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연재한지 아직 2주 밖에 안 된 상황에서 뭔가 자신의 의견을 내기에는 조금 성급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래 문피아에 고마워 하시는 어떤 글쓴이의 통탄과 깊은 통찰이 이 글에서 느껴지기에 조금이지만 성의를 다해 제 의견을 개진해보겠습니다.
사실 문학사를 조금 공부하다보면 소설의 발생과 성장이란 파트를 꼭 만나게 되어 있지요. 그 파트에서 하는 말은 거의 비슷비슷 합니다만.. 좀 멋진 말로 꾸미면... '시란 장르가 황혼에 접어들고 소설이 전성기에 들어서게 된 이유는 대중 혹은 서민들의 의식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정도입니다. 그런 이건 다시 말해, 시란 장르가 귀족들과 같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으며, 소설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장르였기에 발생 및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헌데 더 재미있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대중의 의식이 성장한 시기란 것이 바로 상업의 성장시기와 맞물립니다. 대중이 돈에 대해 눈뜨게 된 시기지요. 더 노골적으로 말해 볼까요? 혈통과 같은 구시대적 가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단 사실을 대중들이 인식하면서 소설이란 장르는 성장합니다. 다시 말해, 소설은 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르의 문학입니다.
뭐. 소설이야 그 역사가 몇백년을 넘었으니 그렇다 치고, 만들어진지 100년 정도 밖에 안된 영화란 매체를 한 번 생각해볼까요? 영화 평론가들은 아직도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영화란 매체를 예술로 여기기에는 너무 상업적이고, 그렇다고 상품이라 여기기에는 간혹 너무 예술적인 작품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소설이 겪었던 그리고 아직도 겪고 있는 현상과 일치합니다. (요즘은 거의 사장 되다시피 한 시의 영역에서도 슬슬 상업적 시라는 말이 떠돌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우리 장르문학계의 진짜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아무도 장르문학을 어떤 예술작품으로 인식 혹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판/무의 장르문학은 명백히 예술이 아니며... 그러므로 명백하게도 상품입니다. 적어도 독자들에게는 상품으로 취급됩니다. 그 독자가 그 상품을 사기위해 돈을 냈든, 아니든 간에 장르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은 상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비유를 좀 들지요. 어떤 사람이 아우디를 좀 몰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중국제 경차를 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히 두 상품을 비교하겠지요. 그리고 중국제 경차를 도저히 몰지 못하겠다며.. 그 자동차의 메이커 홈피에 뭐라 비난? 혹은 비판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썼다고 해서 어떤 일말의 죄책감을 느낄까요? 대부분은.. 적어도 글을 쓴 시점에서부터 그 사람은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 장르소설과 비싼 돈주고 구입한 자동차는 다르다 구요? 물론 다르지요. 돈을 줬으면 더 실랄하게 비난하겠지요. 아예 반품을 한다던가요.
그런 겁니다. 독자들이 우리 장르문학을 상품으로 밖에 인지하지 못하기에,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 할지라도, 내가 내 귀한 어떤 것을 들여 소비한 제품에 불만이 생긴다면 당연히 그 불만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선 더욱 멋진 소비자라 스스로 믿을 수도 있는 겁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화장품 샘플 받고 그거 써봤더니 이게 좀 아니더라 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문피아에서 독자들이 저자 까는 거랑...)-(여러분이 잘못되었단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까는 것이 지금 장르문학계의 현실에선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단 의미입니다.)
자. 여러분 소설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보세요. 그리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핸드폰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기능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간혹 버그도 보입니다. 어쨌든 전화라는 기본적인 기능은 그래도 갖췄습니다. 당연히 성실한 그리고 화가난 핸폰 주인이시라면 핸폰을 판 대리점이나 핸폰 메이커 회사 홈피에 크레임을 겁니다. 그렇다고 여러분께 그 핸폰을 만든 사람이 직접 찾아와 ‘야! 핸폰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일인지나 알아? 니가 핸폰 만들 수나 있어?’ 라고 묻습니까? 그럼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아니 홈피에 크레임을 거는 인간은 핸드폰을 만드는 전문가여야 하나?’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대중입니다. 그리고 저희 대중은 장르문학의 작가가 얼마나 고심을 했든, 얼마나 힘들었든지 간에 결과물만을 향유하고 평가합니다. 무의식중에라도... 장르문학을 읽는 분들은 거의 99% 이상.. 작품을 소비자 마인드로 봅니다. 그러니 작가가 어떤 상처를 입든... 별 거리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나의 한 마디가 작가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란 사고관을 가지게 되기도 하겠지요.
판/무 장르문학 작품이 신춘문예 같은 권위 있는 혹은 다른 말로 문학이란 계통에서의 특권층(비평가, 평론가 계층)에게 인정을 받아 권위를 획득한 경우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다를 지도 모릅니다. 대중이 전문가 혹은 권위자의 힘을 받은 어떤 것에 대해 개진할 의견은 내 마음에 들더라, 혹은 내 마음에 안들더라 정도의 개인적 감상에서 끝나기 일쑤니까요.
그러나 제가 알기로 판/무가 권위를 획득한 경우는 아직 없지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란 소설이 수상을 했었지요. 하지만 그 소설은 판타스틱.. 즉 현실적으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는 소설이라 ‘판타스틱’ 한 소설로 분류되지 ‘판타지’로 분류되진 않지요.)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지요. 소비자(독자)들에게 제작자(작가)의 사정을 이해하라고 말해봤자 씨알도 안먹힐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이리 된 장르문학계의 현실이 너무나 슬플뿐입니다.
그리고.. 저도 전혀 작가란 입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고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슬프고 무서운건... 그럼에도 독자들은 그저 소비자의 입장에서 글을 볼 뿐이란 현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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