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에르체베트
작품명 : 귀족클럽
출판사 : 無
*여기에서의 비판은 단지 까대고 씹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글이 지니는 방향을 비추고 글의 한계점을 논論하는 칸트적 의미의 ‘비판Kritik'이다. 제목만 보고 들어와 이 글을 제멋대로 ’비판‘ 해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종류의 ‘비판’ 만 제외한다면, 본 글의 방향적 문제나 혹은 사실관계의 오류를 지적하는 코멘트는 언제라도 환영이다.
굳이 이런 선정적인 제목까지 써 가면서, 그리고 그 유명한 칸트의 『비판』-‘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오마주hommage해가면서까지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는, 본인이 칸트만큼 확실하게 인간의 현상적인 학적 인식을 정초할 수 있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칸트가 가지는 이러한 문제의식, 즉 비판(크리틱)이라는 개념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인 『귀족클럽』에 대입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쓴 글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비판Kritik, 즉 크리틱은 한계를 분명하게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글이 미숙한 본인의 한계를 드러낼 것은 분명할 것이나, 그런 미숙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본인이 이 글에서 의도하는 것은 이 『귀족클럽』이라는 소설이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을 가짐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즉, 작가 본인이 밝힌 이 글의 목적,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철학을 더 쉽게 전달하고 싶다는 목적과 작가의 글 『귀족클럽』이 취하고 있는 구성이 어쩔 수 없는 모순점을 보이기 때문에 이 글은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보임이 이 글 『귀족클럽비판』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글의 기본적 방향성을 보였으니, 내가 이 글을 비판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들을 언급하겠다. 이 명제들은 내가 생각하는 『귀족클럽』의 한계점을 밝히는 논증에 쓰이게 된다.
1. 전제들.
명제 1. 소설은 ‘개연성 있는 허구’ 이다.
모든 문학 교과서든 비평이든 간에 소설의 가장 기본적 정의는 ‘개연성 있는 허구’ 이다. '허구(fiction)'라는 표현은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개연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소설은 본질적으로 ‘이야기(story)'이며, 때문에 언제나 인물, 사건, 배경이 존재한다. 이 사건이 전개되는 것을 서술하는 것이 바로 소설이겠으나, 이 사건 전개에 필연성이 없다면 그 전개는 어색한 것이 되어 소설은 개연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개연성(蓋然性)은 말 그대로 ’가능성이 있는‘ ’있을 법한‘ 을 의미한다. 개연성이 있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이야기‘ 이다. 환상문학 역시도 그 세계관 속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개연성에 대한 적절한 언급은 움베르트 에코에게서 찾을 수 있을 법하다. 움베르트 에코는 자신의 작품 『장미의 이름』의 시작 배경이 왜 1327년 11월 말에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12월이 되면 체제나의 미켈레는 아비뇽에 가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해도 11월 초순이나 중순은 좀 이르다. 게다가 나는 수도원의 불목하니들로 하여금 돼지를 잡게 해야 했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피 항아리에 시체를 거꾸로 처박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시체가 피 항아리에 거꾸로 처박히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그 이유는, 『요한의 묵시록』에 따르면, 두 번째 나팔이 울리면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 나로서는, 『요한의 묵시록』은 기존하는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많은 질문을 통해서 나는, 당시의 수도원에서는 날씨가 추워지지 않으면 돼지를 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11월은 너무 이르다. 그래서 나는 수도원을 산중에다 배치했다. 처음부터 눈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거기에 있다. 이런 고충이 없었더라면 내 이야기의 무대는 폼포사나 콩퀘스 같은 평야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개연성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설명될 것으로 생각된다. 개연성은 소설이 각각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에서 전개되면 ‘가능성’ 이 있는 것이므로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명제 2. 소설에서의 ‘배경’은 중요하다.
물론 ‘배경’ 이 중요하지 않은 소설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 배경은 중요하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 세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그것은 특히나 장르 소설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단지 배경만으로도 작품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여점에서 책을 하나 집어 들었는데, 그 세계관이 전근대 중국이라면 우리는 아마 무협소설일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행성이 나오고 우주선이 나온다면 SF소설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엔더의 게임>을 쓴 오슨 스콧 카드는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이야기를 시작한 후 당신의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그것이 판타지가 될 것인가, SF가 될 것인가를 알려야 한다. 만약 글이 SF고 당신이 그것을 독자들에게 알렸다면, 당신은 엄청난 수고를 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독자들은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곳 외에는 알려져 있는 자연법칙이 모두 적용되리라고 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경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얻어낼 수 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무진’ 은 어떤가, 그곳은 안개의 도시이고 주인공의 이상을 상징하며, 또한 편지를 통해 대표된다. 서울과 무진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그 도식은 편지와 전보라는 도식, 혹은 이상과 현실이라는 도식을 통해 대표된다. 발자크의 『인간희곡』도 마찬가지다. 『인간희곡』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90여개의 소설들은, 그러나 그 수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파리라는 배경을 짙게 드리우고 있으며, 1830년대 파리라는 배경은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부르주아 계급이 두드러지면서 각자의 인간 군상들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양 계급으로 갈라지고 있는* 가장 적나라한 장소**라는 것을 함축한다. 뤼시앵은 그런 부르주아 계급에 편입되고자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닌가. 우리는 단지 1800년대 파리라는 배경 하나만 가지고서 이 소설의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 위에 말한 것에서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이 배경은 개연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배경은 세계관이며, 즉 가능성의 모순율을 설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명제 3. 철학적 사조는 단지 기존 사조와의 백가쟁명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와 그 사회변화에 대한 반성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이건 특별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예증해보이기로 하겠다.
맑스의 철학은 자본주의의 발달이 없으면 태어나지 않았다. 맑스는 기본적으로 헤겔의 제자다. 헤겔의 주요 개념은 교양Bildung인데, 이 교양이라는 말은 영어로 culture이며 이 말의 어원은 ‘경작’ 이라는 말이다. 헤겔에게 교양은 인간 인성을 끊임없이 도야해 과는 과정이며 이 도야해 가는 과정이 바로 외화이다. 만일 텍스트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subject, 빈 그릇으로서 주관이 있다. 이 텍스트는 내가 손에 잡아보기 전까지는 텍스트가 아니고 즉자적인 물(物, thing)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텍스트를 읽는다고 할 때, 그것은 나의 subject에 있는 정신이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는(enter)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텍스트 속을 굴러다니다가 다시 정신에 담겨져 나온다. 이때의 subject는 텍스트를 읽기 전의, 빈 그릇으로서의 subject가 아니다. 텍스트라는 물(thing)이 적재(loading)된, embedding된 정신이다. 따라서, 이때의 정신에는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다. 이것을 외화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텍스트와는 무관하게 무언가를 계속 경험한다. 그로서 text와 subject가 나선형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인간의식이 발전한다. 헤겔 변증법의 첫 번째가 바로 이것이다. 이로서 정신은 주체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헤겔의 생각을 가진 맑스에게 자본주의는 발달해가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소외(entfremdung)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의 초기 시대에,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언하고, 그로서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만약 자본주의가 그의 시대에 발달하지 않았다면, 혹은 파리 코뮌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가 과연 그와 같은 철학 사조를 세웠겠는가? 그냥 그 전과 마찬가지의 철학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이로서 내가 논증하고자 하는 데 필요한 전제를 모두 말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귀족클럽』에 내가 말한 전제들을 대입해 보도록 하겠다.
2. 『귀족클럽』의 배경은 어떠한가?
귀족클럽의 배경은 어느 시대일까? 내 생각에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르네상스 시대이다. 내가 그 하도많은 시대 중에서 르네상스를 짚어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①신학의 절대성.
『귀족클럽』의 전체적 내용에서 신학은 무척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신이 세계를 지배했던 서구 중세시대의 특징이다. 신권주의(神權主義)에서 인간이 주체로 바뀌는 시기부터 근대라고 칭할 수 있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 그 시작은 코기토(cogito)적인 개인의 탄생이며 그 이행기를 보여주는 시대가 바로 르네상스이다. 르네상스 시대에서부터 근대를 향한 이행이 보여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르네상스 시대에 근대를 향한 길이 엿보이는가?
②상업이 발달했다.
『귀족클럽』의 세부적 면면을 보면 예이지 대학이 있는 유포리아는 상업이 무척 발달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근대의 특징이다.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보이는 꾸준한 특징은 농업인구가 계속해서 감소되어 왔다는 것이다. 중세만 하더라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90%를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9%밖에 안 된다. 농업생산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이행 사이에 있는 사건은 바로 흑사병이다. 흑사병은 중세의 농업 인구를 크게 감소시켰고, 이에 농업혁명이라 불리우는 농업생산성의 혁신이 발생하게 된다.
이 농업혁명이 가장 먼저 발생한 곳은 인적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추어져 있던 이탈리아에서부터였는데, 이탈리아는 이러한 농업혁명으로 인해 농업인구가 크게 감소, 남는 인구가 도시로 모여들게 된다. 그로 인해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국가가 생겨나게 된다. 피렌체, 밀라노 등이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도시국가는 기본적으로 상업이 성행했기 때문에, 계약이 언제나 필요했고, 때문에 법률이 발전하고 금융이 발전한다. 최초의 은행이 설립된 곳은 베네치아이다. 상업의 증가가 이러한 필요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맹아는 바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금융업이 발전한 도시국가에서 나타난다.
③부르주아의 존재
부르주아는 이러한 도시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본문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르주아라는 계급은 이 소설의 배경이 르네상스라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중세에는 부르주아가 없기 때문이다.
④대학의 존재
대학은 르네상스 시대로의 이행에서 생겨났다. 중세의 지식은 원래 수도원에만 모였다. 그건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기독교의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영향력에서 세계가 벗어나려 애씀에 따라 지식이 모이는 장소가 새로이 생겨나고 그것이 바로 대학이다. 대학 말고도 여러 경로에서 종합적 교양의 궁중 지식인들은 부르주아를 위해 봉사했다.
세 가지 측면으로 미루어 보아 『귀족클럽』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이다. 개인과 교회가 치열하게 다투는 시대, 인간의 주체성이 태동하는 시대 말이다.
3. 르네상스라는 배경과의 모순.
나는 앞서 명제 1에서 소설은 개연성 있는 허구라고 했다. 그리고 그걸 설명하면서, 있을 법한 이야기, 모순율 없는 이야기가 개연성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명제 2를 설명하면서, 배경은 개연성과 무척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순율의 가부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이 소설의 세계관, 즉 배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제 르네상스라는 이 소설의 배경과 등장인물의 대사가 얼마나 모순됨을 밝힘으로서 이 소설이 갖는 한계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어디 한 번 결을 거슬러서***이 소설을 봐 보도록 하자.
『귀족클럽』제 1화 입학- 팔츠그라프의 적자, 편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이리나와 교수의 면접 부분이다.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지상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또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과되며 사건은 단지 그 안에서 메아리 칠 뿐이다라는 주장이 있다네. (……)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물어보지. 이리나 양, 자네는 역사학을 지망한다고 했는데, 자네가 보는 역사가와 역사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역사상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와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역사상의 사실은 무의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즉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 필요한 존재이며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자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네가 하면 안 된단 말이다. 이 유명한 E. H. Carr의 역사관은 교수의 질문에서 나타나듯이 랑케와 크로체의 사학을 전제한다. 여기에서 랑케에 주목해 보도록 하자. 랑케의 실증사학은 기존의 근대적 역사관들과 대비되는 것이었다.
근대적 역사학의 시작은 볼테르부터이다. 14세기 르네상스와는 400년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볼테르 이후로 등장한 사가(史家)들은 미슐레, 칼라일, 드로이젠, 몸젠 등의 낭만주의 사가들이며, 이들은 자신의 주관을 역사에 대입했다. 어느 민족이 더 우월하다느니 그런 것 말이다. 그들의 편향적인 시각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랑케의 실증사학이다. 낭만주의 사학의 역사에 대해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미래역사에 대한 예언을 하는 것에 반대해 ‘단순히 일어난 그대로’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 역사라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르네상스의 역사학은 어떨까? 르네상스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보이는 시기였으며 중세의 역사관은 단 하나, 종말이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계인 만큼 기독교의 마지막 장의 제목처럼 종말적 예언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종말을 준비했고, 그 준비를 하면서 1000년이 지났다. 여기에 반대해(이미 종말의 때로 예언된 시기가 지났으므로) 천천히 진보적 역사관이 태어나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이 르네상스란 말이다. 그런데 르네상스의 사관에서, 낭만주의 사관을 넘어서, 실증사학을 넘어서, Carr의 역사관을 말한다고? 이리나는 수백년을 꿰뚫은 천재가 아닐 수 없다. 그걸 이해하는 교수는 또 무언가.
그녀가 단지 올바른 역사적 파악을 했을 뿐이라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적으로 말해 볼까? 명제 3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모든 사조는 기존의 사회적 상황과 연관되어 일어난다. 실증사학의 랑케는 독일철학의 쉘링을 빼고는 이야기될 수 없다. 그는 셸링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그 때문에 역사에 나타난 신(神)의 영향을 이애하고 싶어 했다. 랑케는 신은 어디에나 있으며 '위대한 역사적 사건들의 흐름에서'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직자이자 역사가가 된 것이기도 했다. 그의 유명한 명언 중의 하나는, "각 시대는 신에 직결되어 있다" 이다.
자 이제 쉘링을 말해 보자, 쉘링은 칸트가 증명하지 않았던(‘않은’ 것이다.) 무한의 문제를 밀어붙인 사람이다. 쉘링에서는 칸트의 구상력이 본래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철학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발동기이다. 대상의 실제적 세계인 자연과 관념적 세계는 아무 제한없이 교통한다. 우주는 살아있는 유기체일 뿐만 아니라 일관된 예술작품이기도 하며, 정신의 무의식적, 근원적 시이다. 예술품은 소규모의 우주이고 동일한 정신의 꼭 같은 드러남이며, 단지 의식적으로 창조된 계시일 뿐이다. 이러한 포괄적 동일성이 직접적으로 파악되는 곳은 바로 예술가의 의식이다.
무한자와 유한자의 통일은 헤겔과 쉘링의 공통의 과제였다. 그것이 헤겔에서는 '개념적 파악' 또는 '변증법적-사변적 방법'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철학에서 성취된다면, 쉘링에게는 철학이 예술의 하위에 놓인다. 피테가 정립한 '절대적 자아'가 하나는 예술로 다른 하나는 철학으로 전개되어간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칸트를 넘어서려는 독일 관념론자들의 욕심의 전개과정이므로 칸트에게서 원천을 찾아야 한다.(강유원)
자 이제 쉘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칸트가 나왔다. 칸트는 무슨 일을 했을까? 그는 체계적으로 ‘신을 죽이기’ 시작했다. 잠깐 강유원의 말을 옮겨보겠다.
“근대철학의 대장은 칸트다. 근대 철학은 주체성subjectivity의 철학, 즉 계몽의 철학인데 그것을 완성한 이가 칸트이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기본적인 흐름은 신에게서 인간을 독립시키려는 운동이다. 이 계몽주의 프로젝트가 오늘날 21세기에 있어서의 동양과 서양을 갈라놓은 핵심적인 사안이다. (……) 어쨌든 subjectivity가 근대철학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라면 칸트가 계몽주의 철학을 완성하려다 보니까 남은 문제가 현상지(현상에 관한 인식)와 물자체에 관한 지를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왜일까? 칸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전개과정을 고려할 때는 뉴턴을 같이 떠올려야 한다. 철학자 칸트와 물리학자 뉴턴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간 것이다. 칸트가 보기에 근대 자연과학만큼 확실한 학문이 없었다. 즉 근대 자연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인간의 인식의 확실성을 정초하는 것이야 말로 근대 철학의 핵심과제라 생각했고 그런 과제에 착수한 것이 <<순수이성비판>>이다.”
칸트야말로 가장 신을 제대로 죽인 사람이다. 근대철학을 완성한 칸트가 나오고 나면 신은 나올 자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 신권주의의 시대는 이미 끝나고 교회는 속(俗)에서 손을 떼고 성(聖)으로 후퇴했어야 마땅한 시대인 것이다. 르네상스라는 시대와 모순이 된다.
카를 치자니 랑케가 나왔고, 랑케를 치자니 쉘링이 나왔다. 쉘링을 치기 위해서는 칸트가 필요하다. 칸트를 치면 중세가 무너진다. 세계관에 모순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물만이 연관되어 있을 뿐 철학 전체가 연관되어 있지 않기에 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히 연관되어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해결하지 않은 무한자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헤겔과 쉴링이 양쪽의 방향으로 움직여 나간 것이며,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쉴링이 펼친 철학을 보고 랑케가 경도된 것이다. 결코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혹시 그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고 반론을 할 수도 있기에 미리 말해둔다. 정확히는 ‘종말’의 교리를 가지지 않은 종교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세계관 자체에 균열이 생긴다. 대학이 왜 생겼을까? 지식을 새로운 장소에서 모으기 위해서다. ‘새로운’ 이라는 말은 기존의 것이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기존의 지식을 모으던 장소가 어디일까? 바로 수도원이다. 종말에 대비하기 위해 교회는 지식을 수도원에 모아 보관하고 퍼트리지 않았던 것이다. (『장미의 이름』을 보면 잘 나온다.) 지식이 권력이라는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지식을 소유함으로서 자신에게 유리한 권위를 포장할 수 있었고, 권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하는 14세기의 움직임이 바로 대학이다. 지식의 유통이 교회를 통해서가 아닌 개인을 통해서 이루어짐으로서 교회로부터의 극복을 꾀했던 것이다. 만약 종말론적 종교가 아니었다면? 로마 시대와 비슷한 문화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신권주의(神權主義)가 그렇게 쉽게 자리잡히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또 다른 귀족클럽의 개연성 문제를 들어보자면 데카당스다. 아, 클럽 데카당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부분은 내 깜냥이 모자라 더 이상 논의를 전개시키기가 힘들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랭보의 싯귀에 대한 학생의 반응이다.
“A가 검다고? 지독한 악취 주위에서 윙윙거리며 번쩍거리는 파리들의 털로 뒤덮인 검은 코르셋? 도대체 무슨 말이야? 저 혼자만 이해하는 단어로 시부렁대는 게 시란 말이야? 뭐 이딴 것들이 다 있어?”
“쉽게 설명 드리자면,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유의하는 단계로 시작해서 단어들의 환각으로서 자신의 신비한 궤변을 설명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미(美)와 인사할 줄 아는 단계로 이른다고 말했어요. 이것을 언어의 연금술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하인리히님 또한 이성의 잣대로 판단하는 관념을 집어던지고 오로지 감각으로 이성을 지배하는, 즉 순수한 감각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간다면 그의 시어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아, 그는 정말 천재다라고.”
그러니까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다. 랭보가 속한 프랑스 상징주의는 언제 발흥했는가? 보불전쟁 직후의 피폐된 사회, 그리고 자본주의로 인해 소외되어가는 주체성, 인간은 기계화되어가고 유일한 덕(德)은 자본뿐인 그런 시대에 발흥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시대에 나타난 것이 퇴폐주의(데카당스)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나타난 전후실존주의나 마찬가지인 사조란 말이다. 르네상스와 같은 풍요로운 시대에는 이러한 문학이 전혀 아무런 공감조차 얻을 수 없을 거란 말이다. 명제 3에서 도출되는 것처럼, 어떤 사조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조가 나타난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들의 문제의식, 그들의 절망,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이건 개연성의 문제가 아닌가?
4. 결론.
앞서도 인용한 강유원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떠한 시대든지 시대정신으로, 집약될 수 있기 마련이지만, 르네상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런 뜻에서 에른스트 카시러는 “한 시대의 철학은 전체 상황이 품고 있는 정신적 본질을 함축하며 다양한 전체상을 포괄하여 결국 단일 초점, 즉 스스로를 인식하는 개념으로 수렴된다는 헤겔의 전제는 초기 르네상스 철학사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매우 복잡한 시기였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 또한 성립되어 있지 않다.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 문화에 대한 자신의 방대한 저작에서 르네상스 철학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저술에서 그 시대의 철학은 헤겔적 의미에서의 정신의 ‘단일 초점’이나 ‘한 시대의 실체적 정신’으로 대접 받기는 고사하고 당시 사상적 분위기의 한 계기로 조차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온갖 복잡한 일들이 일어난 후 나중에 하나하나 반성해가는 것이 철학이 하는 일일 터인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반성을 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사회가 끊임없이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보기에 밝힌 바와 같이, 르네상스는 이러한 시대였다.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던 그런 시대.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잡고, 철학적 개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나간다면 언제나 시대착오(Anachrony)****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결국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록 철학적 개념들을 소설 상에서 씀으로서 더 쉬운 이해를 도모하는 것은 흥미로운 시도이나, 철학이 언제나 그렇듯이 기존의 사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나머지, 섣불리 사용하다가는 기존 세계관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이것은 『귀족클럽』이 갖는 한계이며 작가가 원하는 바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사실이다.
p. s. 이 글의 방향성을 이야기할 좋은 글은 『장미의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에코는 역시 같은 중세적 세계를 다루지만, 이 인물들은 모두 다 철저히 중세적 세계관을 머리에 박고 행동하는 인물들이다. 모순율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의 말은 모두 그 당시 중세인의 사고를 뿌리 깊게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 s. 2. 이 글은 강유원 박사, 『문예비평사전』, 초록불님,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무단전재하였으니, 요구하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주(註)
*『공산당 선언』에서 발췌.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동업 조합의 장인과 직인, 요컨대 서로 영원한 적대 관계에 있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 왔다. 그리고 이 투쟁은 항상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예전에는 역사상의 각 시기마다 거의 어디서나 사회가 각종 신분으로 완전히 분열된 상태인 각종 사회적 위계 질서가 발견된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기사·평민·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 영주·가신(家臣)·동업 조합의 장인·직인·농노가 있었으며, 다시 이 계급들 하나하나가 다 특수한 등급들로 나뉘어 있었다.
봉건 사회가 몰락하고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 또한 계급 모순을 폐기하지 못했다. 이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과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과 바꿔 놓은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 즉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모순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적대 진영으로, 즉 서로 대립하는 두 계급인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에서 데이비드 하비가 다루고 있는 1830년대 파리의 묘사.
***결을 거슬러서(Against the grain)
발터 벤야민은 『역사철학에 관한 논고(1940)』제 7장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야만의 기록이 아니면서 동시에 문명의 기록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이 야만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듯이, 자손에게 전이되었던 방식마저 오염된다. 그러므로 역사 유물론자는 가능하면 야만으로부터 관계를 끊는다. 그는 결을 거스르며 역사를 손질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간주한다.” (Benjamin, 1973, 258-9)
“결을 거슬러서”는 읽기(Reading)가 작품(Work)의 자연화(Naturalization)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낯설게 함(Defamiliarization)으로서 숨겨진 사회적 죄의식들과 책임들을 폭로한다. 이 표현은 목수의 일에서 따온 것이다. 목수가 결을 거슬러서 목재를 대패질한다면, 목수는 목재의 부드러운 표면을 분쇄하면서 숨겨진 구조(structure)를 드러낼 것이다.
****시대착오(Anachrony)
발에 따르면(1985),이 용어는 연대기적 일탈이라고 한다. 사건(Event)들이 플롯(plot)이나, 슈제트 속에서 표현되는 순서(order), 그리고 사건들이 이야기(story)나 파뷸라에서 전달되는 순서의 적합성이 부족하면 시대착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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