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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ther
작성
07.04.05 01:17
조회
1,775

작가명 : 이탈로 칼비노

작품명 : 반쪼가리 자작

출판사 : 믿음사

[시트를 잡아당기자 무시무시하게 부서진 자작의 몸이 보였다. 한쪽 팔과 다리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쪽 팔과 다리 사이에 있어야 할 가슴과 복부가 모두 달아나고 없었다. 몸 속 깊숙이 파고든 포격에 의해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머리 쪽에는 한쪽 귀, 한쪽 뺨, 반쪼가리 코, 입 반쪽, 이마 반쪽 그리고 턱이 반쪽만 남아 있었다. 몸의 다른 반쪽은 죽처럼 흐믈흐믈해졌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몸의 반쪽, 즉 오른쪽만이 남아 있었고 남아 있는 부분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몸이 두 쪽으로 갈라져 왼쪽이 없어져 버릴 정도로 그렇게 큰 부상을 당했는데도 오른쪽은 찰과상 하나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의사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우, 신기한 일이야.”] 반쪼가리 자작 中

이등분된 선과 악. 반쪼가리 자작.

우리 선조들 3부작 중 그 첫 번째인 반쪼가리 자작은 네오리얼리즘이면서도, 탈 네오리얼리즘의 첫 신호탄과 같을 것이다.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의 위치로 그를 비교하자면, 보르헤스나 마르케스가 깊은 구덩이 그리고 칼비노는 지상위로 솟아올라 태양을 받고 있는 글과도 같다. 그의 글은 밝은 형식으로 그려져 있으며, 환상과 우화 그리고 사랑이 덧 씌워져 있다.

소설은 아직 선과 악이 구분이 희박한 자작의 어린 사촌의 시야로 그려져 있다. 첫 출전한 전쟁에서, 적(터키군)의 대포를 맞아. 반쪽이 된 자작은 오른쪽만 남아 부상당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하지만 자작의 오른쪽은 악으로 가득 차 온갖 폭정과 악행을 일삼게 되고, 나머지 반쪽인 선한 메다르도 자작은 몰래 마을로 돌아와 선행을 하기 시작한다. 칼비노의 후기에도 밝혔듯이 메다르도 자작은 불완전한 도덕을 가진 현대인을 그리고 있다. 아니 메다르도 자작만이 아니고 글에서 나타난 모든 이들이 불완전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악한 오른쪽 메다르도 자작에 의해 완벽한 사형대를 만드는 목수는 자신의 행동에 고통을 받고, 문둥병자들은 방탕해 있으며, 닥터 트렐로니는 병자를 고치는것에 관심은 없고 도깨비 불을 찾고 있다. 또, 위그노는 종교의 형태만을 뒤쫓고 있으며, 자신의 아이들의 방탕과 악에 빠져 있는 것을 눈치 채지도 못하고 있다.

시종일관 글은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메다르도 자작의 오른쪽은 악행과, 왼쪽은 선행을 그리고 있지만, 실상 어느 쪽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악과 선의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그의 분별력 없는 행동 때문이다. 결국 메다르도 자작 ‘들’이 사랑하는 양치기 소녀와에 의해 두 명의 자작은 결투를 하게 되고, 하나의 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둘이 합쳐져 완벽하고 현명한 메다르도 자작이 되었다고 해서,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모든 곳의 문제와 근심과 고통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글에도 쓰여 있듯이 세상은 너무도 복잡해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절대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완벽한 인간, 혹은 완전한 인간은 어차피 그 형태적 상징만 있을 뿐, 인간 세상이란 불완전한 형태일 뿐이다. 아니 인간자체도 어차피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 균형 잡히지 않고 불완전한 형태야 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인간의 도덕과 이성을 제어 할 수 있는 족쇄이기 때문이다.

믿음사에서 칼비노 선집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선조들 3부작’ (반쪼가리 자작, 나무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 출판되었으나 현재 ‘나무위의 남작’을 제외한 두 개의 소설은 절판이다. 혹자가 말하길 그것은(현대 문학의 3대 거장 중 다른 두 명인 보르헤스, 마르케스에 비해 그의 소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한국인이 열광하는 습성(권위 있는 상, 프로모션 전략, 혹은 글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진중함)중 어느 것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차피 글의 가치가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칼비노의 소설들은 너무도 소리 없이 나왔고, 또 소리 없이 묻혔다. 그의 글은 무겁지도 않으며, 사랑과 따뜻함, 상징성과 재치로 뭉쳐져 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헌 책방에서 그의 소설을 보게 된다면 반드시 사서 읽어 보도록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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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감상은 우리 선조들 3부작 중 두 번째인 나무위의 남작, 아니면 지금 읽고 있는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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