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벚꽃(임경배)
작품명 : 카르세아린
출판사 :
1.
읽은지 7~8년이 지난 이 작품을 기억의 책장에서 뽑아냈다. 어제 저녁 카르세아린 시리즈 중 하나인 더 크리쳐가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fancug.net)환타지에서 등장하는 용들의 설정은 대부분 이 카르세아린에서 비롯되었다. 출판 당시에 임경배님이 짜낸 용에대한 설정들은 굉장히 독창적인 것이었으며, 이 후 용이 등장하는 소설들의 설정에 기본베이스가 되 줄 정도로 체계적이며 치밀한 것이었다. 카르세아린 이후의 용을 주인공으로한 수많은 소설들은 아류작으로 폄하할 수 까지는 없겠지만, 카르세아린의 설정을 어느 정도씩 차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 크리처가 완결됨에 따라 카르세아린에서 시작된 순진한 아린의 성장기는 드디어 종말을 맞은 셈이다. 그가 어른으로서, 지상에서 신의 힘을 대행하는 드래곤으로서, 자격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속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리고 일종의 여백을 남겨두었던 카르세아린이 더 크리쳐로 완결되었으므로. 이 시점에서 카르세아린에 대한 감상을 다시금 꺼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크리처의 결말과 비교하면서.
2.
순진한 아린의 가출여행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평범하고 유쾌한 모험소설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음모다. 노예상인에게 팔리고, 카르셀의 통일전쟁에 이용된다. 그 다음에는 그의 드래곤 하트를 노리는 인간들에게 쫓긴다. 그리고 카르세아린을 쫓는 인간들, 그에게 적대하는 인간들은 우습게도 용사들이다. 가스터, 베라, 플루토, 다리오스 이 네 인간은 용과 맞서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도덕성이 소설속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어떻게 그려지든 간에 그들이 인간의 대변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용들에게 운명을 희롱당한 크로데인의 후예들, 용과 맞설 전능수를 찾아다니고, 용의 지혜를 얻어 용과 대등해지려는 그들은 용에 종속된 인간의 운명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해방자이다.
그런데 소설 카르세아린은 인간의 운명을 희롱하는 용들에게 맞서는 용사들을 주인공의 대척점에 세워놓고 있다. 기존의 용사물들을 희롱하는 시도이고, 선과악의 이분법에 대한 야유이다. 이 사회에 명확한 선과 악이 있던가?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인간 용사의 시점에서 쓰인 글들이 이런 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던가? 아니다. 그런 글은 아무리 잘 쓰여도 그냥 감동적인 대서사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한 번 비틀었기 때문에 카르세아린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다.
3.
개인적으로 주인공 파티에서는 순수한 아린보다 기사가문 출신이고 그래서 적당히 출세지항적이고 현실적인 세틴에게 더 끌렸다. 아린의 순수함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납득할 수는 없었다. 아리아와 아린의 끌림도 아리아의 태생에 의해서 운명지어진 것 처럼 보였기에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아리아는 용의 피로 지어진 생명체이므로 용에게 끌리는 것이 당연했고, 아린은 순진한 녀석이고, 어린아이이므로 모성애에 이끌리는 것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린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카르세아린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모든 일족을 잃고 포효하는 그를 찌르고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으로 봉인한 것은 세틴과 인간들의 세상을 이룩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가스터였다.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며 다음을 기대하게 되었고, 아린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가장 믿었던 자에게 배반당하였으므로 더이상 순진하기 만 한 존재가 아니며, 그가 다시 깨어났을때 그는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이런 기대는 더 크리쳐에서 무참하게 깨어졌다. 아린은 여전히 한심한 놈이었다. 더더욱 망가졌고 과거의 상처에 연연했으니까... 심지어 그는 또다시 가스터의 손에 놀아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린을 무작정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카르세아린의 어리버리 아린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 그래 이 놈이 배신앞에서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을 기대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하고 납득하게 된다. 아린 한테는 그게 어울린다. 헤메고 상처입고, 크리처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난 것 같지만, 배드엔딩도 팬서비스로 하나 써주셨으면 싶다. 역시 아린은 굴려야 제맛이다. 순수한 인간이 망가지고 번민하는 것을 훔쳐보는 것은 독자의 은밀한 재미중 하나다...(나만변탠가...)
4.
슬레이어즈의 주인공은 제로스이고 카르세아린부터 이어진 초룡시리즈의 주인공은 가스터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악역인지, 위트넘치고 인간미넘치는 가스터야 말로 완벽한 주인공감이다. 그는 용사파티의 일원인데다가, 불우한 어린시절까지 겪었으니, 요새 자주 나오는 먼치킨 소설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인간 최초 9서클 달성, 앞부분에선 제국을 세운답시고 설치기 까지 하니 먼치킨으로서 더 없이 완벽하다. 제발 가스터 정도로만 캐릭터를 살렸으면 싶다. 그러면 난 먼치킨소설도 즐겁게 볼 의향이 있다.
가스터란 인간은 복잡하다. 독자마다 그를 다르게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같이 삐딱한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스터는 능력있는 이기주의자이며, 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사람들 수준의 도덕관념과 욕망을 가진 보통사람이다. 단지 그는 언제든지 욕망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가 어떤 큰 이상을 위해 살았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볼때 그는 용들의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세계전체의 운명을 좌우했다.
크리쳐의 세계에서 가스터는 그 세계를 사실상 지배했다. 세계를 움직일 힘을 가진 아린의 유능한 종으로서 행세했지만 사실상 아린을 움직인 것이 가스터라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신들을 꼬드겨서 그들이 자신들의 의무와 권리를 모두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도 세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신이되고자 했다.
당신은 당신이 지금 속한 세계를 부수고 신이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가? 아니 당신이 속한 세계가 당신에게 하나의 속박이 되고 있음을 자각할 때가 한번도 없는가?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범인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여기며 체념한다. 그러나 가스터를 보라!!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려고 한다. 그게 세계 그 자체라 해도 말이다. 나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나는 선택까지 굉장히 망설일 망정 결국은 가스터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될 것 같다. 신세계의 신이 되는 것이든, 그저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이든 그건 멋진 일이다. 부인할 수 없다.
가스터의 패배가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 결코 해피하지만은 않다. 인간은 다시 여신의 지배에 놓이고, 여신들은 자신이 배반했던 신민들을 다시 다스려야 하고, 양자 모두에게 피곤한 일아닌가. 뭐 세계의 멸망만 하겠냐고 따지면 할말은 없다만, 어짜피 다른 세상에서 사는 내 입장에선 신들마저 박살낸 댄디중년 가스터의 승리도 멋질 것 같단 말이다. 내 옆에 누군가가 그런다면 메드사이언티스트로 몰아서 목메달아 버릴 거지만. 세계가 멸망하면 나도 죽으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랄까.
5.
아는 분은 아시고 모르는 분은 모르셨을 것이다. 벚꽃경은 어제 생사의 기로에 서 계셨다. 만약 12월31일 까지 완결을 짓지 못하셨다면 남자주제에 세라복을 입고 하루히 댄스를 추셔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어제저녁0시를 37초 남겨두고 결국 완결을 내버리셨다. 무정하게도......
난 작가님의 세라복 차림을 보고 싶었기에 정말 슬펐다. 어쨌든 초룡이야기의 1부와 3부의 완결은 난 셈이고 그럭저럭 퀄리티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이제는 2부라고 할수도 있고 외전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인드림스의 완결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성원하는 의미에서 카르세아린의 애독자시라면 이제 곧 나올 더클 완결권을 한권씩 질러주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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