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태규
작품명 : 풍사전기
출판사 : 뿔미디어
봄바람만큼이나 기분 좋고, 봄의 햇살처럼 따뜻한 글을 만났다. 태규의『풍사전기』다.
1권은 생각지도 않게 재미있었고, 2권은 새벽2시가 지났는데도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더니, 3권에서는 배꼽은 아니더라도 배꼽의 때 정도는 떨어지고도 남을 만큼 재미있었다. 이쯤 재밌었으면 다음 권은 그럭저럭 재미있을 만도 하건만, 책장에 묻어있던 이물질마저 유쾌하다 느껴질 만큼 재미있음에 놀라고, 그 다음 권은 2부가 시작되었으니 숨을 고르려는 듯이 살짝궁 재미있다가, 6권에 와서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일이 안타깝다 할 만큼 재미있다. 이쯤 되면 아직 읽지 못한 7권 역시 안보고도 재미있다 말할 수 있겠다.
또 다르게는 일관되게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더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주도면밀하게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고, 쉽게 말하자면 어느 한권을 빼들더라도 모두 재미있다 하겠다. (소설가 박민규님의 화법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방바닥을 뒹굴거리다 머리가 심심해져 풍사전기를 썼다는 작가 프로필을 볼 때, 그는 신인이다. 최근 많은 신인 작가들이 참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나는 그들의 글을 보며 ‘아, 정말이지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그런데 그뿐이다. 즐겁게 보았음에도 굳이 힘들여 다음 권을 찾지는 않는다.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어느 한가한 오후 눈에 띈다면 보아도 좋고, 그렇지 않다면 보지 않아도 좋다. 그렇기에 내일 출근해야 함에도 12시에 대여점을 방문한다거나, 시험이 3일 앞에 다가왔음에도 불안에 떨며 책을 찾는 일이 사라져갔다. 즐겁긴 한데, 일상을 흐트려 놓을 만큼 탐독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는 글을 만났다. 이런 글은 독자 스스로가 다음 권으로 진루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1루에서 2루로, 2루에서 3루로,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홈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글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점수를 낸다. 그저“풍사전기 참 재미있다”고 한 문장이면 될 이야기를 저리도 구구절절하게 써 놓은 것은 이 글이 내 마음속에서 충분한 점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최근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2루 혹은 3루에서 멈춰버리는 글들이 많다는 점에서 신인작가의 글이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점은 주목해 볼만하다.
1. 팝콘처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낼까 한다. 자유롭고 순수하고 정 많고 장난끼 많은, 우리의 주인공 형로는 분명 매력적이다. 이렇게 멋진 녀석을 만들어 놓고도 작가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주인공만큼이나 멋진 조연들을 한웅큼이나 빚어냈다. 비중의 대소를 떠나 너나 할 것 없이 맛깔스럽다.
이들이 투닥거리며 이끌어가는 글에서는‘투닥투닥’ 팝콘 튀기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그 소리에 절로 흥이 나고, 또 그 고소한 내음새에 행복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냥 팝콘도 아닌 커널스 팝콘이다. 요놈은 딸기 맛 같고, 저놈은 캐러맬 맛이 나고, 저치는 초코맛이 나고, 이이는 보통 팝콘 맛도 나는 그런……
지켜보는 이마저도 한 대 치고 싶게 만드는 뺀지르르한 백가흔, 무뚝뚝해도 이러면 멋지다를 보여주는 남궁정영, 사기의 교과서 귀면살, 무식함의 새로운 지평을 연 마영, 마영에게 덜 맞기 위해 비전보법 두 개를 창안해낸 불쌍한 십오야들, 욕이 매력인줄 알고 사는 마소산……휴, 열거하자면 끝없는 인물열전이 될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고, 이렇듯 수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색을 갖고 튀겨져 나오니 독자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2. 태규님 손바닥 안에서 뒤통수 가격당하기.
『풍사전기』는 유쾌한 글이다. 그렇지만 가볍지는 않다. 오히려 글의 베이스에는 진중함이 깔려있다. 진중함 속에서 유쾌함이 묻어난다. 그것이 모나지 않고 자연스러워 더욱 유쾌해진다. 억지스러운 유쾌함에 불쾌하지 않아도 되고, 유쾌함이 넘쳐 진중함을 잡아먹지 않기에 선 굵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유쾌함과 진중함 사이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짧은 페이지 안에서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어 다닌다. 화가났다 금새 피식대고, 낄낄대다 애닮아 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하는 감정들에 정신없이 휘둘릴 즈음엔 태규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오른손바닥이 지겨워지면 왼손바닥으로 넘어가고 싶을 만큼.
자신이 태규의 손바닥을 피해갔다 자신하는 이가 있다면, 장담하건데 손바닥은 넘어갔어도 뒤통수는 내주고 말았으리라.
씁쓸하고 아릿한 감정을 가슴위에 턱하니 올려놓더니만 생각지도 않은 순간 뒤통수를 세게 쳐서 그것들을 단숨에 토해내게 만드는 작가의 기술은 신인의 그것이라 보기 어렵다. (자세한 설명은 아직 글을 읽지 못한 이들에게 커다란 미리니름이기에 이야기하지 않겠다.) 작가는 불시에 뒤통수를 가격하는데, 우리는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순간 정형화에서 한발자국 빗겨나가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새로움이 주는 쾌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얻어맞고도 좋아하고 맞은데 또 맞아도 좋아라한다. 때리는 사람도 좋다하고 맞는 사람도 좋다하니, 좋은게 좋은거라 치도록 하자.
3. 진부하지만 괜찮아.
주인공의 일대기를 집필하는 타인의 회상으로서 시작을 알리는 글은 새롭다 할 수 없다. 오히려 진부하고 식상하다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풍사전기』에서 나타나는 회상의 방식이 나는 참 좋았다. 이런 일기형식의 회상은 마치 인간극장에서나 등장할법한 나레이션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챕터와 함께 시작되는 전지적 나레이터의 끊임없는 개입은 챕터의 사건을 예시하는 힌트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혹은 사건을 깔끔히 정리하는 편집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다가 다음 사건으로의 전환이 어색하지 않게 하는 친절한 안내인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신나게 남의 욕을 하다가도 자신이 언제 그랬냐며 발뺌을 해대는 이 걸걸하고도 입담 좋은 나레이터가 들려주는 막걸리 같이 구수한 나레이션은 그 나름대로의 색채를 띠며 글의 풍미를 더한다. 이는 풍사전기(傳記)라는 이름을 단단히 하며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진부하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참 괜찮다.
4. 마치며.
글에 걸맞은 멋진 감상을 써내고 싶었건만, 막상 글로써 표현하려니 할말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없는 것 같기도 하기에 엉성하게나마 기억에 남은 몇 가지만 끄적여보았다. 그저『풍사전기』를 보고 난 유쾌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기에 내용은 하나도 없는 뜬구름 잡기식 감상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감상을 올린다. 이 뻔뻔함은 모두 백가흔 을 너무 오래 보고 있어서라는 믿거나 말거나한 변명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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