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쥬논
작품명 : 앙신의 강림, 천마선, 규토대제, 흡혈왕 바하문트
출판사 : ..
쥬논님의 글을 얘기하기 전에 하나의 기준을 먼저 설정해 보겠습니다.
격투게임을 보면 흥분게이지가 있습니다. 맞거나 때리면 점점 올라서 다 모이면 필살기를 사용한다거나 할 수 있지요. 이 흥분도를 5단계로 설정해 보겠습니다. 1단계는 주인공이 여행도중 식사를 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등의 평범한 단계입니다. 5단계는 클라이맥스의 정점, 최종 보스를 만나 한 판 하기 전이나 생각도 못한 무시무시한 반전이 나오기 전의 단계라고 합시다. 대충 이 5단계의 흥분도가 어떤 것인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그러면 이제 쥬논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쥬논님 글의 가장 큰 장점은 서양적 세계관, 더 자세히 말하면 극동아시아 이외의 세계관을 글에 잘 적용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계의 문화에서 보편화 된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능력도 좋습니다.
또 문화와 종교를 표현하는 것에서 다른 작가분들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쥬논님의 글을 읽다 보면 소재나 사고방식이 보통 한국사람으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 많음을 느낍니다. 동아시아 이외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셨거나 실제 외국 정서를 느낀 경험에서 나온듯한 세계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쥬논님의 글에 등장하는 배경을 보면 정말 실감 납니다.
우리는 중세 판타지라고 하면 대부분 막연히 성과 기사와 귀족이 나오는 세계라고만 생각하지 실제로 어떤 세계인지 잘 모르는 게 사실입니다. 심지어 작가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세계관을 가지면서도 중세에 기사가 어떤 위치인지 모르기 때문에 1000명의 병사 중 기사가 3~400명인 어처구니 없는 글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기병과 기사의 구분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쥬논님의 글에는 이런 세계관에서 나오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분위기가 다른 글과 차별화된 개성을 부여해 줍니다.
종합하면 쥬논님의 글의 장점은 새로운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배경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재와 분위기는 이 설정에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위에서 약속한 흥분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기억해 보고 나서 이제 단점으로 느낀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쥬논님의 글은 기승전결로 나눌 수가 없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전전전결이지요. 이야기 흐름을 흥분도로 표현해 보면 대부분 (기)4-3-4, (승)4-5-4, (전)5-3-2, (결)2-1 로 구성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쥬논님의 글은 끊임없이 발산합니다. 처음부터 마구 마구 내뿜다가 결정적 순간이 되면 힘에 부치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끝나버립니다.
짧은 것 사이의 긴 것, 흰 것 사이의 검은 것과 같이 우리는 글에서 강약을 얘기합니다. 대비 효과를 말하는 거죠. 쥬논님의 글을 읽다 보면 이 강약의 변화가 아주 적습니다. 강약 중강약으로 가는 게 아니라 꽝강 쾅꽝강으로 가는 것처럼 기본 텐션이 너무 높아서 그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정부분이 되어도 절정 같지가 않습니다. 매일 하던 거 또 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절정부분 때문에 결말도 시들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전개방식이 하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도 하나 있습니다. 소재를 살리는 것입니다.
쥬논님의 글에는 새롭거나 기존의 것을 구체화해서 새롭게 느껴지게 한 좋은 소재들이 많습니다. 천마선의 음양합벽, 심식차력, 규토대제의 주술 등이 그렇습니다.
제가 쥬논님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앙신의 강림입니다. 그중에서도 중동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처음이고 끝이고 간에 좋았습니다. 망혼벽과 기독교를 기반으로 설정한 것 같은 종교도 정말 잘 살린 소재라고 봅니다.
이와 비교해서 천마선이나 규토대제도 소재만 보면 앙강과 그다지 큰 차이가 난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 작품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뒤로 갈수록 각각이 하나의 영역으로 개화하기보다 큰 틀 안에 뭉뚱그려져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쉬운 점이 새롭지만 능력이 필요한 소재와 보편적이지만 익숙한 소재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예로 규토의 주술이라는 씨앗이 발아했다면 무수한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었지만 결국 규토의 힘이라는 큰 바구니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아쉬운 점이 규토가 이 바구니 속에서 육체의 힘을 주로 사용한 것과 꼭 육체의 힘을 얻었어야만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표현하기에 따라 주술만 해도 절대자가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출 수 있었는데 말이죠. 당시 판타지에 무공의 형식을 빌려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주술이라는 소재를 세분화하고 설정해서 사용하는 것은 쥬논님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것은 잘만 하면 카르세아린의 드래곤이나 육맥신검, 독고구검, 건곤대나이와 같이 매력적인 소재로 만들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그만큼 특출한 소재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앙신의 강림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흔히 말하는 필을 받아서 써봤습니다. 퇴고까지 5시간이 좀 더 걸렸네요. 쥬논님의 글을 읽은 사람이 많은 만큼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도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 게시판 기준에 맞는 한에서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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