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홍정훈
작품명 : 월야환담 채,창,광월야
출판사 :
과거에 나는, 범우사와 민음사의 세계 전집을 읽을 때, 전집의 수준을 전집의 뒤에 달린 작품총평으로 가늠했던 적이 있었다. 총평은 읽기 쉬우며 또 그 분량에 비해 많은 요소들이 함축되어 있어 개괄적인 이해, 즉 글을 쓰면서 인용하는 정도의 교양을 드러내보이는데 있어 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뚤어진 평가의 기준과 편리성에 굴복한 작태는, 심지어 작품 자체를 읽지 않고 책의 총평만을 읽고 넘긴 경우가 있었을 정도로 심화되었다가, 나와 같은 이들에게 날린 이문열의 일침을 맞고 사그러들었다.
<월야환담 채월야>를 읽고 처음에 느꼈던 심정이 바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기 전 내 자신이 스스로 어렴풋이 느끼던 심정이었다,
아, 이것은 작품의 총평과 이미지를 함부로 결부시킨 작품이구나, 작가 스스로 주체가 안 되는 이야기를 일관성 없는 시트콤처럼 나열했구나, 결국 이것이 뚜렷이 표현하는 바는 없고 화가의 그것과 같은 이미지로 승부할 뿐이구나.
물론 작가가 탁월하게 묘사하고 의사를 피력한 부분이 있었지만 키팅 선생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비유들이나 신곡에 대한 공허한 삿대질은 솔직히 볼 때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채월야는, 말하자면 인상주의 그림이다. 뿌연 안개에 가려져 처연한 붉은 빛을 내뿜는 해에 본인의 의견을 첨가해 표현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묘사하고자 순식간에 얼기설기 그려낸 그림이었다.
<마신>처럼, 작가 스스로 주체가 되지 않는 인물과 사건들을 나열함으로써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리송한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투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투사된 이미지는 소설의 정형된 틀에 다듬어져 나름의 세련된 청광과 향기를 뿜어내기는 했지만, 그것을 통해 작가를 직접 평가하기는 불가능했다.
<월야환담 창월야>는, 작가 본인이 그러한 점을 스스로 느끼고, 자신이 가장 많이 접해온 요소를 첨가하여 '본인의 의지'가 이끄는 대로 글을 쓴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소재가 명확하고 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나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의 근간이다. 무차별적으로 쌓인 감정의 찌꺼기, 즉 재패니메이션을 비롯한 청소년물의 잔재가 작품 전체를 평가절하하도록 만드는 느낌이었다. 비유하자면 일본 색채가 곁들여진 과도기적 작품이랄까? 피카소가 스스로의 화풍을 정리하기 전 습작으로 그리던 그림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월야환담 광월야>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광월야에 대해서 비난 일색인 모양이었지만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미국 시트콤과 같은 구성으로 어떤 금기도 심하게 범하지 않고 사건을 절제해나가는 현대의 스릴러와 같았던 이 작품은, 전작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던 창월야와는 다르게 작가 스스로가 글을 붙잡고 이끌어나간다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장르 문학 특유의 가벼움이 천박하지 않게 표현된 것도 좋았다. 비유하자면 앤디 워홀의 그림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리즈를 바라보며, 홍정훈이라는 작가는 다음번에는 더 멋진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메모 같은 평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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