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단그리
작품명 : 남궁지사
출판사 : 영상노트
3권을 아직 못 읽으신 분들은 가급적 자제하심이... 치명적이다 싶을 만한 수준의 미리니름은 없습니다.
0.
어제, <남궁지사> 3권이 배포되었다. 본인은 운 좋게 그것을 입수하여 읽어볼 수 있었다. 2권까지의 내용에서는 비평을 하기에 너무 이르다 생각했으나, 3권의 내용은 칼을 들이댈 수 있을 정도는 될 만큼 진행되었다.
기실 <남궁지사>는 완결이 되고 난 뒤에야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지금 평을 쓰는 것은 저자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며, 완결된 뒤에 또 쓰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될 일이기 때문이다.
<남궁지사>는 퓨전 무협이라고 부르며, 주인공은 본래 리얼 월드의 수험생이었다가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 과거 중국의 남궁세가에서 태어났다. 일반적인 무협 소설과는 발상부터 진행이 전혀 궤를 달리하는 바, 평가의 주안점이 타와 다를 수밖에 없다.
1.
<남궁지사>는 말 그대로 남궁세가의 스승을 말한다. 보통 무협 소설의 주인공은 누군가의 제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왜 그런가 하니, 주인공은 미완성의 인물이며 완성을 향해 가야 할 터이니 완성된 인물인 스승에 의해 키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궁지사>의 주인공 남궁상현은 미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전생과 어린 시절의 일을 통해 이미 완성되어 버렸다. 따라서 인물 자체의 변화로는 독자에게 큰 재미를 주기 힘들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만회하기 위해 현대적인 지식과 감각으로 무협을 재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선보였다. 주인공 자체는 변화하지 않으나, 주인공의 눈에 비치는 무공은 다른 무협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해석을 보여줌으로써 끊임없이 흥미를 이어가게 한다.
이는 곧 <남궁지사>의 목적에 따른 문제다. '현대의 상식에 의한 무협의 재해석'이야말로 저자의 목적이니, 주인공을 완성된 인물로 설정하는 것은 그것을 더 상세히 보여주고자 한다고 간주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2.
<남궁지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교육'에 대한 주인공과 남궁세가 인물들의 시각이다. '어마어마한 교육열! 뜨끈뜨끈한 입시지옥!'이라는 책 뒷표지의 선전 문구처럼, 작중 남궁세가의 교육열은 현대 한국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주인공인 남궁상현은 그런 잘못된 교육열에 반대를 하고 나서며, 직접 제자를 다른 누구보다 훌륭히 가르쳐내어 자신의 교육방식이 옳았음을 입증한다. 그리하여 남궁세가의 잘못된 교육열을 뜯어고쳐 올바르고 효과적인 교육문화로 이끄는데...
그가 제안하는 교육은 엄밀히 말하면 더 효율적인 교육이다. 그가 교육 제도를 바꾸어 놓았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교육열은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데다, 창궁무애단의 입단시험에 제자들을 모두 합격시킴으로써 오히려 입시경쟁을 더더욱 가열시켰다. 그는 교육 제도를 바꾸어 놓았을 뿐, 교육의 목표나 의욕 등은 전혀 바꾼 것이 없다.
그러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다. 그는 엄연히 현대 입시경쟁의 희생자라 할 수 있는데, 기껏 환생해서 바꾼 것이 입시경쟁의 가열화라니. 그가 이룩해낸 결과는 재미는 주었을지언정 주인공이 본래 처해 있던 상황과 비교하면 오히려 이상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자는 물론이요, 주인공 스스로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만한 일이다.
그렇기에 <남궁지사>는 이 또한 재미라 말할 수 있다. 완성된 인물인 주인공을 번번이 좌절시켜서 발악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남궁지사>가 지닌 재미의 또다른 원천이지 않던가.
최후의 최후에 교육 개혁에 완전히 성공한다는 것만 보장된다면 현재의 좌절스런 사태는 오히려 잔재미가 될 것이다. 남궁세가의 교육에 대한 시각이 온전히 변모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일이니.
3.
<남궁지사>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이 전지적 작가 시점은 서술자가 전지전능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둘러보고 서술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남궁지사>는 이러한 특징을 잘 살려서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을 여과없이 독자에게 전달한다.
마교의 발호, 남궁세가 내부의 모습, 3권에서의 가출 사건과 비무 대회까지도 역시 그러했다. 독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알지 못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기 전에 우선은 시침을 떼고 감추어 둔다. 독자와 주인공은 함께 의아함을 맛보나, 그 직후에 주인공이 여전히 모르는 것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남궁지사>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에 대해 같은 방식을 보였다.
이는 분명 독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다. 의문을 품은 독자에게 넌지시 해답을 알려줌으로써 여전히 무지한 주인공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
그러나 그런 장치도 지속적으로 활용하면 효과가 떨어지는 법이다. 독자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주인공과 함께 깨닫는 것도 재미요, 의문을 품기 전에 미리 아는 것도 역시 재미며, 일부만 알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도 또한 재미다. 갖가지 방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 독자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4.
<남궁지사>는 두 가지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남궁상현이 남궁세가의 스승이 되어가는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남궁세가의 스승인 남궁상현과 마교의 대립이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이어지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겠으나, 저자의 이야기 구성은 그렇지 못했다. 남궁상현과 마교의 대립에 정작 남궁세가가 크게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 남궁세가에서의 교육과 마교와의 대립이 교차적으로 일어나며 서로가 서로의 사건에 간섭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남궁지사>라는 제목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남궁세가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남궁세가의 스승인 남궁상현의 이야기인지를 말이다.
남궁세가의 스승은 결국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다. 양성한 제자들이 크게 성공하였다- 라며 결말을 맞으면 그건 결국 하이틴 스토리에 불과하다. 그는 결국 또 다른 제자를 맡게 될 것이며, 이것은 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남궁지사>는 남궁세가의 스승인 남궁상현에 의해 마교의 음모가 와해되었다- 라는 것으로 결말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남궁상현과 마교의 대립 구도가 무너지는 것으로 결말이 나게 될 것이다. <남궁지사>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의 이야기 중에 결말을 낼 수 있는 이야기는 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독자가 바라는 남궁세가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는 <남궁지사>에서 비중이 낮아질 수밖에 없으며, 독자의 손에서 멀어지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마교와 대립하는 존재가 주인공인 남궁상현이 아니라 남궁세가여야 하며, 남궁상현은 남궁세가의 스승으로서 그 사건에 개입해야 한다. 굳이 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마교와의 대립이라는 사건속에서도 주인공인 남궁상현은 스승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두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융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두 개의 사건이 주인공이라는 접점 하나만으로 별개 진행되는 것은 제목에 대한 기대와 실제 내용의 괴리로 인해 독자의 외면을 자초할 수 있다.
5.
이는 평가와는 별개의 단순한 지적 겸 의문인데, 남궁상현의 수련일지가 무공의 비급마냥 어렵게 암호화된 것도 아니요, 찾기 힘든 곳에 감춰준 것도 아닌데, 왜 가주인 남궁무와 태상가주인 남궁강은 마교에 납치당하기도 하고 제 발로 가출하기도 하며 자리를 비운 시간이 많은 남궁상현의 방에서 수련일지를 몰래 훔쳐보질 않는 것일까?
남의 무공 비급을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의기로운 생각을 끝끝내 관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납득하기에는 남궁강의 능구렁이같은 모습이 눈에 밟혀 인정할 수 없다. 그냥 남궁상현의 방에 가서 책장만 보면 가지런히 꽂혀 있는데, 굳이 안 볼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의아한 일이다. 정말 모를 일이다. 혹시라도 그들은 이미 봤는데 서술자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을 뿐이라면 나중에 크게 웃을 수 있으련만, 아직은 서술자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높지 않아서 기대하기 힘들다.
6.
<남궁지사>는 아직은 미개척지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인 '퓨전 무협' 소설이다. 현대의 감각을 지닌 주인공으로 무협을 재해석하고 있으니, 어떤 의미로는 괴작이라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확실히 재미있고, 앞으로 저자가 어떻게 재미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밑천을 꺼내며 괴로워하듯 저자의 밑천도 바닥나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걱정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본인은 겨우 세 권에 불과한, 완결되지도 않은, 앞으로를 기대하는 작품을 굳이 평했다. 틀림없이 완결된 뒤에는 이 평가를 번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까짓 평문 하나 다시 쓰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 평은 다만 저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2권까지 읽고 느낀 염려가 3권에서도 지속되었기에 외치는 것이다.
이토록 특색있는 작품이 잘못되는 것은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독자들 또한 결코 바라지 않을 일이다. 본 평문은 그 걱정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다.
추후에 본문의 평가가 번복되기를, <남궁지사>가 빼어난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저자를 향해 응원을 보낸다.
덧. 리플 받으면 호랑이 힘이 솟아나는 건 작가만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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