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분의 이름을 전부터 들은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이 분 작품을 이번에 처음 봤네요. 근데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개연성은 엿바꿔 먹은 이런 전개라니...
일단 제목이 낙향무사죠. 모든 걸 다 버리고 고향에 돌아왔다는 겁니다. 실제로 고향에 와서도 무림에 대해 누가 물으면 별볼일 없는 일 하다 왔다고, 무림 진짜 안좋은 곳이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 당연히 뭔가 낙향한 사람다운 그런 전개가 나와야겠지요.
그런데 고향에서 조용히 살겠다는 놈이 뭔가 거슬린다 싶으면 바로 들이받아버립니다. 정체를 감추고 은밀히 움직인다? 그런 거 없습니다. 그 전개가 어찌나 빠른지 고향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나의 성을 대표하는 고수를 죽이면서 문파를 세개 멸문시키고, 아예 자기 문파까지 떡하니 세워버립니다. 아주 당당하게 자기 정체 다 드러내면서 말이죠.
그래놓고는 한 세네줄 정도로 원래 목표는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하고 혼자 생각하는 걸로 떼워버립니다. 위의 과정에서 은거한 사람답게 갈등을 피하고 조용히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 같은 건 쥐뿔만큼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용히 하려 했는데도 일이 커졌다가 아니라 그냥 마구 일을 키운다는 겁니다. 낙향무사라는 제목은 완전 낚시였죠.
주인공 진운은 낙향하기 전에 험한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적이 많고 그 적들이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강한 세력들 뿐입니다.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합니다. 또 고작 무당파(?)와 싸워도 자기 가족을 못지킨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위에 나온 적들은 훨씬 위험하죠. 그러면 가족을 위해서라도 어떡해서든 눈에 띄지 않아야 할겁니다. 물론 적들이 대단하니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노력은 해야겠지요.
근데 그런 게 없습니다. 마치 사방팔방 광고라도 하듯이 온갖 일을 벌리고 다닙니다. 비밀? 그런 건 그냥 엿바꿔 먹었죠. 정말 거침없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설쳤으면 처음 만난 사람이 진운이란 이름만 듣고도 새로 나타난 신비고수 하고 놀랍니다.
그렇게 설치고 다닌 덕분인지 바로 적들이 쳐들어와 가족들이 몰살당할 뻔한 위기를 겪습니다. 뭔가 피할려고 노력을 했는데도 적이 알아서 찾아오는 그런 경우라면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파를 세우고 개파대전에서 무공을 과시하고 무당파나 제갈세가 일에 끼어드는 등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맘껏 과시합니다. 이게 정말 위험한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의 행보일까요?
주인공은 개파대전에서 사파 문주의 아들이 주인공의 제자를 괴롭히자 단숨에 팔을 잘라 버립니다. 그 사파 문주는 무당파 장문인과 맞먹는 고수고 그 사파는 무당파조차 위협하는 강한 문파인데도 주인공은 거침없이 문주 아들 팔을 자른 겁니다. 여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 다음에 무당파 제자가 주인공과 위의 사파를 충돌시키려는 계략을 실행하다 주인공에게 걸립니다. 근데 그들에게는 어떤 벌도 안내립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무당파는 명문이고 걔네랑 싸우면 가족을 지킬 수 없어서랍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당파 제자는 못 건드리는데 무당파조차 함부로 못하는 사파 문주의 아들 팔은 자른다? 그냥 벌주기 싫어서 혹은 귀찮아서 벌안줬다 같은 게 아니라 명문을 감당할 수 없어서 벌 안줬다고 나오니 앞에서의 과감한 행보가 이해할 수 없게 되버립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급하게 무당파에 갔는데 그러다보니 거지꼴이 됩니다. 그런 상태로 장문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무당파 문지기들이 문전박대를 합니다. 그랬더니 문지기들을 쥐어패버립니다.
거지꼴을 하고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문인을 만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것도 자기가 누구고 왜 왔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은채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장문인과 만나게 해줄 문지기가 세상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상대를 쥐어패버린 겁니다. 그것도 문파 정문에서 말입니다.
자기 문파를 위기에 빠트릴 계략을 꾸민 사람조차 무당파라고 못건드린다고 말한 사람이 무당파 정문에서 무당파 사람을 두들겨 패버린다는 게 납득이 가십니까?
주인공이 물건을 쓸 수 없게 금제해서 말그대로 고자가 된 사람을 제자로 받아 무공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다 그 제자가 도망을 가니 주인공 밑에서 정보원 노릇을 하던 여자가 찾아다닙니다. 근데 사람들에게 물을 때 특징으로 고자 얘기를 하고다녀서 온 동네에 고자라고 소문이 쫙 퍼집니다.
웃기긴 했습니다. 그러나 개연성은 완전히 갖다 버린 거였죠. 세상에 자기가 고자라고 광고하고 다닐 남자가 있을까요? 그러면 고자라는게 겉으로 보기만 해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두드러지는 특징일까요? 사람을 찾을 때 고자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찾으러 다니는 여자가 좀 바보거나 한 설정이라면 괜찮았겠죠. 근데 그녀는 정이 많긴 해도 능력은 뛰어난 베테랑 정보원으로 나옵니다. 그런 사람이 왜 무의미한 고자 얘기를 하고 다닐까요? 무슨 놀림감으로 만들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처럼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개연성에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낙향했다는데 전혀 낙향한 사람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 가족이 소중하다면서 적들보고 찾아오라고 광고라도 하듯이 설치고 다니는 등 앞뒤가 맞지를 않습니다.
캐릭터가 똑똑하면 똑똑한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대로 자연스럽게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낙향무사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개연성의 붕괴가 적잖게 나타납니다.
추측을 해보자면 작가분께서 사건을 만들고 재미를 더하기 위해 개연성 따위 신경쓰지 않고 막 쓴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앞뒤가 안맞을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이 책은 사실 재미는 있습니다. 필력도 준수하고 유머러스함도 잘 살렸죠. 개연성 없는 전개가 계속되는 부분만 아니었다면 주변에도 권할만한 책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아예 수준이 낮으면 차라리 실망이나 아쉬움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작가에게 역량이 없다면 차라리 기대도 안했을 것인데 충분한 역량을 갖춘 분인게 뻔히 보이니 아쉬움만 더합니다.
Commen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