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정률
작품명 : 트루베니아 연대기
출판사 : 드림북스
김정률. 흔히 양판소 본좌라 불리는 작가로 점차 어려워져 가는 이 한국 판타지 시장에서(시장 규모는 오히려 늘었다.) 나름대로의 네임 벨류를 구축한 작가다. 양판소 작가로서. 그렇다. 김정률이란 네임벨류는 '양판소를 잘 쓰는 작가'다. 흔히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는 폄하 가득한 호칭 속에는 스토리가 비슷비슷하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긍정적인 의미를 찾자면 그 나름대로 쉽게 읽히는 작품이라는 뜻도 있다. 현재 판타지 시장의 주요 독자층 취향을 고려하자면 훌륭한 대중성을 갖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글은 엄연히 양판소 독자로서 양판소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썼음을 밝혀두는 바다.
여기서 김정률이란 작가와, 또 그의 전작들에서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 트루베니아라는 지명을 기억하는 우리는 이 책을 펼쳐들면서 무슨 기대를 하게 될까? 김정률의 전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모 작가의 진중한 주제 의식이나 전 모 작가의 깊이 있는 내면 묘사는 별로 기대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김정률 스토리의 진정한 힘은 주인공의 활극이다.
그러한 힘을 이 책은 갖추고 있다. 김정률 스토리는 앞서 말했듯이 양산형인데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얼개가 비슷한 까닭에 이렇게 불린다. 비참한 주인공의 처지 -> 고난 -> 성장 -> 위기 -> 극복 -> 활약 이런 공식을 충실히 지켜나간다. 이러한 스토리는 뻔하다는 말도 부족할 만큼 요즘 쏟아지는 많은 양산형 작품들에서 사용된다. 김정률 스토리의 진정한 장점은 바로 이런 대목에서 빛을 발하는데 그 비슷비슷한 양산형 중에서도 김정률 작가의 작품들은 발군의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양산형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다. 양산형은 항상 고정된 수요가 있다. 주로 판타지를 처음 읽게 되는 독자들. 단순한 걸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양산형은 매력적이다. 김정률 스토리는 그 와중에도 차별화된 재미를 보여준다. 김정률은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게 먹혔끼 때문이다.
그 스타일 참 사람따라 여러 분석이 나오겠다만 나는 철저하게 양산형 독자층의 입장에서 바라봤다. 김정률만의 스타일. 그건 전개의 완숙함이다. 혹자는 양산형 독자가 하렘이나 주인공이 무적이 되어 말도 안되는 전투를 이긴다던가 하는 부분을 좋아한다는데 그건 한두번 낚이는 떡밥이다. 효과가 오래 가질 못한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스토리의 전개다. 단순하고 재밌는 전개야 말로 양산형 독자로 하여금 만족스런 미소를 짓게 한다. 물론 이 단순한 전개라는 건 여러분의 생각보다 별로 단순하지 않다. 까 보면 주인공과 히로인의 로맨스도 있으며, 가끔씩 마주치는 조연들과의 마찰도 있다. 김정률은 이런 부분을 원활하게 양산형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다. 마치 숟가락으로 떠서 밥을 먹여주는 수준이다. 다크메이지, 하프 블러드, 트루베니아 연대기 등 그의 모든 작품은 그런 자잘한 요소들이 조금씩 언급될 뿐 결코 권당 주요 스토리를 능가하는 비중으로 나와서 독자의 속을 터지게 하지 않는다. 이건 아주 중요한 미덕이다. 필자는 이걸 '양판소의 미덕'이라 부르고 싶다. 요즈음의 양판소들은 이걸 제대로 구현하지 못 한다. 트루베니아 연대기에서 독자가 기대하는 스토리는? 주인공의 출세와 모험이다. 애초에 개그 소설이나 연애 소설 컨셉으로 잡아놓고 '나 원래 이런 놈이오'라면 그런대로 봐준다. 하지만 '주인공의 모험이 주된 컨셉입니다.'라고 해놓고 왜 시시콜콜한 연애와 엉뚱한 엑스트라들의 음모가 권당 절반을 차지하는가? 씨x
김정률은 양판소 독자들이 기대하는 요소가 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그는 훌륭한 작가다. 헌데 요즘 그의 작품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판소 시장의 풍운을 그마저 감당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 어쩌면, 양판소라는 존재 자체가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든 까닭인지도.
P.S/ 왜 묘사와 문장 구성력을 언급 안 하냐고? 양판소 독자가 그런 거 따지는 거 봤나. 그저 술술 읽히면 끝이지. 그런 점에서 보면 문장이나 묘사도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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