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도 한 번 얘기했었지만, 도서관에서 이문열의 소설을 빌리려고 하였을 때 나는 여자 사서가 나를 향해 힐끗 차가운 눈길을 던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당신, 이제 보니 이문열을 읽는군. 고작 그것이 당신 수준이군.' 하고 말하고 싶다는 듯이....
내 그런 느낌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문열이란 작가에 대해 일종의 정신적 사형선고를 내려 버렸다는 것이다.
상상해 본다. 내가 만약 이문열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이면서 온 세상으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을 받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
가슴이 서늘해진다.
한 작가가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다른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같은 일을 당하는 것보다 더욱 본질적인 차원에서 그렇다.
작가가 그 정신세계를 세상 앞에 펼쳐 보이고 평가를 받는 직업임을 생각할 때, 지금 이문열에 대한 우리 시대의 단죄는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은 그의 공적 활동에 대해 문책하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그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누가 뭐라 하더라도 그는 우리 시대의 정신적 거인이다.
비록 문학과 상관없고 정치와도 상관없는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해 결국은 내가 싸워야 할 적의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고 지금도 간간이 그의 소설을 읽곤 한다.
눈덮힌 전방 산골짜기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졸병 시절에 읽었던 '사람의 아들'과 '들소'의 감동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이문열만큼 화려한 출발을 하였던 작가가 우리 문단에 또 있었던가?
단지 첫 작품이 히트를 친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확고한 작품 세계를 갖추고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출발하였던 작가가 이문열 말고 또 누가 있던가?
대한민국 문화계라는 천체에서 가장 찬란한 광채를 발하던 그가 어쩌다가 오늘날 시대의 적이 되고 말았을까?
이에 대한 답의 일부는 널리 알려진 그의 가족사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월북 인사를 부친으로 둔 요주의 인물로 정보기관의 정기적인 동향 체크를 받아야만 했던 고달픈 삶의 편린을 그의 소설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으로부터 끊임없이 불신에 찬, 여차하면 삶의 전부를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놓는 흉폭한 폭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적대적인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고난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정부에서 나온 감시원에게 자신의 '결백'을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던 습성이 그의 정신에 커다란 강박관념으로 자리잡았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문열의 보수성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자신이 결코 이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들로 얼룩진 세월이 그의 정신이 발동하는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기존의 질서에 대한 긍정, 여기에 한때 그의 집안도 남들 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살았던 듯한 과거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파이톤 콤플렉스라 이름 붙여도 될 법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부친에 대한 애증이 더해져 그의 유명한 의고주의(擬古主義)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아무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대와의 불화'로운 관계로 접어든 이후로 이문열은 도무지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작가를 향해 쏟아지는 독자들의 불신과 적대가 그의 가장 은밀한 정신적 영역까지 해치고 만 것이다.
작가는 그 누구의 영향도 받는 자유로운 내면적 공간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바로 그 영역을 이문열은 박탈당하고 말았다.
그의 사고, 그의 견해, 그의 존재양식을 독자들이 부정한다.
그리하여 결국 아직 창작력이 왕성한 시기에 있는 한 작가가 붓을 꺾어야 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한 책임의 얼마만큼이 이문열의 몫인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이런 참혹한 상황에서도 이문열이 보여 준 투사적 자세는 감탄할 만하였다.
이문열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리고 내 소신과 관련된 어떤 이유로 인해 이문열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내게 있어서도 그의 그런 모습은 얼마간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사고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기품 어린 모습에는 난 존경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문열이 그렇게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가 이제 생산능력을 잃고 말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문단의 큰 손실이다.
이문열 같은 수구 반동 작가의 작가적 생명이 끝났기로서니 한국 문학에 무슨 대단한 손실이 있겠느냐 하는 반박의 소리가 당연히 나올 테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문열을 잃은 것은 우리 문학의 손실이다. 서정주의 친일 경력에도 불구하고 서정주의 시를 잃는다면 우리 문학의 손실이 되듯이.
이쯤에서, 작가의 도덕적 책임이라든가 사회 전체에 유해한 삶(이문열의 삶이 그렇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이 어떤 이득 따위를 추구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도덕적 신념에 투철하게 행동하였을 경우, 그 삶이 사회에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평가하는 작업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을 산 작가의 작품 세계 역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느냐 하는 질문이 떠오르겠지만, 이건 너무 거대한 주제이니 나로서는 건드리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아무튼 당신들이 아무리 이문열을 욕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분명하게 말하겠다.
'사람의 아들'은, '들소'는, '그해 겨울'은 몇십 년에 걸친 내 독서 경험 중에서도 손꼽히는 가슴 벅찬 순간을 안겨 주었던 작품에 속한다고. 그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몇 안 되는 진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내 무능을 핑계로 깊이 파고들고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손대지 않고 너무 안이한 결론을 내린 듯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아무튼 이 글은 이문열이 내게 주었던 감동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쓴 글이다.
한 작가가 내게 순수한 감동의 순간을 선사하였다면 나는 그가 궁지에 몰렸을 경우에 그를 변호할 의무가 생기는 거니까.
이문열, 그는 시대의 희생물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이문열 급의 거물이 못 되는 우리 보통 사람들ㅡ오늘도 넷상에서 증오를 발산하며 누군가를 성토하고 매도하고, 혹자는 빨갱이라고, 혹자는 수구꼴통라고, 혹은 노빠니 그네빠니 시민빠니 하는 낙인을 서로에게 찍어 가며 모니터 앞에서 충혈한 눈으로 댓글을 올리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 모두가 시대의 희생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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