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래 글의 댓글 중 미친멸치님이 쓰신 글을 읽고 그동안 장르소설의 문제라고 느꼈던 것을 잠시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년 무협과 판타지 소설이 우리나라에 출판되었고 그 기간동안 수만질의 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이나 작가는 몇 없죠.
일단 구무협을 보면 정말 틀에 박힌 정형을 보여줍니다.
'가문이 멸문하여 절벽에서 기연을 얻고 순식간에 천하무적의 무공을 익혀 수많은 천하제일 미녀들의 사랑 속에 복수를 완성하고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에 단어 몇 개만 넣거나 빼면 거의 모든 책의 줄거리가 완성됩니다. 여기서 쓴 소재를 저기서 차용하고 또한 자기복제를 해서 무수한 복제품을 만듭니다. 여기서 다른 소설과 차이를 보여준 것이 와룡강, 백상, 사마달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마달은 고룡소설에서의 추리기법을, 와룡강은 도색소설을, 백상은 무공의 경지를 새롭게 구분한 방법을 사용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 후 금강님의 글에서 소설 속 환경의 확대가 시작되어 장경님의 글에서 더욱 꽃피웠고 좌백님과 용대운님의 글 속에서 좀 더 사실 같은, 좀 더 치열한 사람냄새가 나는 무언가가 더해졌다고 생각됩니다(글재주가 짧아서 표현이 잘 안되네요).
우리나라 무협의 큰 틀은 이렇게 정해졌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그 외에 기억되는 작가나 작품은 무엇이냐고 한다면 바로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인물을 다양하게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표현을 잘 했는가가 소설을 명작인지 양판소인지로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양판소라고 하면 고등학생이 차원이동을 해서 먼치킨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가장 중요한 것은 먼치킨) 진정한 양판소는 이게 아닙니다.
[고등학생 - 차원이동 - 먼치킨]은 단지 소재일 뿐 양판소와 아닌 것을 가리는 것은 인물과 사건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었나 평면적으로 구성되었나 입니다.
한 예로 초기작품인 데로드&데블랑이나 가즈나이트를 보면 벌써 먼치킨 주인공이 나타납니다만 이 소설을 양판소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위에서 쓴 무협의 틀을 벗어나는 작품이 거의 없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작가분들의 작품을 보면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참 다양합니다. 이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대체 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과 사건을 표현한 소설만이 양판소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묵향과 비뢰도를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 독특한 설정, 인물과 진행때문입니다. 이 책들이 한달에 한 권씩 나와서 2년만에 파바박하고 예전에 완결 되었으면 아마 지금처럼 욕을 먹기는 커녕 드래곤 라자나 하얀 늑대들처럼 하나의 이정표로서 여겨질 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파격적인 소재와 인물을 사용해서 처음을 잘 이끌어 갔죠.
요즘 말하는 양판소는 거의 이것과 같다고 봅니다. 이작가의 책과 저작가의 책을 비교해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더군다나 이름있는 작가들도 스스로의 소설을 양판소로 만드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팔리는 게 중요해도 새책을 내서 팔아야지 재활용을 해서 팔면 되겠습니까? 이것은 자신의 책을 스스로 휴지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예전부터 무수한 사랑얘기가 있음에도 명작과 졸작이 나뉘는 것은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절절하게 인물이 살아있는지 사건이 진행되는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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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양판소를 정의하는 두가지는
1. 평면적인 인물과 사건진행
2. 작가복제를 통한 질적 변화없는 양적 양산(남의 것을 복제하면 당연히 표절이겠죠)
이렇게 인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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