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률.
한때 최고 인기작가로 불렸던 사람입니다.
이름 석자만으로 사람들이 책을 사거나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봤었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들어 이름값에 못한다는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김정률인데 하면서 가장 최근작인 마왕 데이몬을 빌려왔습니다. 전작인 블레이드 헌터를 재밌게 읽었거든요. 이름값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블레이드 헌터만 보자면 여전히 이름값 정도는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네요.
마왕 데이몬은 트루베니아 연대기와 배경과 인물이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김정률 작가님 특유의 진행이 그대로 나타나죠.
아주 강력한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게 닥친 곤란한 상황들. 물론 주인공은 워낙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까진 가지 않습니다. 다만 귀찮거나 고생이 좀 될 뿐입니다. 여튼 이런 저런 사건들을 주인공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호쾌하게 풀어가는게 김정률 작가님의 특유의 소설 패턴입니다.
굉장히 진부하고 뻔한 설정이지만 글을 이끌어가는 필력이 좋기 때문에 독자들을 글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들죠.
마왕 데이몬도 초반엔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초반부가 지나니 슬슬 이야기가 너무 뻔해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참고로 전 김정률 작가님의 소설을 즐겨보는 이유로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에 거리낌없이 한번에 쭉 읽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꼽습니다. 설정이 좀 엉성하더라도 글을 이끌어가는 전개가 빠르고 경쾌하면서 흡입력이 있거든요.
하지만 마왕 데이몬은 초반부만 그랬을 뿐입니다.
요즘 나오는 진부하고 뻔한 현대물들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필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는지 말도 안되는 전개라고 생각하는데도 꾸역꾸역 이야기를 전개해 갑니다.
초능력자가 나타나고, 뱀파이어가 나타나고, 선계에서 신선과도 싸웁니다.
보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데도 용케 이야기를 어떻게든 끌고 나가는 능력만큼은 대단하다. 하지만 재미는 없다.“ 였습니다.
뭐랄까요...남들이 맛있다고 해서 간 비싼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을 시켰는데 먹어보니 처음에만 그럴 듯 하고 몇 수저 뜨니까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먹는다는 그런 느낌?
블레이드 헌터 때처럼 조금 이른감이 있더라도 깔끔하게 스토리를 정리해서 원래 기획했던 권수에서 완결을 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씁쓸하네요. 제가 이름만 듣고 책을 선택하는 정말 몇 안되는 작가 중 한명이 이렇게 또 제 마음속에서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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