념이 대단하지요.
악역이니만큼 탐욕과 야망 때문에 그렇다고 읽힐 수도 있지만, 음미해보면 그 탐욕의 정체가 바로 더 높은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성장에 대한 탐욕이라니!)
그를 위해서 구음진경을 손에 넣으려 하는 것이고, 사조영웅전에서 금나라 왕실에 협력했던 것은 구음진경을 손에 넣기 위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구양봉은 한족도 아니고요.
북개와 서독은 원수나 다름없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인정하기도 하지요.
설산 결투에서 둘다 탈진해 쓰러진 상태에서 양과를 통해 초식으로만 대결하다가, 마지막에 서독이 생각해낸 초식을 듣고는 "서독이 해냈다!"고 외치며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을 떠납니다.
이보다 멋있는 죽음, 아니 인생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서독은 대단히 영리한 사람이지만 지나친 집착 탓에 황용에게 속아 주화입마에 빠져 광인이 되어 인생의 반을 낭비했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광기어린 집념으로 정진을 거듭하여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고 갔습니다.
사조영웅전 결말 부분 2차 화산논검에서 이미 최강의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그건 단지 주변의 누구누구보다 강하다는 상대적인 것이었지요.
저는 고등학생 시절 서독 구양봉의 인생과 설산 결투를 보며 인생관, 혹은 인생에 대한 미학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해석이 유일한 해석도 아닐 것이고, 김용의 의도와 정확히 부합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고, 이게 제 해석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으로서 사조영웅전 3부작은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좋게 바꾸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그러나 이 책이 저를 이끈 길이 어떤 길이건 간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믿음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이건 끝까지 가면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쓰다보니 길어졌군요.
장르소설 중 제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던 양대산맥, 은하영웅전설과 사조영웅전 3부작 같은 책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해봤습니다.
요즘 왠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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