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참 딱부러지게 답하기가 곤란하다.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사실성을 부여하고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 모른다. 그런다고 무협의 모든 면이 사실성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공만 빼면 나머지는 모두 사실성이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집단과의 관계, 집단과 집단과의 관계, 사랑, 우정, 배신, 성취, 좌절, 죽음...다른 소설과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무협의 리얼리티를 논할때는 두 가지를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무공인가 아니면 스토리인가... 그런데 가끔 이 둘을 혼동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이건 특히 중국무협을 애호하는 사람들 입에서 곧잘 나오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천도룡기의 장무기나 한칼로 동정호를 베는 한국무협의 주인공이나 똑 같다. 어차피 현세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공이란걸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칼에서 일촌의 검기를 뽑는거나 십장의 검강지기를 뽑는게 차이가 있다는 분 나와보시라.
그러나 문제는 높은 수준의 무공이 등장한다면 그 무공에 걸맞는 스토리전개도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무공과 스토리전개가 전혀 따로따로 논다면 독자로 하여금 '사실성이 없다'는 느낌을 들게 할 것이다. 또 하나는 무공은 얼마든지 높아도 상관없지만 스토리전개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세계관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시장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주인공 장총찬의 활약은 정말 통쾌하고 가슴졸이게 한다. 그러나 장총찬의 무공은 한국무협에서라면 삼류무사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가슴이 통쾌한 것은 장총찬의 무공을 제외한 나머지는 현실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며, 그 무술이 스토리와 잘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협의 모든 스토리가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해야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협이 너무 무미건조해진다. 기금괴수가 등장하고 죽은 사람의 혼령을 불러오면 어떤가. 그들이 내용전개와 잘 조화를 이룬다면 외려 더욱 신비함과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대표작--금강님의 '해천풍운월'
두서 없이 이야기가 길어졌다. 결국 무협에서 리얼리티란 '무공과 내용의 조화'를 뚯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사족 : 작가들이 리얼리티를 살리지 못하는 가장 흔한 경우는 작품의 주인공의 두뇌를 작가 자신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천재이고 치밀한데 읽는 사람으로하여금 곧곧에서 헛점을 보이게 한다면 독자는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이러면 안된다. 이런 불일치가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이 설봉의 사신이다. 참고로 나는 설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는 정말 재주있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 빠지지 않고 다 읽었다. 그런데 사신은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곳곳에 파탄이 드러나고 있다. 안타깝다. 무공에만 사실성을 강조하다보니 스토리는 어거지로 이끌고 간다는 느낌이다. 마치 이미 끝나야할 드라마가 질질 끄는 것을 연상케한다. 이건 설봉의 사실뿐 아니라 요즘 훈련되지 않는 신인작가들의 대표적인 결함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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