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건달의 제국
작가 : 유헌화
출판사 :
놀라움. 의외성. 기분 좋은 충격. 글을 읽으며 감탄이 멈추지 않았다. 전작 던전 디펜스는 이러지 않았다. 감출 수 없는 재능이 빛났고 많은 것이 모자랐던 아마추어의 글. 그래서 기대도 없었고 실망도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은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1,2챕터에서 느꼈던 어딘지 모를 미진함은 3챕터 우리가게 에이스에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자기가 여태 보여줬던 군더더기들을 버리고 다듬어서 문장을 예리하게 벼려낸다. 꽉찬 디테일은 짜임새있게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짧게 쳐내는 대사는 담백하고 속도감 있다. 등장인물들은 현실감으로 가득하고 스토리는 잘만든 영화와 같다. 날카롭게 갈린 칼이 목덜미를 지나가는 듯한 서늘함. 가슴이 옥죄어오는 긴장감. 흥미. 기대. 이보다 느와르스러움을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보면서 연신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오우거의 캐러반 습격부터 순우경과의 과거까지. 이 글은 정말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렇게 좋은 글을 보노라면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진다. 고맙다고 계속 이런 글을 부탁드린다고.
그리고 이 글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나
건달의 제국은 논란거리가 참 많다. 우선 주인공은 조폭이다. 말이 헌터지 그냥 조폭이다. 나오는 소재들도 참 민감하다. 밀주 마약 매춘 장기밀매. 더군다나 도중에 독도-일본해 병기가 작 중 인물들 간의 대사가 아닌 지문에 표기되어서 거센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 중 소재들은 세계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임창정 주연의 공모자들이나 원빈 주연의 아저씨에서 장기밀매는 작품의 근간이며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것들을 단지 추악하고 어두운 요소이기 때문에 비판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조폭을 옹호하려는 목적의 글이 아님에도 단지 조폭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하다면 그것은 얼마나 편협한 태도인가. 독도-일본해 표기 또한 그렇다. 대사가 아닌 지문에 표기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그것은 친일파여서가 아니라 작 중 인물들의 국가의식을 드러내려는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을때 그에 따른 질타와 사과, 이해로서 매듭 지어야하지 않는가.
이러한 것들은 정말로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이 글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가? 이 글이 지향하는 방향은 세기말 느와르였고 그것을 정말 훌륭하게 구현해냈다. 그런데 다섯번째 챕터 일일호화주의부터 그것은 마치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등장인물들은 갑자기 혓바닥이 길어진다. 대사는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며 감정표현은 미친년 널뛰듯이 펄쩍 펄쩍 뛰어다닌다. 중세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고루한 말투나 재패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과장된 말투가 나온다. 웃기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기괴한 유머들이 판을 친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부터 말투까지 작위적으로 변한다. 비장함은, 느와르는, 잘짜여진 글 모두가 산산조각나 버린다.
이 외에도 문제점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도대체가 설정 문제는 한둘이 아니어서 일일히 말하는게 우스운 수준이다. 제일 기가 막힌 것은 바로 헌터에 대한 것이다. 이건 단순히 설정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글에 대한 자세의 문제다. 이 소설은 태생부터 딜레마에 처해있었다. 헌터들을 능력자로 표현해야하는 것인가. 능력자로 설정한다면 차등적인 능력을 가진 능력자 간의 배틀물이 되어 느와르를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능력자로 설정하지 않으면 군대는 어떻게 해야하나. 대다수의 헌터물에서 괜히 쉴드 개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글의 뿌리부터 설정이 어긋난 것이다. 이것은 대세인 헌팅 요소를 집어넣어 대중성을 확보하고도 싶고 자기가 쓰고 싶은 느와르 색체를 드러내고도 싶다는 욕심 때문에 빚어진 모순이었다.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답을 내려야했다. 하지만 그의 답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몰라 나중에 고민하자
독자들은 꾸준히 궁금해했다. 헌터들은 능력자인가요. 아닌가요. 아니면 그냥 조폭 아닌가. 능력자면 이능력자인가요 초인인가요. 이능력자건 초인이든 물리력이 통하면 군대가 문제니까 쉴드 같은건 존재하나요. 대답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냥 대충 연출로 때우는 것이다.
주인공은 용병단 깃발을 휘두르고 해괴한 말투로 용병단을 독려하며 용병단원들은 총과 대포를 쏟아 붓는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밑도 끝도 없이 길다. 묘사도 밑도 끝도 없다. 입으로 싸우는지 뭘로 싸우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인공은 S급 몬스터의 옆구리를 ‘용변단 깃발의 창대’로 푹 찌른다. 그 급박한 와중에 어떻게 된것이냐 괴물! 덩치는 큰 주제에 느려터지지 않았는가! 느리다! 겨우 그 정도로는 한참 느리다! 그걸로는 나를 무너트릴 수 없다! 허리가 비었다! 뒷발이 비었다! 머리도, 꼬리도, 모조리 다 비었다! 한심하구나! 차라리 계속 거머리로 있지 그랬느냐! 단지 이 순간만을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다! 너는 결정적으로 가볍다 축생! 죽어라! 무릎을 꿇어라! 우리는 네놈과 격이 다르다! 이런 대사들을 외친다. 진짜로. 이건 어떤 종류의 정신공격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연출로 어떻게든 가려보려고 했지만 결국 아몰랑이다. 아몰랑 일단 쓰고 보자. 아몰랑 일단 유료화 하고 생각하자. 아몰랑 대충 넘어가자.
놀랍게도 유헌화는 이 와중에 표절까지 했다. 챕터9 쓰레기통에 피어난 장미꽃 1편에 있는 평양 용병단 회동은 블랙라군 2권 144페이지와 7권 130페이지에 있는 마피아들의 회동 내용을 짬뽕해서 표절한 것이다.
건달의 제국의 평양과 블랙 라군의 로아나 프라다는 동일하게 범죄조직들이 다스리는 도시다. 두 도시는 동일하게 범죄조직 간의 협의체가 다스린다. 두 범죄조직 협의체는 동일하게 외부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회의를 갖는다. 두 모임에서 동일하게 범죄조직 간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여기서는 문언적 유사성이 나타난다.
마피아끼리 회동해서 왜놈들 내장 냄새가 얼마나 역겨운지 알고 싶지 않아. 어차피 빌어처먹을 구역질이나 유발하겠지(건달의 제국) 이태리인의 창자란 돼지 같은 냄새가 난다던데. 정말 그래 베로키오?(블랙 라군)
또한 동일하게 신경질이 벌어지는 도중 좌장에 해당하는 인물이 각 도시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며 외부위협 세력의 목적에 대한 판단을 한다.
건달의 제국
ㅡ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멸망하고 수십 년, 숭배할 대상을 잃어 파탄이 난 공화국 인민들과 만주에서 몬스터에 떠밀려 피난을 온 조선족. 중국인. 러시아인이 반도의 북방에서 혼란을 연출했다. 이에 대해서 반도의 중앙정부가 내린 결단은 간단하게도 ‘포기와 방치’였다. 우리는 만주의 위협을 막아주는 대가로 거의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후략)
블랙라군
다 썩어가던 일개 항구마을이... 악덕의 도시로 변한지 35년. 이 거친 도시가 CNN의 이브닝 뉴스에 등장해 아낙네들의 저녁식사 화제가 되는 걸 이제까지 피할 수 있었던 건... 이제까지 이곳에 모여든 모든 자들의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호이익을 위해 우리들의 자극적인 '직업'이 세간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또는 삐딱한 자들의 안식을 위해 우리가 법률을 만들고 우리야말로 그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장소...(후략)
실제 글과 만화 내용을 보면 명확해진다. 유헌화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가 건달의 제국에 따온 상황, 분위기, 연출이 거기에 있다. 상황 전체를 따온 다음 입맛대로 적당히 손질하고 장면과 연출, 떠오르게 하고 싶은 이미지를 베껴내는 솜씨가 아주 탁월하다.
이것뿐아니다. 애초 기획의도 중 하나는 회귀 전 알고 있던 인재들을 모아서 복수를 위해 세력을 일구는 것이었을터다. 세력구도나 등장인물 특성을 삼국지에서 많이 가져온다. 고민해서 만들어내는 것보다 삼국지에서 따오는게 편하니까 그랬겠지. 우유부단한 유운표(유표) 무력만 앞서는 이시영(여포) 대의명분을 따르는 유현도(유비) 그 옆에 딸린 장나래(장비) 동태상(동탁) 순우경(순욱) 등등. 이 초기 기획은 마찬가지로 자기 편하려고 쓰레기 통에 처박힌다. 그런데 이 중 순우경의 꽃남방 취향은 웹툰 삼국전투기의 순욱 케릭터가 입는 꽃남방과 빼다 박았다. 꽃남방을 입는 건달이라서가 아니라 그 이름이 순욱을 모티브로한 순우경이고 삼국전투기의 순욱이 꽃남방을 입었다는 것이 문제다. 블랙라군의 경우 장면을 따내서 베끼는거라면 이번에는 케릭터 특징을 따내서 베낀 것이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얼마나 훔쳐다 표절을 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도대체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있기는 한가?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그 권리를 행사하며 돈을 버는 양반이 다른 사람의 권리는 개똥만도 못하게 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짐작도 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진짜 놀라울 따름이다. 전작에서는 양심 때문에 그 지랄 발광을 벌이다가 오대양 육서주를 건너 히말라야 찍고 안드로메다까지 글을 날려버리더니 정작 본인은 양심이 없네. 농담이 아니라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런 유머 감각이 있었으면 좀 글에서나 제대로 발휘해보지.
내가 감탄하고 칭찬하고 좋아하고 손꼽아 기대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배신감이 되어서 돌아온다. 얼마나 쉬웠을까. 대충 쓰고 대충 생각하고 대충 표절해다가 쓰면 다들 천재적이라며 치켜세우고 대단한 필력이다 정말 글 잘쓴다며 칭찬하고 떠받들었으니. 얼마나 우스워보였을까. 나는 얼마나 우스운 사람이었나.
후기를 보면서 이야기가 모두 끝났으니 다소 상업적인 불리함이 있더라도 여기서 마무리 하겠다, 독자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보며 구역질이 나왔다. 아니지 글을 버린거지. 원래 못다한 이야기 따위도 없던 거지. 풀어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에도 애초에 생각 없이 쓴 글이라서 설정의 구멍이 감당하지 못할만큼 커져서. 혹은 쓰기가 싫어서. 애초부터 유료연재로 돌리면 안되는 함량 미달의 글을 가지고 유료화 한 이후에는 책임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글을 버려버리고서 끝까지 이런저런 말들로 포장해내는 그 모습이 정말 추악하다.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언젠가 못다한 이야기를 마저 해주실거라고 믿고 있다는, 정말 고맙다는, 응원한다는 독자들의 그 순수한 마음을 마주보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태까지 수많은 글들을 읽어오며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못쓴 글들도 많이 봐왔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잘쓰고 싶은데 못쓰는게 무슨 죄인가. 그런데 이만큼 역겨웠던 적은 처음이다.
나는 유헌화를 모른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모니터 위에 쓰여진 것들 뿐이다. 그는 상냥한 이웃일 수도 있다. 마음씨 고운 청년일 수도 있다. 이런 행동들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던 거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단횡단을 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이런건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을 일일 수 있다. 다만 내가 한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건 그에게 글쓸 자격이 없다는거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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