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의 본편을 쓰려다가 일도 늦게 끝나고 원하던 묘사가 안되어 이 기회에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해 느낌을 써보고자 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생각해봐도 나는 아직 작품관을 쓸 나이가 아닌 것 같다. 또 그럭저럭 썼다 해도 언젠가는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깊어가는 여름 밤하늘을 보며 애태워 써봤던 많은 연서들이 세월이 지난 다음에 철없이 여겨지듯 지금의 생각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언젠가는 후회할 일이다. 글은 순간의 감정을 화석으로 만들고 만다. 결국 물릴 수도, 바꿀 수도 없이 부조가 되어 그냥 그 자리에 영원히 남을 것이고, 한때의 만용이 더러 부끄러울 것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 데 불과하며 그 많은 옷 중에 하나 이상이 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아무리 아름다운 색의 옷을 입는다 해도 때론 허세에 지나지 않을 일이다. 평생을 승복만 입고 살아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면 구태여 다른 색깔의 옷을 입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고, 때론 무가치한 열정에 시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수필가 윤송연님이 본인의 수필집에서 쓰신 내용입니다.
오래도록 글을 써도 이런 마음이 들지인데 아직 짧은 생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가진 마음가짐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걸까요?
나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둘다 정답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은 공감의 수가 늘어갈 때 명작의 반열이 될 수 있고,
남을 위해서 쓰는 글에는 배려가 담긴 치유의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보면 장르문학은 치유의 글이라 칭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아무리 가볍게 읽는다해도 읽는 이에게 그 시간의 보상만큼 글로서 현재 처한 스트레스, 아픔, 고통 등을 치유하는 방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요?
마지막으로 쓴 부담감에 얽힌 글을 떠올리지 마시고 처음에 상큼하고 상쾌하게 시작했던 글을 떠올려 봅니다. 내가 무엇때문에 이글을 썼는지 떠올려 보면 앞으로 글을 씀에 있어 내가, 우리가 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생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어떤 글이 나올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초심이 담긴 글이고, 후회가 되지 않는 글이고 싶습니다.
세대가 다르고 연륜이 다르고 모두가 좋아하는 글이 다르니 지금당장 누군가에게 상처입을 수도 있겠지만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남다른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는 글은 언제고 알아줄 것이라 믿으며 한자한자 적어 내려가봅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고 명작이 되는 글들이 끊임없이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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