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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이, <우주에서 왔다>

작성자
Lv.7 루드밀라
작성
11.01.12 11:23
조회
2,741

작가명 : 강한이

작품명 : 우주에서 왔다

출판사 :

序.

  약 150년 전 에머슨은 “인생은 하나의 실험이다”라는 철학적 명제를 남겼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실험’이란 하얀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 앉아 플라스크와 비커를 조작하는 식의 따분한 동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험은 살아가는 것, 즉 선험(先驗)과는 달리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사회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는 일련의 노정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을 하나의 세계라고 가정한다면 소설의 인물 또한 고유의 인생이 존재하며, 그 인생 또한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기 전 우연히 손이 간 「우주에서 왔다」를 읽게 된 것도 필자의 경험이자 실험이고,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필자의 경험이자 실험일 것이다. 이 작품 또한 장르문학에서 보기 힘든 대단한 실험정신을 지니고 있다. 단편소설의 거장 김동인이 아직 살아 있다면, “새로운 하므레뜨의 출현”이라는 말을 결코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本.

  「우주에서 왔다」를 관류하는 실험정신은 ‘부화(孵化)’의 과정과 유사하다. 알 속에서 자라는 동물들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까진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 오로지 컴컴한 세계일뿐이며, 단단하고 불투명한 껍질 밖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려주는 친구들도 없다. 결국 생사의 갈림길에서 동물이 선택하는 것은 ‘세계의 파괴’다. 알껍질로 상징되는 세계의 틀은 동물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의해 깨어지게 되고, 외부의 세계를 인식함과 동시에 재탄생을 맞이한다.

  허락된다면, 필자는 이러한 재탄생의 과정을 ‘통과의례’라고 부르고 싶다. 통과의례는 우리의 삶 모든 부분에서 고유의 의미를 지닌 채 인류의 역사와 함께 전승되어 오고 있다. 물론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신화학과 종교학의 전문서적을 정독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예를 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매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접촉시킨다. 삑- 소리가 나는 것으로 우리는 통과의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만약 교통카드에 잔액이 부족하거나 가지고 있는 현금이 없다면 통과의례는 실패로 끝나고 우리는 버스에서 하차해야 한다. (간혹, 자비로운 ‘신’들은 무임승차를 계시하기도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통과의례는 대부분 죽음의 이미지로부터 시작한다.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지원자는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을 태어나기를 갈망한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에게는 과거의 모습과 새로운 모습이 서로 중첩되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자아가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킨다. “나는 외계인이다”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는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외계인은 스스로 자신을 외계인이라 칭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타자가 발견되면 인간은 경계하며 저주하고, 대상에게 ‘악마’의 이미지를 투영시킨다.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작품에서의 ‘외계인’이라는 칭호다. 요컨대 외계인은 ‘만들어진 이미지’인 것이다.

  작품이 전개되면서 그 분열의 양상은 ‘천한 지구인’과 ‘우월한 외계인’을 특정하고, 종국에는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며 지구인을 매도하는 장면을 통해 독자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자아와 타자와의 분열만을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자아와 타자와의 화해와 융합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그 핵심엔 다올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녀는 “굳이 지구인이다 외계인이다 나눌 필요가 있나?”고 묻기도 하고, 철수의 배변조종능력을 관찰자편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그 능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올의 말대로 관찰자편향인지는 작품만 놓고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능력과 관찰자편향이라는 해석이 서로 융합되어 ‘SF작가인 지구인’으로 거듭나는 변증법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리켜주는 나침반을 손에 넣었다. 그 나침반의 북쪽엔 ‘우주’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철수의 궁극적인 목표, 즉 통과의례는 지구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힘겨워질 때마다, 괴로울 때마다 그는 “우주에서 왔다!”고 외치며 웃기를 소망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외계인이 아니다. 물론 노력하는 것은 철수뿐만이 아니다. 대학생인 그의 누나는 수면을 2시간 줄이는 대신 과외를 또 하나 늘렸고, 해고당한 아버지는 가게를 차렸다. 복학생은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허세와 가식으로 가득 찬 쓸모없는 행동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가끔 게임으로 한눈을 팔긴 하지만 그는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도 곧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롭게 돋아난 폐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킬 수 있을 것이다.

結.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대변’은 단순한 노폐물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자아의 치부다. 살면서 우리는 상대방을 얼마나 헐뜯고 매도하며 약점을 공격하고 있을까. 대변을 유도하는 철수의 능력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품속에 간직한 날카로운 비수일지 모른다.

  그 비수에 손을 베었을 때 우리는 철없음을 느낀다. 돌아오는 것은 고통이다. 그래서 성장통은 아프다. 철수와 다올은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팠고, 그의 누나와 아버지, 복학생도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했다. 아팠던 기억은 고통이 아니라, 마치 항성처럼 그들의 추억 속에서 눈부신 광채를 발하고 있다. 어느 여름날 철수와 다올이 다정히 손을 잡고 목격했던 플라네타리움의 별무리처럼.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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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정규연재란에서 연재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간만에 훈훈했어요.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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